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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스포티지 만들던 그 기아는 어디로 갔나요?



해외에서 한국 차를 발견하는 경험은 늘 새롭습니다. 요즘은 유럽에 한국 차가 비교적 많아졌기 때문에 예전만큼의 감흥은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느낌이 다르죠.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옛날 차들을 불쑥 만나게 되면 그 잔영은 생각 이상으로 오래 가게 됩니다. 지금은 사라진 대우의 차들, 옛 쌍용의 SUV, 오~래된 현대 각 갤로퍼, 그리고 오늘 이야기를 하고 싶은 1세대 기아 스포티지. . .

 

이런 차들은 한국에서도 구경하기 쉽지 않게 됐습니다. 그런데 외국에서, 그것도 관리가 잘된 상태로 굴러다니는 걸 보면 그 느낌이 어떻겠어요? 어떨 땐 코끝 찡해집니다. 괜히 감성적 분위기에 젖어 옛 생각에 빠지게 되죠. 소주 한 잔 생각이 절로 난다고나 할까요? 얼마 전에 아우토반 반대편 차로 위에서 낯익고도 낯선 스포티지를 봤습니다. 순식간의 일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초기 모델 같았어요. 한국에서 처음 스포티지를 봤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작고 동글동글한 저게 SUV라고?' 고개를 갸웃하던 기억이었죠. 그게 당시 스포티지 인상에 대한 전부였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차에 관심을 더 갖게 되고, 공부를 하다 보니 이 차가 그냥 스쳐지나칠 모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며 더 이상 스포티지는 기아만의 차가 아니었습니다. 현대자동차에 흡수가 되면서 뭔가 느낌이 많이 달라졌거든요. 그런데요. 스포티지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여기서 잠깐 지난 수요일 뉴스에 나온 봉고 얘기를 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황당한 봉고, 황당한 대응

9시 뉴스에 나왔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보셨을 내용입니다. 봉고Ⅲ 1.2톤 모델이 주행 중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가 왼쪽으로 쏠리며 정지를 한다는 보도였습니다. 시속 70km/h 정도의 속도에서 3차로에서 브레이크 페달을 밟자 차가 1차선 쪽으로 쏠리며 멈춰서더군요. 만약 2차로 주행 중이었다면 중앙선을 넘어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습니다. 같은 증상이 있는 또 다른 봉고 역시 운전대를 아무리 꽉 쥐어도 그것과는 상관없이 차가 왼쪽으로 쏠리며 멈췄습니다. 2013년 10월 출고한 차량인데 현재까지 정비공장만 6번 들어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기아차 정비 관계자의 인터뷰 내용이 놀라웠어요.

 

정비 관계자:

" 이 차 종류는 다 그래요. 계속 그런 얘기를 했는데 연구소에서 개선을 안 하니까 우리도 대응책이 없어요."

 

영업소 관계자:

"급정거 조심해라. 봉고3 1.2톤에 이런 단점이 있다는 걸 설명드리죠."

 

차의 안전에 위험이 있다는 걸 알면서 팔고 있었다는 의혹을 받는 대목입니다. 더 문제는 리콜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자발적 리콜'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죠. 그런데 리콜은 하지 않고 항의하는 고객 일부에 한해 차를 바꿔주는 것으로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어이가 없더군요. 

 

현재 원인을 찾고 있다고 기아측에선 답을 했지만, 이런 정도의 차량 결함이라면 리콜을 하고 고객들에겐 이런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판매를 재개하겠다 말을 하는 게 저의 상식으로는 맞다고 보는데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네요. 쉽게 말해 차를  목숨 걸고 차를 타야 하는 상황인 것인데, 이게 말이 되는 거라 보세요?...  다시 스포티지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1세대 스포티지 후기형 모습. 사진= 위키피디아

 

 

 

스포티지 속에 담긴 열정과 꿈

스포티지와 세피아는 기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자동차들입니다. 기아 스스로의 힘으로 일궈낸 순수 토종 차량이면서 동시에 스포티지는 의미 있는 최초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기아는 1990년대 들어서기 전까지 일본 마쯔다의 일종의 하청업체 비슷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마쯔다의 기술, 마쯔다의 디자인, 마쯔다의 영업 방침에 맞춰 움직일 수밖에 없는 회사였죠.

 

그러다 기아가 일이 풀리려 했는지 마쯔다에 어떤 일이 하나 발생합니다. 80년대 레이건 정부 때 미국이 일본차 수입규제 정책을 펴죠. 기억하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미국인들이 일본 차 때려 부수고 그러는 장면들. 일종의 보호무역 성격이 강한 상황이었는데 마쯔다가 그 때 미국에 소형차 하나를 판매하려다가 이런 분위기에 걸리며 포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  기아가 마쯔다가 팔려다 못 판 모델을 포드 페스티바라는 이름으로 OEM 생산을 하게 됩니다.

 

사실 70년대에 포드가 이미 마쯔다의 지분을 1/4가지고 있었고, 그 이후에도 두 회사는 긴밀히 협력하는 관계(1996년인가 결국 포드가 마쯔다 인수) 였기 때문에 마쯔다와 관련돼 있던 기아가 이 소형차 수출 계획에 자연스레 끼어들 수 있게 된 것이죠. 이 차가 바로 <프라이드>였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어요. 그리고 국내에서도 기아는 프라이드 판매로 돈을 벌게 됐습니다. 포드가 가만히 보니까 기아가 제법 하거든요? 기아 지분의 10%를 인수해버립니다. 그리고 두 번째 공동 프로젝트를 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도심형 SUV, 승용형 SUV라는 새로운 컨셉의 차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포드가 너무 나갔어요. 연간 10만대 주문할 테니 화성공장 별도 법인화 해서 그 지분 절반 달라고 한 겁니다. 요즘 표현으로 바꿔 쓰자면 약 먹은 거죠 포드가. 기아가 거절을 했고, 결국 이 회사는 프로젝트 없던 걸로 하자며 털고 나가버렸습니다. 급했던 기아는 마쯔다에 도움을 청해 섀시 기술을 좀 도와달라 했지만 마쯔다 역시 거절했고요. 하루아침에 기아는 붕 뜨게 됐습니다. 결국 포드로부터 일부 얻은 콤팩트 SUV 기술을 토대로 독자적으로 프로젝트를 완성시키기로 결정을 내립니다.

 

그리고 고생 고생 끝에 기아는 1991년 도쿄모터쇼(당시만 해도 세계 4대 모터쇼였음)에 참가해 독자 모델인 스포티지와 현대 포니 보다 더 독자적인 (어떤 의미에선 진짜 최초 한국형 모델이랄 수 있는) 세피아를 전시하게 됩니다. 감동이죠. 기아가 제대로 세계 시장에 첫 선을 보이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분의 칼럼을 읽어보니 그 때 일본 차 엔지니어들이 스포티지에 그렇게 관심을 갖고 놀라워 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놀라워 한 이들은 몇 년 후 스포티지(1993년 출시)에서 영감을 얻은 차를 만들어 판매하는데 그게 토요타 라브4(1994년)와 혼다 CR-V(1995년)였습니다.

*심지어 당시 모터쇼에 세피아 컨버터블도 함께 공개하려고 했습니다. 판매까지 염두에 둔 것이죠. 놀랍지 않나요? 

 

 

 

왜 스포티지가 세계 최초인가?

스포티지는 엔진과 미션, 서스펜션과 제동 시스템 등이 모여 있는 차의 프레임(틀) 위에 몸통을 올리는 프레임 바디 형식의 자동차죠. 그리고 프레임이라는 건 그냥 일직선으로 쭉 뻗는 것이 그 때까지의 상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스포티지는 의자 부분의 프레임을 살짝 꺾습니다. 무게 중심이 낮고 앉았을 때 승용차처럼 안정감을 주었죠. 보통 SUV라고 하면 크고 각지고 앉는 부분이 높고, 터프한 이미지를 풍기는 게 전부였는데 스포티지는 동글동글한 디자인에 승용차 비슷한 실내 디자인, 그리고 좌석의 높이를 낮춰 이전에 없던 묘한 형식을 구현해버렸습니다.

 

지금 투산과 비교하면 차의 길이는 30센티 정도 짧고 높이는 20센티미터나 낮았죠. 그래도 독특한 구조로 머리 공간에 여유가 있으면서 비교적 작은 엔진으로도 충분히 도심에서 주행에 어려움 없이 다닐 수 있게 차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요즘 많이 보는 도심형 컴팩트 SUV의 시작이 이뤄진 것이죠. 해외에서의 반응은 무척 좋았고 판매도로 직결됐습니다. 미국에선 가장 가치 있는 차로 2년 연속 선정되기까지 했죠. 비록 한국 기아가 IMF 이후 무너진 상황에서였지만 미국 기아 법인 단독으로 파리 다카르 랠리에 다시 출전해 완전개조 부문에 2대 모두 완주를 하는 놀라운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에서 세계인들이 관심을 이렇게 받은 차가 얼마나 되었을까요? 무엇보다 새로운 트렌드의 시작을 알렸다는 점에서 스포티지는 박수 받아 마땅한 자동차인 것입니다. 

 

스포티지 그랜드

 

 

 

독과점 시장과 서민, 그리고 국가

 

앞서 언급했던 봉고3 얘기를 마무리 짓겠습니다.  봉고라는 차는 어떤 찹니까? 레져용도 아니고 직장인들 츨퇴근에 가족들 태우고 나들이 갈 때 쓰는 차도 아닙니다. 생업에 쓰이는 차죠. 봉고 오너들은 다들 그 차를 가지고 먹고 사는 일을 해야 하는 분들이에요. 이런 이들에겐 자동차 회사는 더 정직하고 더 좋은 차를 제공해 줘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대응은 어떻나요?

 

현대의 포터와 기아의 봉고는 1톤 시장, 소형 상용차 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현대차 그룹이 만드는 차가 아니면 대안이 없죠. 이런 독점적 시장에서 서민들은 속절없이 그들이 내놓는 차, 내건 조건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가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자동차 회사가 양심을 걸고 장사를 하지 않는다면, 서민들 그냥 목숨 걸고 차 끌고 다닐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건 말이죠, 분노해야 하는 일이며 기아는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입니다!

 

 

 

현대와 기아, 스포티지에게 길을 물어야

현대차 그룹은 프리미엄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또 말씀 드리지만 프리미엄의 길은 기술혁신과, 자신들의 전통과 문화를 다지고 키우는 것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여야 달릴 수 있습니다. 패스트 팔로워는 아무리 빨리 달려도 개척자의 뒷통수만 보고 달릴 뿐이고 이런 회사를 누구도 혁신적 기업이라 하지 않습니다. 제 결론은, 제네시스가 아니라 스포티지에게서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포티지는 계산기 두드려 마진 따지고 만든 차가 아니에요. 물론 기아는 그렇게 했기 때문에 재정적 어려움을 겪게 됐습니다. 하지만 현대는 이미 이런 일은 누구 보다 잘하는 회사잖습니까? 만약 기아가 지금의 현대차 그룹처럼 해외 유통망 확보하고 브랜드 인지도 끌어올린 상태에서 스포티지와 같은 차를 내놓았다면 한국 자동차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는 반대로, 그런 모든 조건을 이미 현대차 그룹이 갖추었으니 스포티지와 같은 차를 만드는 열정과 개척자 마인드를 되살려 그들이 원하는 프리미엄의 제대로 된 길을 가야 한다는 걸로 받아들여도 될 겁니다. 과감한 시도와 도전, 그리고 새로운 길을 열어가겠다는 열정이 없이 어떻게 1류 회사가 될 수 있을까요? 또한, 봉고 사태와 같은 정말 비양심적 모습을 버리지 못하는 이상 현대차 그룹은 결코 존경받고 박수받고 응원받는, 그런 멋진 자동차 회사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도 함께 명심해줬으면 합니다. 혁신과 도전, 그리고 고객을 존중하는 마인드는 결코 다른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아우토반에서 바람처럼 스쳐갔던 1세대 스포티지. 그 차의 도전과 혁신성이 우리 자동차 역사의 유일함으로 남아선 안 될 것입니다. 스포티지의 뒤를 이어 더 놀라운 도전을, 과감한 시도를 펼친 그 후예들이 아우토반 위를 계속해서 질주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현대 기아차가 살 길입니다.

 

스포티지 컨버터블

 

사진 출처 : auto-motor-und-sport.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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