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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 아우토반 시승기

[시승기] 영국식 왜건, 재규어 XF 스포트브레이크

 

영국산 자동차를 탄다는 건 늘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을 소비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롤스 로이스, 벤틀리, 애스턴 마틴, 그리고 SUV의 럭셔리 레인지 로버. 물론 그 외에도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랜드로버 모델들이 있고 재밌는 드라이빙을 원하는 이들에겐 로터스와 미니가 있습니다. 하지만 세단으로서 대중성과 영국 브랜드 특유의 고풍스러운 멋을 겸하고 있는 브랜드는 재규어가 아닐까 싶은데요.

 

오늘은 그 재규어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혹은 저렴한 가격대의) 모델인 XF를 시승한 얘기 들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XF도 그냥 XF가 아니라 흔치 않는 왜건 XF 스포트브레이크입니다. 그렇습니다. 한국 운전자들에겐 정말 잘 그림이 안 그려지는 재규어와 왜건의 조합이군요!

 

재규어 XF 스포트브레이크. 사진=재규어

 

 

웃다 울다, 이놈의 시승

재규어 XF 스포트브레이크는 원래는 시승할 차량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독일 시승기는 모두 렌터카를 빌려하고 있는데요. 아무리 재규어의  낮은급 모델이라도 이틀이면 상당한 금액을 지불해야 합니다. 거기다 기름값까지 생각한다면, 오로지 시승을 위해 이런 급의 차를 빌린다는 건 엄두를 내지 못할 일이죠.

 

그런데 운좋게 생각 이상으로 저렴하게 빌려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뒤도 안 돌아보고 선택을 했습니다. 비교적 장거리 주행을 해야 했기에 재규어의 안락함 정도를 확인하고 소문만큼 좋은 연비인지 점검하기에 무척 좋은 기회이기도 했죠. 경험해보고 싶었던 재규어 왜건을 타고 기분 좋은 드라이빙을 해야겠다는 기대는, 그러나 출발하는 날 아침부터 내리는 비로 인해 꺼지고 말았습니다. 후둑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재규어 왜건을 만나러 갔습니다.

 

 

외관 

색상이 참 중요했던 XF 스포트브레이크

 

XF 스포트브레이크의 키를 받으러 가는데 하얀색 모델이 눈에 띄더군요. 한눈에도 잘 어울려 보였습니다. 내심 저 녀석이면 좋겠다 싶었는데 역시나(?), 그 옆에 있던 2169 번호판을 달고 있는 쥐색 모델의 키가 제게 주어졌습니다.

 

제가 대뜸 색깔부터 이야기를 꺼내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재규어 디자인은 오랜 세월 디자인팀을 이끌고 있는 이안 칼럼에 의해 주도되고 있죠. 요즘 표현대로 디자인 포텐이 터지면서 F타입 같은 자동차는 올 최고의 디자인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재규어의 전체적인 스타일이 자신만의 색깔은 물론 요즘 소비자들의 감각에도 맞아 보이는데, 문제는 유독 XF 스포트브레이크는 그런 환호와는 약간 거리감이 느껴졌습니다.

 

역시 왜건이라는 것이 외모에 대한 감흥을 조금은 누그러뜨린 게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왜건에 익술할 만큼 익숙한 저이지만 전체적으로 재규어 모델들 중 가장 차분한 느낌을 줬고, 그래서 최대한 밝고 강한 색상이 왜건에는 더 어울리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자꾸 흰색 스포트브레이크에 보낸 시선을 거두기 어려웠습니다.

 

세단과 왜건의 차의 길이는 고작 5mm (세단 : 4961, 왜건: 4966 mm)였지만 시각적인 길이의 차이는 더 있어 보였습니다. 또 세단 XF의 뒷모습에 비하면 왜건은 실용적인 공간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볼록하고 부드러운 곡선 처리가 되어 있어 전면부의 강렬한 인상과는 약간 어울리지 않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포르쉐 파나메라의 뒷모습이 연상됐습니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색상만 좀 더 밝고 경쾌했다면, 그리고 비가 내리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XF 스포트브레이크의 외향은 그렇게 거북한 수준은 아닙니다. 단지 왜건의 낯설음이 문제일 뿐. 

 

사진빨(?)에 속아서는 안되겠지만 확실히 흰색이 어울린다는. 사진=Jaguar.de

 

 

 

실 내 

영국 도자기? 영국의 Tee!

재규어 XF 스포트브레이크를 이야기할 때 가장 의견이 분분할 수 있는 대목이 아마도 실내가 아닐까 합니다. 처음에 얼핏 보면 뭐가 좀 빠져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최상위 모델인 XJ의 화려함을 기대하는 분들이라면 실망을 더 할 수도 있을 텐데요.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 밍밍한 맛의 실내가 이틀 정도 타고 다니다 보니 익숙해지면서 편하게 느껴지더라는 겁니다. 화려한 영국 도자기 같은 재규어이지만 실내는 우유를 가볍게 섞은 영국 홍차처럼 부담없고 여운있었습니다.

 

시동을 켜지 않은 상태에서는 공조기 커버가 닫혀 있습니다. 그래서 차에 오르며 받는 첫인상은 더 차분하고 약간은 밋밋해 보입니다. 스티어링 휠 디자인과 송풍구나 주변 디자인에 요즘 차들이 신경 쓰는 것에 비하면 XF 스포트브레이크 운전대와 송풍구 주변은 차분함 그 자체입니다.

 

전체적으로 콕핏은 단정하고 잘 정리가 되어 있지만 계기판이 작다는 게 좀 아쉬웠습니다. 뭐 굳이 변명을 해준다면 계기판을 둘러싸고 있는 클러스터 하우징을 최소화해 운전자의 시야를 도우려했던 것은 아닐까 합니다. (실제로 전방 시야는 걸리적거리는 느낌 없이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실내에서 가장 특색 있는 부분이라면 역시 다이얼식 변속기일 겁니다. 브레이크 밟고 시동키를 누르면 시동이 켜지면서 동시에 안에 폭 박혀 있던 다이얼이 사진 속처럼 솟아 오르게 됩니다. 스틱 운전이 익숙한 상태라 다이얼 조작이 손에 안 익으면 어쩌나 했는데 한 두 번 사용해보니 쉽게 편하게 쓸 수 있었습니다. 또 두 개의 컵홀더 바닥은 보온 기능이 있어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데 도움을 줬습니다. 

 

터치스크린식 모니터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특히 내비게이션이 좋았는데요. 운전자에게 정확한 거리를 인식시켜주는 그래프가 속도계와 엔진회전계 사이에 있어서 좌우회전을 어느 타이밍에서 해야 되는지 정확하게 알려줬습니다. 간혹 실제 거리와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거리의 차이로 인해 헤매는 경우가 있는데 재규어 XF 기본 내비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 좋았습니다.

 

가죽으로 잘 마감이 된 대시보드

전체적으로 마감도 잘 되어 있고 뭔가 불필요한 것이 없다는 단정한 인상을 주는 실내였는데요. 앞좌석과 2열의 공간은 생각 보다는 크지 않았습니다. 뒷좌석에 키162cm의 아내가 앉아 있는데 유리창이 넓어 요즘 쿠페형 모델들의 답답함은 느낄 수 없었습니다. 큰 불편함은 없지만 그래도 뒷좌석 무릎 공간은 조금 더 여유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더군요.

 

 

재규어 XF 스포트브레이크의 공간은 모두 트렁크로 간 모양입니다. 하마처럼 쩌억 입을 벌리고 있는 뒷문 사이로 드넓은 트렁크 공간이 펼쳐져 있습니다. 왜건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킨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공간이었습니다. 뒷좌석은 6:4 폴딩으로 최대 1675리터의 용량까지 담을 수 있는 대용량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주행 

후륜의 미덕 보다 조용함의 미덕이 더 컸던...

편도 약 400km의 거리를 달려야 했기 때문에 제원상 19.2km/L를 달린다는 4기통 디젤을 선택한 것은 옳은 결정이었습니다. 시동을 켜면 디젤 특유의 엔진음이 들리는데요. 하지만 갈수록 자동차 회사들의 디젤 엔진의 진동과 소음을 잡아내는 솜씨는 발전해가는 듯했고 재규어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200마력에 최대토크 45.9kg.m이면 충분히 이 차의 무거움을 극복할 수 있겠지 하는 기대와 함께 목적지를 향해 출발을 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볼프스부르크가는 길은 독일 특유의 곧게 뻗은 아우토반을 만나기 어려운데요. 상당 구간들이 굽이치고 오르락내리락, 산을 몇 개를 넘나들어야 하는 코스로 되어 있습니다. 특히 비와 눈이 같이 흩날리는 날씨에선 즐거운 질주 보다는 얼마나 안전하고 편안하게 장거리를 갈 수 있는지에 더 관심을 가져야 했죠. 다만 사륜구동이 없는 스포트브레이크의 특성 상 후륜으로 굽이굽이 빗길을 몇 시간 달려야 했기 때문에 운전에 좀 더 집중을 해야 했습니다. 

 

스포트브레이크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차는 준대형급 왜건임에도 운전대에 패들쉬프트가 달려 있고 서스펜션은 독일 차처럼 단단한 편입니다. 익숙한 사람은 무난하지만 단단함이 낯선 분들에겐 튄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을 거 같더군요. 세단에 비해 65kg 더 무거운 왜건은 직선구간에서의 안정감에 비해 코너에서의 실력은 다소 떨어졌습니다. 물론 빗길이라는 걸 감안을 했고, 그럼에도 사륜에 대한 아쉬움을 떨구기 어렵더군요.

 

속도 제한이 없는 곧은 도로에서 비가 좀 잦아들자 속도를 내봤습니다. 시속 190km/h까지 올라가도 차체는 안정감이 있었고 운전대의 떨림 등 불안감은 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옆에 아내도 앉아 있었기 때문에 계속 속도를 올릴 수 없었지만 이 정도면 확실히 직선주행은 훌륭했습니다.

 

최고속도를 내봤던 도로. 날씨 참~

다만, 최고속도 214km/h까지 부담없이 오르기 위해선 좀 더 마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특히 힘 부족에 대한 생각은 다른 차량들을 추월할 때 더 들었죠. 1차선으로 들어서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아 보지만 어쩐 일인지 차가 주춤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과거 경쟁 모델인 메르세데스 E클래스 왜건을 탔을 때의 기억이 떠오르더군요. 

 

마치 빙판 위를 쭈욱 미끄러져 나가는 듯한 E클래스 투어링(왜건)과는 달리 XF 스포트브레이크는 집에 들어가기 엄마 손에 잡혀 질질 끌려가는 꼬마의 느낌이랄까요? 추월가속에서의 아쉬움은 주행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수퍼차저를 달고 엄청난 마력을 뽐내는 가솔린 모델이 아예 적용이 안되는 왜건이라서 (왜건은 디젤만 있음) 만약 힘을 느끼고자 하는 분이라면 상위급인 6기통 왜건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계속해서 비와 눈이 교차해 내리는 궂은 날씨 탓에 센서모드에 맞춰 놓은 와이퍼가 열심히 작동을 했지만 그리 만족할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잘 떨어지지 않는 연료표시 그래프는 큰 위로가 되어 주었죠. 하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이 차의 정숙성이었습니다. 세단에 비해 다소 소음도가 높은 왜건임을 생각하면 더 맘에 들었는데요. 시속 150km/h 정도까지 속도를 올려도 바람소리가 거슬리지 않았고 음악을 듣거나 대화를 하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주행 전반에 걸친 느낌을 말씀드리면, 우선 비교적 조용하고 편안하게 달릴 수 있었습니다. 다만 코너에서 속도를 올릴 때(130km/h 전후) 뒷바퀴 쪽이 다소 불안한 느낌을 줬는데요. 이건 후륜의 빗길이라는 변수를 감안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도심에서 저속으로 좌우회전을 할 때는 생각 보다 민첩함도 줬지만 역시 직진 안전성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2.2리터 디젤의 힘부족은 고속 질주를 원하는 분들에겐 아쉬운 대목입니다.

 

하루 묵었던 숙소와 주변 풍경. 여전히 비...

돌아오는 날에도 역시 비가 내렸는데 오후엔 더 심해지더군요.호텔 뒤 멋진 공원 산책은 고사하고 우산을 받쳐들고 스마트폰으로 겨우겨우 자동차 사진을 몇 컷 찍은 게 고작이었습니다. 거기다 굽이치는 산길과 공사구간이 많은 아우토반을, 그것도 컴컴한 밤에 운전을 하는 일은 쉽지 않았는데요. 그래도 400km의 거리를 3시간 반에 걸쳐 무사히 달려왔습니다. 차를 반납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생각 보다 피곤하지가 않더군요. 몇몇 아쉬움이 있었지만 장거리 주행에서 안정감 있는 실력을 뽐냈던 XF 스포트브레이크의 덕임을 알았습니다.

 

총 주행거리는 826km였고 기름은 59.63리터가 소모됐습니다. 계산을 해보니 리터당 14.5km더군요. 대략 시속 120~140km/h를 평균적으로 주행했으니까 제원상의 연비에는 못미쳤지만 이 정도면 무거운 몸 이끌고 다니는 엔진치고는 괜찮은 수준이다 싶었습니다. 연비는 만족!

 

 

마무리

독일 내에서는 제동력 좋고 (이름처럼) 트렁크 공간이 좋으며 편안한 시트의 정숙한 자동차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또 주행성능에서 만족스러운 편이지만 경쟁 모델들인 아우디 A6, BMW 5, E클래스 등의 왜건에는 성능에서 다소 못 미친다는 평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단점으로 높은 수리비가 지적됐는데요. 예전에 비하면 재규어의 내구성이 상당히 좋아졌기 때문에 고장이 안 나길 바라지만 그럼에도 수리비 부담은 이 차를 선택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가솔린과 사륜이 없다는 건, 아무리 유럽 시장을 공략을 위해서라지만 아쉽게 생각됩니다.

 

럭셔리 세단에 웬 왜건이냐며 시큰둥하게 여길 분들도 있겠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재규어가 주는 고풍스러운 이미지와 왜건의 실용성이 결합해 만든 신선함은 또 다른 매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영국식 왜건 시승기, 저도 여러분 만큼이나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었는데요. 무엇보다 편안하게 저의 일정을 함께 해준 능력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네요. 특별난 재능은 없었지만, 차분하고 정확하게 자기 역할을 잘 수행한 재규어 XF 스포트브레이크 시승기였습니다.  

 

 

배기량 : 2179cc

최고마력 : 200PS

최대토크 : 45.9kg.m /2000rpm

제로백 : 8.8초

최고속도 : 214km/h

이산화탄소 배출량 : 135g/km

연비(유럽복합 기준) : 리터당 19.23km

변속기 : ZF 8단 자동

판매가 (독일 기준) : 48,550유로부터 시작

무상보증기간 : 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