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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폴크스바겐 vs 현대자동차

 

오늘은 몇 개월 전 온라인 잡지<더딴지>에 올린 저의 글 하나를 이곳에 공개하려 합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현대자동차와 독일의 국민차 브랜드 폴크스바겐을 나란히 놓고 한 번 비교해 보았던 내용인데요. 과연 두 회사의 닮은 점은 무엇이고 다른 점은 또 무엇일까요? 자동차 팬의 입장에서 한 번 바라봤습니다. 

 

 

프롤로그

오래 전, 그러니까 쌍용, 기아, 삼성, 대우, 아시아자동차, 현대 등으로 나뉘어 경쟁을 벌이던 자동차의 춘추전국시대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그 때 사람들은 이들의 뜨거운 경쟁이 한국 자동차의 경쟁력을 키워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동시에 해외에선 이런 얘기도 들려왔다. “결국 한 놈만 남게 될 거야.” 그리고 그 예언 아닌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순식간에 자동차 회사들은 외국 자본으로 넘어갔고, 그나마 기아를 인수한 현대자동차만이 토종 기업으로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원하든 원치 않든 대한민국 대표 자동차 메이커가 된 것이다.

 

 

현대 VS 폴크스바겐, 대결이 되나?

현대와 폴크스바겐을 한 번 붙여보면 어떨까하는 이야기를 지인들에게 했을 때 반응은 대체로 ‘대결이 되나?’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될 것도 없다. 우선 우리나라 대표 자동차 메이커와 독일의 국민차 브랜드라는 상징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양산차 메이커로서 해외 시장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는 경쟁적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차에 대한 국내 비판적 정서와는 별개의, 엄연한 현실이다. 그만큼 현대차는 양적 질적 성장을 계속해왔다. 2011년 프랑크푸르트모터쇼로 잠시 돌아가 보자.

 

양복을 입은 한 무리의 독일 남자들 사이에 줄자를 들고 있는 마틴 빈터콘 VW 회장의 모습이 보인다. 당시 출품된 현대의 준중형 i30에 오른 그는 “비숍!” 하며 디자인 총괄을 불렀다. 스티어링 휠의 위치를 조절하는 기능에 대해 “왜 우리는 이렇게 하지 못하지?” 라고 따지듯 묻자 클라우스 비숍은 “우리도 방법은 있지만 비용이 비싸서” 라고 대답했다. 빈터콘 회장은 계속 줄자를 들곤 실내가 어떻게 설계됐는지 체크해 나갔다. 이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유투브에 올랐고, 아우디에서 품질관리를 담당했던 공학자다운 그의 태도가 많은 이들에게 인상적인 모습으로 남았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에 보인 VW 회장의 경계심, 일종의 긴장감 있는 태도는 현대자동차를 삽시간에 전세계 자동차 팬들의 시선 중심에 두게 했다. 당시 모터쇼에서 이 보다 더 극적 홍보효과를 거둔 차는 없었다. 그 이후로 현대자동차가 유럽에 신차를 내놓을 때마다 독일 언론들은 이날 사건을 언급했고 과연 한국 차가 독일 차들과 경쟁이 될 수 있는지를 놓고 빈틈없는 검증 작업에 들어갔다. 과거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일각에선 동영상 유출 자체가 계산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하청업체 쥐어짜기를 감행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라며 흥분하던 이들도 있었다. 속내가 무엇이 됐든 이 동영상은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이 현대차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마틴 빈터콘 회장. 포즈 취하는 데엔 달인 되시겠다. 사진=n-tv.de

 

 

현대자동차의 자신감

사실 이런 미담에 가까운 현대차 위상의 변화 외에도 VW과 현대를 함께 놓고 이야기 해보고 싶었던 이유는 현대 스스로가 이미 독일 차 수준에 자신들이 올라와 있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디 VW뿐인가? BMW, 벤츠할 것 없이 현대차는 자신들이 내놓는 신차를 과감하게 독일의 프리미엄 모델들과 비교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펙 면에선 자신들의 차가 더 낫다고까지 얘기를 했다. K9은 벤츠 기함을 걸고 넘어졌고, 모닝은 미니와 붙이며 “우리가 더 낫거든요?” 를 외쳤다. 거기다 아반떼는 세상에 없는 클래스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생각하게 된다. ‘도대체 저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하고 말이다. 따라잡아야 할 목표로 봤던 일본 메이커들은 이제 안중에도 없다는 듯 현대자동차는 타깃을 분명하게 독일 메이커들에 두었다. 브랜드의 고급화를 꾀하려는 그들의 전략상 이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과연 이 접근법이 성공적인 것일까? 이제부터 현대차가 분명하게 경쟁자로 지목한 폴크스바겐과 현대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비교 체크해볼 것이다. 특히 두 회사의 다른 점과 닮은 점을 통해 이 대결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의미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도 함께 알아 보도록 하자.

 

 

현대자동차의 탄생

박정희. 사진=위키피디아

현대차의 탄생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유는 그가 5.16으로 권력을 쟁취하고 바로 취한 정책 중 하나가 바로 ‘자동차 공업 보호 육성법(1962년)’이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발휘된 이 보호 육성법으로 실질적인 자동차 회사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쏟아져 나오게 됐다.

 

우선 재일교포 출신의 박노정이 세운 ‘새나라자동차’는 정부의 특혜 속에 닛산의 자동차를 반조립 상태로 들여와 판매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2년 후 새나라자동차는 신진공업사에 넘어가 신진자동차로 바뀌게 되고, 다시 신진자동차는 대우자동차로, 그리고 대우는 다시 한국 GM으로 바뀌는 파란의 역사를 이어가게 된다. 또 이 무렵 자전거 만들던 기아가 기아정공으로 이름을 바꿔 삼륜차에 도전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었다.

 

기아가 삼륜차를 만들던 1962년 겨울, 지금은 인도 마힌드라에 그 이름을 넘긴 쌍용자동차도 ‘하동환 자동차 공업’이란 이름으로 그 역사의 출발을 알리게 된다. 이후 다시 아시아자동차가 등장했으며, 가장 늦었다고 할 수 있는 1967년, 정주영에 의해 현대자동차가 간판을 올리게 된다. 초대 회장엔 포니 정으로 잘 알려진 동생 정세영을 앉혔다. 

 

그렇다면 현대자동차는 하릴없이 권력의 요구에 끌려 출범을 했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이미 정주영 회장은 일제 강점기부터 자동차 정비 관련한 일을 했다. 해방 후 일본에 빼앗기다시피 했던 정비소를 되찾아 ‘현대자동차공업사’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다시 시작했고 이것이 현대건설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렇듯 박정희에 의해 한국 자동차 산업은 본격화되었고, 그 당시 자체 기술력이 전무하다시피했던 한국 자동차 산업은 일본과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과의 합작, 기술제휴 등을 통해 그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리고 1965년 일본 토요타와 기술제휴로 신진자동차가 코로나 내놓자 현대자동차는 3년 뒤 포드와 합작으로 그 이름도 비슷한 코티나를 내놓으며 본격적으로 경쟁에 뛰어들었다. 현대자동차는 포드와 결별 후 정세영의 주도 하에 국산차 프로젝트를 4년 이상 준비했다.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 모델 (국산화율 90%) 포니가 탄생한 것이다. 한 때 미국은 현대차의 이런 국산화 전략을 무마시키기 위해 회유까지 했지만 현대는 밀어붙였고, 정부의 각별한 지지 속에 현대자동차는 성장해나갔다.

 

 

폴크스바겐의 탄생

아돌프 히틀러. 사진=위키피디아

폴크스바겐이란 회사의 탄생 역시 현대차와 조금은 닮은 구석이 있다. 바로 권력자의 의지에 의해 생긴 자동차 기업이라는 점이다. 히틀러는 1차 세계 대전 이후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새로운 희망으로 포장돼 권력을 쟁취했다. 히틀러는 자신이 새운 독일 제 3제국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적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선 경제난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독일은 베르샤유 조약에서 책정된 막대한 배상금에 발목이 잡혀 견딜 수 없는 어려움에 빠져 있는 상황이었다. 실업자만 600만 명이 넘는 상황에서 그는 국민들에게 희망, 혹은 환상을 심어줘야 했다. 그 환상 중 하나가 ‘국민차 프로젝트’였다. (히틀러 시대 이전부터 국민차 개념은 있었다. ) 당시 독일엔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있었지만 여전히 비싼 가격으로 일부만이 누리는 사치품일 뿐이었다. 대신 국민들의 발 노릇을 자전거가 담당하고 있었다. 자동차를 대중화시키면 나치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절대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판단한 히틀러는 미국에서 그 가능성을 찾게 됐다.

 

헨리 포드는 대량생산 시스템을 통해 T모델이란 자동차를 만들었고, 이는 자동차의 확산, 대중화의 신기원을 이룩한 모델이 되었다. 유색인엔 관대한 편이었지만 유대인에는 저항감을 갖고 있던 헨리 포드가 이래저래 히틀러의 눈에는 천사처럼 보였을 것이다. 결국 포드식 양산만이 독일 자동차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라 확신한 히틀러는 국민차 프로젝트를 꺼내게 된다.

 

1934년, 4인 가족이 저렴한 금액으로 안전하게 탈 수 있는 국민차 개발 프로젝트가 공표됐고, 여러 기업들 중 히틀러는 페르디난프 포르쉐가 설립한 설계 사무소와 손을 잡기로 한다. (당시 다임러도 함께 국민차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타입1’이라는 컨셉카만 만들어졌을 뿐 이 국민차 프로젝트는 세계 2차 대전의 발발과 함께 묻히게 된다.

 

전쟁 후 볼프스부르크에 위치해 있던 VW 공장은 재가동되었다. 사실 패전국이라는 멍에 속에, 또 히틀러가 만든 자동차 회사라는 원죄 아닌 원죄로 인해 공장은 언제라도 해체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그 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영국 감독 이사회는 공장을 살리기로 결정을 내렸고, 타입 1 컨셉카는 비틀(미국 수출명)이란 이름으로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결국 비틀 신화가 발화되는 순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은 이 공장 신탁권을 독일 정부에 이양함으로써 손을 떼게 되었고, 폴크스바겐은 국민차 브랜드로 독일 재건의 한 축을 담당해나갔다.

 

 

현대자동차와 폴크스바겐의 닮은 점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대차와 VW은 당시 정권의 최고 권력자 의지가 반영돼 자국 자동차 산업의 발전이란 목표 아래 태어난 회사들이었다. 물론 히틀러의 본심은 곧이어 터진 전쟁을 통해 확인이 됐지만 자국차의 대중화의 출발점이란 점에선 분명 둘 사이에 닮은 구석이 있다. 시간이 흐른 지금 현대자동차는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부여 받게 되었고, 폴크스바겐은 국민차라는 이름이 보여주듯 독일의 유일한 양산형 메이커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또 자동차 판매 순위에 있어 폴크스바겐이 2012년 기준 3위 (907만대, 그룹 전체 기준), 현대자동차그룹이 710만대를 팔아 세계 5위에 올라 외형적으로 두 회사는 경쟁적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2018년까지 세계 판매 1위를 목표로 하는 폴크스바겐에겐 매년 성장세에 있는 현대차는 거침돌이자 경쟁자이며, 현대자동차에게 있어 폴크스바겐은 벤치마킹의 대상이자 극복의 상대가 되었다.

 

또 두 메이커는 미국이라는 자동차 최대 시장에서 도전자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한 때 미국 시장에서 철수했던 전력이 있다. 그러다 다시 공장을 짓고 저렴한 가격과 품질로 공격적인 승부를 펼치고 있다. 현대 역시 다양한 서비스와 가격과 품질 등을 앞세워 일본과 미국 자국 메이커들이 점령한 북미에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구동성 “비싸!”
 
그런데 소비자 입장에선 그다지 내키지 않을 만한 공통점도 갖고 있다. 두 메이커 모두 자국에서는 비싼 차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자동차는 신모델이 나올 때 마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가격 인상이 이뤄진다. 소비자 입장에선 싸게 차를 사고 싶고 파는 입장에선 더 남기고 싶은 게 당연하다. 하지만 현대차의 가격 상승폭은 소비자들의 납득의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인 듯하다.

 

폴크스바겐 역시 비싸다. 일단 인건비나 재료비 등, 원가 자체가 비싸다는 게 문제다. 이는 독일 메이커들 전체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어쨌든 최근엔 혁신적인 MQB 플랫폼 시스템을 갖춰 가격 상승 요인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게 되었고, 실제로 과거에 비해 폴크스바겐의 신차 가격은 크게 오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상승을 억제하다 뿐 기본적으로 높은 가격은 품질 우수성과 상관없이 독일인들에겐 불만의 제 1순위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을 거점으로 삼다

맨인블랙 페터 슈라이어. 사진=기아버즈

폴크스바겐 제국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이는 페르디난트 피에히 (포르쉐 박사의 외손자) 감독위원회 의장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페터 슈라이어를 그 때 붙잡았어야 했어~” 여기서 말하는 페터 슈라이어는 현재 현대 기아 자동차 디자인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사장단의 멤버가 된 독일 출신의 디자이너다.

 

아우디TT라는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이 걸출한 디자이너가 기아자동차로 간다고 했을 때 모두들 의아해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VW 디자인 파트의 머리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보장된 길을 놔두고 기아자동차 같은 작은 회사로 가다니. 하지만 페터 슈라이어는 모험을 택했고, 지금까지 그의 모험은 성공적이라는 것이 업계의 판단이다. 핵심 인력을 데려오는 것에 멈추지 않고 현대는 유럽 공략 거점을 프랑크푸르트 인근 뤼셀스하임에 두었다. 이 곳은 오펠 본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기아의 디자인센터는 아예 프랑크푸르트 박람회장 코앞에 두고 있다. 현대와 기아 모두 핵심 디자이너들은 BMW나 아우디 같은 독일 메이커 출신들로 구성했다. VW의 자랑이라고 하는 디젤엔진 TDI를 설계한 핵심 인력마저 스카웃해버렸다. 현대차 그룹이 얼마나 독일 기술과 감성을 차에 반영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현대의 전략적 요충지가 있는 뤼셀스하임에서 폴크스바겐 본사가 있는 볼프스부르크까지는 3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 두 곳이 독일이란 나라 안에서 핵심 거점을 코앞에 두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현대는 손해보는 짓 안한다 

지금까지는 두 자동차 경쟁 메이커의 닮은 모습들을 이야기했다. 이제부터는 다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우선 현대는 절대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 눈에 띈다. 현대차 탄생의 배경 자체가 기술을 바탕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 관점에서 시작이 되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수출을 통한 한국 경제의 볼륨을 키우기 위해 시작된 현대차의 길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누구도 공식 발표를 한 건 아니지만 회사 내에서 입김이 가장 쎈 부서는 재무 쪽이라는 것이 안팎에서 나오는 얘기다.

 

현대자동차의 모든 관점은 얼마의 돈을 들여 얼마의 이윤을 남기느냐 외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가격을 결정하고 마진을 따지는 것에 맞춰 모든 게 진행이 된다. 기업의 입장,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모습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현대는 지금 프리미엄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살고 있다. 그런데 프리미엄 브랜드의 제 1가치는 기술혁신에 있다. 그렇다면 현대는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이런 반론이 만만치 않다 보니 현대의 엄청난 성공 뒤엔 늘 꼬리표처럼 기술력 부족의, 도전 정신이 없는, 전통을 중요시 여기지 않는 기업이라는 얘기들이 따라붙었다. 그나마 나름의 투자를 통해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기술적 진보를 이뤄낸 부분도 있다. 현대자동차의 엔진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다는 평가다. 거기다 이제는 자동 10단 기어를 만들겠노라 큰소리를 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여전히 현대가 경쟁상대로 생각하는 폴크스바겐과의 기술적 차이는 눈에 띈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폴크스바겐은 포르쉐 설계 사무소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출발한 회사다. 예나 지금이나 엔지니어링에 있어서 만큼은 자신들이 최고라 자부하는 게 독일인들이다. 그들의 대표 모델인 골프를 통해 자신들의 기술력을 구현시켜갔다.

 

골프는 늘 비싼 자동차에 적용되는 기술들을 대중화시키는 하나의 통로가 되어 주었다. 5세대 골프는 레이져 용접을 통해 차체가 완성됐다. 레이져 용접은 말 그대로 철판 이음새 부분을 모조리 녹여 하나의 철판처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단가를 생각하면 할 수 없는 짓(?)이었지만 박리다매 전략을 짠 경영진들은 골프가 갖는 상징성을 염두에 두고 밀어붙였다. 수동변속기를 기반으로 한 듀얼클러치미션 (DSG)을 적용한 것도 골프였다.

 

이 자그마한 자동차에 폴크스바겐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적용할 수 있는 대부분의 기술들을 반영했다. 국민차라는 타이틀은 그들에겐 부담이자 늘 새로운 도전을 가능케 하는 동기이기도 했다. 거기에 앞서 언급한 혁신적 플랫폼 시스템을 통해 경쟁력을 더 강화시켰다. 골프와 폴로는 동급에서 늘 탑이었고, 그외의 자동차들도 프리미엄 메이커의 모델들과 경쟁에서 쉬이 밀리지 않는다. 람보르기니 아우디 벤틀리, 그리고 부가티 등의 고급 브랜드를 통해 엔지니어링 노하우는 더 깊어졌다. 그리고 이젠 포르쉐까지... 

 

5세대 골프의 빵빵한 뒤태~ 사진=VW

 

 

폴크스바겐은 손해나는 짓도 가끔씩 한다

드레스덴은 독일의 로마로 불릴 정도로 도시 전체가 유적지인 곳이다. 이곳에 VW은 자신들의 플래그십 페이톤을 만들기 위한 유리 공장을 지었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페이톤은 오버엔지니어링의 극치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정성을 기울여 제작된다. 마진을 생각했다면 나올 수 없는 자동차라는 얘기가 있을 만큼 페이톤에 쏟은 열정과 노력은 뜨겁다.

 

여전히 벤츠나 BMW, 아우디 등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는 고급 차종이지만 폴크스바겐은 여전히 최고의 차를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드레스덴 공장을 가동시키고 있다. 이런 비슷한 시도는 부가티 브랜드를 인수한 것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된다. 롤스로이스와 함께 세계 최고의 차를 만들던 부가티를 VW이 인수한 후, 그들은 시속 400km/h 이상을 달릴 수 있는 차를 내놓기로 한다. 바로 베이론이다.

 

1001마력에 한 대 가격만 20억이 훌쩍 넘어가는 이 차는 1년에 100대 미만이 생산되는데 한 대 팔릴 때마다 6~7억 원 정도의 적자가 난다고 얘기되고 있다. 7백만 원도 아니고 7억의 적자라니. 도대체 이런 짓을 왜 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기술력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를 팔아 돈을 버는 것만큼이나 어떤 자동차 기업이냐는 이미지 창출이 중요하다는 것을 폴크스바겐은 알고 있는 것이다. 또한 결국은 혁신과 기술력이 가장 큰 경쟁력임을 알고 있다.

 

니가 부가티 베이론이냐?

 

 

현대 많은 차종으로 승부, VW 많은 파생 모델로 승부

언젠가 현대자동차 관계자와 현대와 폴크스바겐의 차의 종류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현대가 VW에 비해 차의 종류에 있어서는 더 많다고 말했다. 얼핏 계산을 해봐도 틀린 얘기는 아닌 거 같다. 한번 비교해 보자. SUV의 경우 현재 현대자동차는 자국 시장 기준으로 투산, 싼타페, 베라크루즈 등을 생산하고 있고 VW는 티구안, 투아렉 이렇게 두 종류만 판매가 되고 있다. 또 현대는 중형급인 쏘나타와 준대형급 그랜져와 제네시스, 그리고 에쿠스로 이어지는 것에 비해 폴크스바겐은 파사트와 그랜져와 비교할 수 있는 CC, 그리고 페이톤으로 바로 넘어가게 된다.

 

물론 폴크스바겐의 경우 현대가 손을 놓고(?) 있는 미니밴에서 3가지 모델(투어란, 샤란, 캐디)을 내놓고 있다. 다만 현대나 VW나 지역별로 다른 전용 모델들을 내놓고 있기 때문에 이것들까지 다 합쳐 봐야 정확한 우열을 가릴 수 있을 거 같다. 그렇다면 파생 모델의 경우는 어떨까? 두 회사의 대표 모델인 아반떼와 골프를 예로 들어 보자. 우선 현대 아반떼는 기본형과 아반떼 쿠페, 아반떼 하이브리드 모델이 있고 여기에 아반떼를 베이스로한 벨로스터가 포함된다. 그리고 해치백 모델인 i30와 i30 왜건(유럽에서만 판매) 등을 넣을 수 있다. 기본형 포함 총 6가지의 모델이 있다. 골프는 어떤가?

 

해치백 골프 기본형은 현대처럼 쿠페라 칭하지 않고 3도어와 5도어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거기에 고성능 모델인 GTI와 GTD가 있다. 여기서 다시 기본형과 고성능 모델에 카브리오(오픈카)가 새로운 가지를 치게 된다. 물론 왜건인 바리안트가 있고 다시 골프 플러스라는 변형 모델이 등장한다. 현대 벨로스타와 비슷한 시로코가 있고, 골프의 세단 버전인 제타와 제타 하이브리드로 다시 나뉘며, 마지막을 하드탑 오픈카인 Eos가 장식한다.

 

이렇게만 계산해도 10가지 모델이 나온다. 아직 등장하지 않은 골프 하이브리드, 그리고 출시 준비 중인 골프R까지 합치면 12개가 된다. 여기에 더해 엔진 라인업 역시 VW은 더 세분화 되어 있다. 무엇보다 현대가 패키지로만 옵션을 선택할 수 있는 반면 VW는 패키지 옵션 외에 고객이 요구에 따라 개별 구성이 가능하게끔 해놓고 있다. 한마디로 가격과 성능, 성격 등, 운전자의 요구에 맞게 모든 것을 세팅할 수 있게 해놓은 것이다.

 

분명 이런 점은 현대가 따라오기 힘든 부분이다. 일단 아반떼 자체가 신기술을 선도적으로 적용하는 모델도 아니고, 골프가 40년 동안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면에서도 두 모델은 단순 비교가 어렵다. 다만, 독일의 골프는 유럽을 내수시장처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현대 아반떼는 그 보다 훨씬 작은 한국만을 내수의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는 점은 감안을 해야 할 것이다.

 

 

오너가 운영하는 회사, 전문 경영인이 운영하는 회사

현대와 VW의 또 다른 차이는 경영방식에 있다. 현대자동차 그룹은 정주영 일가에 의해 경영되고 있다. 현 회장인 정몽구에 이어 아들 정의선이 현대차 그룹을 이어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오너 경영의 강점은 무엇보다 집중화와 빠른 결정에 있다. 오너의 결정이 내려지는 순간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반면 VW은 전문 경영인이 회사를 계속해서 이끌어 오고 있다. 특히 독일 기업 특유의, 이공계 계열의 CEO 선호는 VW에서도 당연시되고 있다. 전 회장이자 현 감독 위원회 의장인 페르디난트 피에히 역시 엔지니어 출신이며, 현 회장인 마틴 빈터콘 역시 이공계 출신이다. 다만 이런 회장의 뒤에는 막강한 감독위원회가 포진하고 있어서 현대에 비하면 의사결정이 신속하지 못한 단점이 있다.

 

 VW을 비롯한 독일 자동차 메이커들은 이런 오너 직접 경영을 현대자동차의 또 다른 강점으로 보고 있다. 경영 방식에 따른 장단점이 있는 건 분명하다. 문제는 얼마나 단점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에필로그: 현대자동차에게

현대자동차 그룹은 한국 내에서 점유율 80%를 차지하는 그야말로 독점적 기업이다. 국민이 팔아준다는데 달리 할 말이 뭐 있겠는가? 하지만 이 철벽같은 80%에 안주했던 현대는 요즘 국내 소비자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해 있다. 일부의 현상일 뿐이라고 말하던 사람들 조차 이젠 그 분위기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있다.

 

실제로 현대차가 아닌 다른 대안이 나왔을 때 그 대안을 선택하겠다는 사람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고 이는 수입차 판매가 매 년 늘어나는 것에서 확인되고 있다. 국내에서 현대차 그룹에 제대로 대응할 만한 경쟁력 있는 메이커가 없었다는 것도 이런 독주 현상을 만든 요인 중 하나다. 반면에 폴크스바겐은 독점이 불가능하다. 골프의 판매량을 따라잡을 차가 없긴 하지만  점유율은 현대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독일 내에서 자국 메이커(벤츠, BMW, 아우디, VW, 포르쉐)의 점유율은 약 65% 선. 그 중에 VW은 아우디와 포르쉐를 포함해도 현대 점유율의 절반 정도로 보면 맞을 것이다. 유럽으로 확장시켜 보면 그 비중은 더 떨어진다. VW 그룹 전체 점유율이 유럽 내에서도 1위이긴 하지만 20%대일 뿐이다. 방심할 상황이 없는 무한 경쟁 시장이다. 끝없는 기술개발과 브랜드 가치를 지키고 키우는 일에 전쟁을 치르듯 임해야 버틸 수 있는 그런 시장인 것이다.

 

해외에서 도전자라면 한국에선 지키는 자, 챔피언 타이틀을 달고 있는 자가 현대자동차다. 어떻게 해도 늘 점유율은 유지할 수 있는 시장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여유를 부린 것은 아니었을까?  이 여유가 틈을 만들었고, 그 틈을 헤치고 수입차들이 이젠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한 채 한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늘 하는 이야기이지만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치고 자국민들의 지지와 환호를 받지 않고 성장한 예는 없다.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독일 경제 발전시기에 VW은 비틀과 불리 등으로 국민들의 위로와 희망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그 기조는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다. 현대 역시 정부와 국민들의 지지 속에 성장했다. 최초 독자 모델도 개발했고, 수출을 통해 국가 경제를 살찌워냈다. 하지만 지금은 그랬던 회사가 공룡이 되어 되레 국민들로부터 비판의 소리를 듣고 있다. 상황이 뒤집힌 것이다. 이걸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 그건 결국 한국의 소비자들이 느끼고 있는 상대적 박탈감을 달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해외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차를 판매하는 회사로 인식된 현대가 유독 내수에서는 비싼 차를, 그것도 수출용에 비해 떨어지는 품질로 승부를 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난은, 후발 주자로 해외 시장에서 힘겨운 경쟁을 펼쳐야 하기 때문에 차이를 둘 수밖에 없다는,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현대의 호소 조차 인정받지 못하게 만들었다.

 

내수시장을 소홀히 하면 안된다. 더 좋은 서비스로 승부해야 한다. 오해가 있다면 풀고, 소비자들의 지적이 맞다면 깨끗하게 인정하고 받아 들여야 한다. 지금처럼 모든 걸 ‘고객의 탓으로 돌리는 기업’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로는 더 많은 아군이 등을 올리는 결과밖에 얻지 못할 것이다. 이를 위해선 정부도 친기업적 제도를 소비자 중심의 제도로 바꾸어야 한다. 더 안전하고 더 좋은 차들을 기업이 만들 수밖에 없도록 정부는 건강한 압력을 가해야 한다.

 

또 소비자들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낼 수 있어야 한다. 무조건적 비난이 아니라 제조사에 합리적 비판을 가할 줄 알아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언론의 역할과 중요성도 빼놓을 수 없다. 이쯤 되면 이런 얘기를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도대체 현대자동차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 그러게. 현대자동차가 뭐라고 이 열변을 토할까?

 

하지만 이는 현대차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우리를 위한 목소리다. 독일인들이 VW을 국민의 차라 자부심 갖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대한민국 운전자들도 현대차를 바라보며 할 수 있길 바란다. 오래된 현대차를 끌고 모임에 나와 축제를 벌일 수 있는 그런 자동차 문화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5년 후에 ‘현대 VS 폴크스바겐’ 컨셉으로 다시 글을 써보고 싶다. 그래서 지금과는 많이 달라진 내용들로 다시 지면을 채우고 싶다. 난 대단한 애국자도, 현대차를 사랑하는 자도, 그렇다고 지치도록 욕을 해대는 안티도 아니다. 그저 대한민국 태극마크가 달고 경기에 나갔을 때, 홈구장에 관중 몇 명 없이 뛰는 초라한 일이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독일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벤츠는 벤츠고, 골프는 역시 골프다." 과연 한국사람들 입에서 "현대는 역시 현대이고 쏘나타는 역시 쏘타나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 현대자동차 스스로가 답을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