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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말해보기

스케치북, 이것도 첫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요?


ⓒinthemake.com

 

얼마 전 동네 문구점에 들렀다 커다란 스프링 노트 한 권이 눈에 띄어 집어 들었습니다.

스케치북을 들고 집으로 오며 무엇을 그릴까 들떠 있던 어린 시절의 어느 때가 떠오르더군요.

오늘은 제가 왜 블로그 제목, 트위터 닉네임 등에 스케치북이라는 굳이 어울려 보이지 않는(?) 단어를 가져다 쓰는지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삼촌과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저는 물감향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정작 제 자신은 그림에 소질이 없던 터라 그저 잘 그려진 그림을 감상하고 혹은 그림이 그려지는 그 신비스러운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곰브리치 서양 미술사를  선물로 받아 들고 한 동안 그림이 전해주는 이야기 속에 빠져 있었고, 고흐의 강렬함에 매혹돼 

지금껏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도 혼자 미술관 같은 곳 가길 즐겨했죠.  '스케치북'을 좋아할 수밖에 없던 

환경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림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스케치북에 집착한 건 아니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임에도, 색이 바랄 것 같은 어린 시절의 기억임에도 또렷하게 남아 있는 짧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늦가을 즈음이었을 거예요. 겨울방학이 다가오고 있었고

겨울이 지나면 4학년이 된다는 설렘이 가득했습니다. 학년이 올라가는 게 뭐가 그리 좋았을까요?

아무 이유도 없었어요. 딱 하나, 그 여자 아이와  한 반이 될 수 있을 거란 기대 외에는...

 

제가 당시 살던 곳은 'ㄷ'자 모양의 조금은 독특한 구조의 아파트였습니다. 전 B동 9층 맨 끝 집, 제가 좋아하던 

여자 아이는 C동 8층의 맨 끝집에 살고 있었어요. 복도식 아파트여서 저희 집 베란다에서 보면 그 아이의 방 창문이

복도 뒤편으로 보이는 그런 구조였죠. 반은 달랐지만 부모님끼리 알고 지냈기 때문에 저희도 금방 친해졌습니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뛰어 놀았습니다. 

 

비라도 오는 날에는 방에서 그 친구와 방에서 뛰어 놀았고,

요란을 어찌나 떨었는지 툭하면 어머니께 혼이 났습니다. 

일찍 저녁밥을 먹고는 베란다로 달려가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그렇게 달려가 보면 저 보다 먼저 그 아이는 

창문을 열고 저희 집 쪽을 올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뭐라고 대화는 해야겠는데 거리가 참 애매했어요. 그냥 말하기엔 좀 멀고, 그렇다고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쓰시던 스케치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그런 맹랑한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린 그 때부터 각자 스케치북을 들고 거기다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과를 세 개 그리고 그 중 한 개에

엑스 표시를 하며  먹었다는 시늉을 하면 그 아이는 대번에 제가 무얼 말하는 것인지 알아 들었습니다.

 

어느 날 그 아이는 '100'이라는 숫자를 적은 스케치북을 들어 보여줬어요.

백 점 맞았다고 자랑하는 거였죠. 췟~

뭐 그런 식의 둘만의 대화는 한 동안 계속 됐습니다.

스케치북에 그려진 건 말이 아닌 그림이었지만 그건 분명 길고 긴 이야기의 형상들이었습니다.



그 아이를 마지막으로 보던 날이 기억됩니다. 그 날도 비가 왔고, 역시나 방 침대 위에서 엄마의 호통이 있기 전까지 

우린 뛰어 놀았습니다. 그런데 그 날 따라 그 아이 표정이 좋지 않았어요. 

그 때 어린 제가 뭘 알았겠어요. 그냥 놀기 싫은가 보다 그러고 말았습니다. 

 

그 아이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모양이었어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 같았습니다. 

장대비는 계속 되었고 그 날 저녁은 스케치북 대화를 할 수 없었습니다. 불 꺼진 그 아이의 창문을 바라보며

내일은 일요일이니 일찍 만나 놀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잤을까요?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러 가는데 부모님께서 늦은 시간까지 대화를 나누고 계시는 게 보였습니다. 

어머니는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눈물을 흘리고 계셨죠. 저는 꿈인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다시 잠이 들었고 

그 어느 때 보다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늦은 아침을 차려주는 어머니의 표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역시 늦은밤 모습이 꿈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얼른 한 그릇 뚝딱 해치운 저는 그 아이의 집에 놀러 가겠다며 현관문을 밀고 나갔습니다. 

그 친구가 살던 8층 복도에 들어서는데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현관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뭔지 모를 

휑한 기운이 복도 전체를 휘감았습니다. 

 

현관 앞에 선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집 안은 텅 비어 있었고, 몇 장의 더럽혀진 신문지와 오래된 먼지들만이

어지럽게 집 안을 굴러 다니고 있었습니다. 현관 앞에서 우리 집 쪽을 올려다 봤습니다. 분명 그 아이 집이 맞았어요. 

'어떻게 된 거지?' 

 

아이의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어 보았습니다.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작은 방 벽장 문이 조금 열려 있었죠. 

그곳도 열어 보았습니다. 텅 비어 있었습니다. 아니요. 텅 비어 있다고 생각한 곳 구석에 스케치북 한 권이

놓여 있었습니다.

 

저랑 대화를 할 때 쓰던 그 스케치북이었습니다. 100이란 숫자가 적혀 있고,  베개 싸움 하는 우리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스케치북이었습니다. 멍하게 스케치북을 들고 서 있는

저에게로 언제 오셨는지 엄마가 다가오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제 손을 잡고 그 곳을 빠져나왔습니다.

 

막연하지만 슬픈 일이 일어 났다는 걸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엄마에게 묻지를 못했어요.

왜 그 아이 부모님은 한 밤 중에 몰래 이사를 가야했는지, 그리고  왜 멀리로 떠나야 했는지,

한 동안 어머니는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저도 더 이상 그 아이와의 이별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알게 됐습니다. 다시 돌아오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은 그렇게 사라져갔습니다.

 

얼마 후 저희도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사 중 그 아이를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었던 스케치북을 저는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분명 어머니가 버린 건 아닐 텐데 왜 저는 그걸 제대로 챙기지 못했을까요?  그렇게 동네를 떠나오면서

그 아이에 대한 기억도 잊혀져 갔습니다. 

 

하지만 참 신기하게도 그 흐릿한 시절의 이야기는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돌아왔습니다. 

무심하고 무표정하게 추억이란 이름으로 되찾아 온 것입니다. 하지만 추억 속 그 아이는  

얼굴과 목소리가 모두 제거된 뒤였습니다. 어떻게 생겼었고, 어떤 목소리를 하고 있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소중한 한 때가 이제는 편린처럼 조각나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스케치북으로 함께 했던 시간 만큼은 너무나 선명하게 저의 기억을 붙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스케치북 속 그 아이의 모습 만큼은 지금까지 제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물론  세상에서 가장 예쁜 모습으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