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대한민국 관용차 시스템, 이제는 바꿉시다

 

좀처럼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 블로그이지만, 오늘은 일종의 '썰'을 푸는 시간을 가져 보려고 합니다. 지자체장들의 관용차에 관한 얘기인데요. 트위터 상에서 관용차에 대한 생각을 한 두 번 언급을 하긴 했지만 사실 별 관심은 없었습니다. 굳이 차 타는 것까지 끄집어 내 비판하는 게 적절하냐 하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단순히 정치적 맥락에서만 이해하고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자동차에 대한 의식, 또는 자동차를 통해 드러난 계급의식에 대한 부분까지 생각이 미치니까 한 번쯤은 블로그에서, 뭐 심도 있게는 아니더라도 언급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일단, 여기 자료를 하나 보여드릴 테니까 그거 보면서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50년대 쓰여진 밴스 패커드라는 사람의 책에 보면 당시 미국의 대기업들은 직급에 따른 6단계의 차량 운용 지침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 대기업의 지침 내용입니다.

1. 세일즈맨 : 저렴한 포드, 쉐보레, 플리머스 (당시 2,200달러 전후)

2. 세일즈 관리자 (수퍼바이저) : 포드, 쉐보레, 플리머스 (2,500달러 전후)

3. 부세일즈 매니저 : 머큐리, 폰티악, 닷지 (2,800달러 전후)

4. 세일즈 매니저 : 올스모빌, 디소토, 뷰익 (3,600달러 전후)   

5. 부장급 : 크라이슬러, 링컨, 캐딜락 (5,100달러 전후)

6. 부사장급 이상 : 캐딜락 모든 차종 중 선택


금액과 차 종을 통해 직급 간 차이를 분명히 하고 있죠. 요즘도 저렇게 대놓고 나누는 곳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기본적인 마인드는 별반 달라진 것이 없지 않나 생각됩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기업들도 직급에 따른 가이드 라인이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곳들 있다 들었습니다. 예전에 한 번 말씀 드렸지만 한국에서 파견나온 대기업 부장급 간부들의 경우 독일에서 차를 선택할 때 아우디 A6, BMW 5, 벤츠 E클래스 등을 보통 탑니다. 그 이하로 내려가면 속된 말로 '가오'가 안 나서 못 탄다는 거죠. 회사 체면도 물론 있겠고요. 어느 기업 부장은 뭐 탄다는데 우리가 이래서 되겠어? 그런 의미겠죠. 어떤 회사는 그래서 적정 차량들을 정해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뿐일까 싶어요. 자동차를 통해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고, 자신의 재력도 과시하고 싶고, 그것으로 층위를 구분하는, 나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것은 어쩜 흔하디 흔한 주변의 일일지도 모릅니다. 열심히 돈 벌어 그 걸로 차를 소비하는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은 손톱만큼도 할 마음 없습니다. 오히려 멋있게 보이기까지 하니까요. 하지만 자신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자동차, 계급화된 자동차 소비에 대해선 시선이 편할 리 없습니다.

 

그런데요. 이런 비판이 가장 우선적으로 적용돼야 할 곳이 있다면, 저는 그게 정치인들과 지자체장들이 아닐까 합니다. 최근에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니까 우리나라 관공서에서 사용되는 관용차량들이 약 8,600여 대가 있는데 그 중 경차는 2,250대로 비율로는 25.9% 정도라고 합니다. 업무의 성격 상 차가 작아서는 안되는 곳들도 있겠지만 단순한 이동 수단으로 쓰이는 게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좀 비판 받을 부분이라 봅니다.

 

그나마 지역별로 보면 경기도가 경차 관용차 비율이 42%로 가장 높았고요. 충북은 5.3%만 경관용차라고 하더군요. 이런 차량에 대한 제도가 없는 건 아니에요. <저공해 차종 구매의무제도> 라는 게 있긴 하지만 유명무실하다고 합니다. 원래 2012년까지 경차와 하이브리드 차종이 전체 관용차의 70%가 되게끔 약속을 했는데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는 거죠. 일단 하이브리드 차량 비용 자체가 부담이 될 테고, 그렇다고 정부나 지자체에서 수입차를 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죠. 그런 점은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준중형 이하 소형차는 얼마든지 늘릴 수 있는 부분이라 봅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좀 더 거슬리는 자료는 광역,기초 단체장들의 관용차 보유 현황인데요. 총 245명의 지자체장 중 배기량 3000cc 이상의 차를 타는 분들이 101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3.5~4.0리터 이상도 20명이나 되고요. 이런 대배기량 대형차량은 국가의 에너지 절약 정책과도 맞지 않는 거 아닌가요?

대형 관용차 중 가장 많이 탄다는 체어맨W

과연 지자체장들이 4.0리터짜리 고급 리무진을 탈 필요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꼭 지자체장들만 해당되는 건 아닐 거예요. 우리가 석유 생산국도 아니고, 국가적으로 에너지 부족으로 힘들어 하고 있는 이런 시대에 5년 지나면 관용차 연한이 끝난다는 이유로 수천만 원짜리 고급 세단을 놔두고 다시 새 차를 구매해 타고 다닌다는 건 국민 정서상 맞지 않아 보입니다. 

 

 

1. 대배기량 차량 금지

그래서 제 나름대로 관용차 활용에 대해 몇 가지 룰을 정해봤습니다. 우선 그 직책이 누가 됐든 3천cc 이상의 세단을 관용차로 사용하는 것을 법으로 아예 금지시키는 겁니다. 요즘 터보 달고 다운사이징도 됐겠다, 정치인들이나 지자체장들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겠다, 뭣하러 욕 먹어가면서까지 저리 비싼 고급차를 타냐는 거죠. 얼마든지 2.0~2.5 수준에서도 좋은 차들 있는데도 말이죠. 

 

저 정도면 업무 보는 데 하나 지장도 없고, 요즘 차들 충돌 테스트 결과도 좋아 안전하기까지 합니다.또 요즘처럼 정치인들에 대해 비판적일 때, "아무개 도지사는 누구처럼 관용차 사적으로 끌고 다니다 오토바이랑 접촉 사고 안내고 좋네." " 아무개 구캐의원 국회의원은 요즘 지하철로 출퇴근 한다지? 관용차는 필요할 때 2.0디젤 연비 좋은 걸로다 몰고 다닌대!" 이런 얘기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되고 말입니다. 배기량 크다고 일 잘되는 거 아닐 텐데 말이죠.

이런 거 타고 다닌다고 '폼' 안나는 거 아닐 텐데...좀 심했나? 암튼!

 

2. 차량 관리 통합 시스템 및 공개 의무화

앞서 얘기한 5년 지나면 차량을 바꿀 수 있게 한 법부터 바꿔야 한다 봅니다. 요즘 차들이 얼마나 좋아졌습니까? 택시도 아니고 관용차를 왜 5년이란 기한을 두고 바꾸게 하는 걸까요? 관리만 잘하면 10년은 거뜬히 탈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 시장님, 우리 도지사님, 우리 00님 귀한 분들이라 5년 된 똥차 타면 안돼요. 우리 지역민들 자존심이 있지!" 라고 말하는 분들은 설마 안 계시겠죠? 그렇다면 바꾸죠!

 

그래서 차량 가계부 식으로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언제 어디를 갔고, 기름은 얼마나 썼고, 정비를 평소에 잘하고 있는지 등을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시스템을 통합 관리하게 하는 겁니다. (자동차 전담청 같은 곳이 있음 좋겠네요.) 그리고 단체장 차량의 운행 내용은 누구든 원하면 공개해서 보여줄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렇게 했는데도 사적으로 골프치러 갈 때도 마음대로 쓸 수 있나 보는 겁니다.

 

 

3. 의전용은 쉐어링

중요한 해외 손님을 모실 때는 그럼 어떻게 하느냐? 정확히 요즘 시스템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 필요하다면 부처별이 아닌 행정부가 통괄 관리하는 의전용 차량을 그 때 그 때 나눠 쓰게 하는 겁니다. 물론 연비 효율성 고려된 차가 된다면 더 좋겠죠.

 

 

4. 왜 우리만?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떨까요? 다른 곳은 잘 모르겠고 독일은 장관들 차량이 다들 고급입니다. 이에 대해 비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큰 문제제기는 하지 않습니다. 일만 잘해 보세요. 국민은 아무 소리 안합니다. 아무 소리 안하기만 할까요? 오히려 좋은 차 타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 도지사님 파가니 후에이라 사주셈~!" 이럴 수 있다는 거죠.

 

남의 나라가 어떻게 하는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그냥 우리나라는 우리의 방식으로 하면 됩니다. 그러면 국회의원들, 장관들, 지자체장들, 검소하다고 오히려 해외 언론에서 칭찬하고 우리도 배우자고 할지도 모르겠죠. 고급 관료들의 체면 따지는 자세는 그냥 국민들 안 보이는 곳에서 하시고, 일에 매진하고 열심히 나랏일 걱정하는 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관용차 시스템 싹 바꿉시다! (여기에 여와 야가 어딨겠습니까)

 

그리 정부가 바뀌고, 정치인들이 바뀌면 그것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훨씬 크고 의미 있게 우리에게 다가올 겁니다. 당연히 대기업들도 눈치 보면서 따라 바뀔 테고, 그게 다시 작은 단위, 개개인의 마음까지도 변화를 주게 될 겁니다. 이런 게 진짜 '낙수효과' 아니겠어요? 허례 허식 바꾸자는 구호는 아주 옛~~~날부터 있어 왔습니다. 하지만 그걸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국민 한 명 한 명에게 명령처럼 요구하는 게 아닌, 정부가 솔선수범하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 전기 아낀다고 관공서 사우나 만들기 전에, 관용차부터 바꿔 보자고요.국민들이 믿고 희망하는 정부나 정치인 되는 길, 의외로 멀리, 어렵게 있는 거 아니란 생각입니다. (이건 무척 상징적 의미가 있는 거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