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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말해보기

챔스와 코파 이탈리아로 본 유럽축구의 두 얼굴



자동차블로거이지만 오늘은 축구 얘기를 좀 할까 합니다. 물론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거, 그냥 축구 좋아하는 팬의 입장에서 보고 느낀 점을 적는다는 점 감안하고 읽어주셨음합니다.

 

지난 주말 유럽 축구계에서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가지 큰 이벤트가 있었죠. 하나는 유럽 프로 축구 최고 팀을 가르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린 것이고, 또 하나는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을 축하하러 간 싸이에게 관중들이 보낸 인종차별적 야유 사건이 그것이었습니다.

 

최고의 경기, 그리고 승자와 패자

 

이 곳 현지 시각으로 토요일 저녁에 펼쳐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독일 프로팀 간의 대결이라는 점 때문에 흥행적인 면이나 경기 내용에서 처음엔 많은 기대를 받지 않는 분위기였는데요. 하지만 막상 경기가 끝나고 나자 언론들은 물론 전 세계 축구 팬들은 근래 들어 가장 멋진 경기를 봤다며 엄지손을 치켜 들었습니다.

ⓒ Tom Hevezi/EPA/DPA

 

정말 숨죽이며 90분 동안 관전을 했고, 개인적으로는 꿀벌들을 응원했습니다. 바이에른 뮌헨은 독일 내에서 가장 인기구단입니다.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선수들은 누구나 바이에른에서 뛰기를 꿈꾸는 그런 명실상부한 독일 최고의 프로축구팀이죠. 다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선수들을 싹쓸이하는 거 아닌가 싶어 좀 거부감도 있고, 또 너무 강자이다 보니 내심 반발심도 ㅎㅎ; 좀 생기고 그렇습니다. (사실 바이에른의 정치색이나 지역 우월주의 등에 대한 반발도 없잖아 있습니다.)

 

어쨌든 도르트문트와 바이에른의 결승전은 강한 정신력과 체력, 전술과 개인기 등이 시종일관 팽팽하게 붇딪혔고 역시 뒷심에서 딸린 도르트문트가 아르옌 로벤의 골로 무릎을 꿇고 말았죠 승패를 떠나 이 날 경기는 한 편의 멋진 드라마였습니다.

 

하지만 결승전을 빛낸 건 경기 내용 말고도 또 있었죠. 챔피언스리그 4강권이라 늘 평가되는 바이에른 뮌헨이 12년 만에 우승컵 빅이어를 들어 올리는 동안 그라운드에는 승자를 축하하며 동시에 선수들과 원정 온 팬들을 위로하는 도르트문트 위르겐 클롭 감독이 있었습니다. 동시에 바이에른 팬들은 고개를 떨군 도르트문트 선수들을 향해 진심어린 격려와 존중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 Laurence Griffiths/Getty image

 

사실 결승전이 벌어지기 전 영국 웸블리 구장 근처에서는 양팀 팬들 사이의 작은 소동이 이미 한 차례 있었죠. 늘 그렇듯 과열된 응원으로 인한 물리적 충돌이었지만 경기 전후로 해서 우려했던 큰 폭력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독일 축구 팬 역시 영국이나 이탈리아 팬들 못지 않게 과격한 응원을 펼치지만 다른 곳과 달리 독일의 경우 인종차별적 야유나 욕설을 날리는 경우는, 적어도 축구장 안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충구장만 가면 정신줄 놓는 독일인들이라 맥주캔이며 쓰레기들로 웸블리 구장을 더럽힌 것에선 비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뭐 이런 정도만 빼면 이날 챔스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경기력, 경기후 팬들이나 양팀의 태도는 어느 때보다 보기 좋았습니다. 경기 후 도르트문트 팬들과 뮌헨 팬들은 영국 시스템에 따라 지역적으로도 양분되어 섞이지 않았고, 이런 점이 충돌을 막는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날 챔스 결승전의 옥의 티는 바이에른 뮌헨 구단주 울리 회네스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탈세혐의로 현재 60억 이상의 보석금을 내고 가석방된 상태에 있는 그가 필립 람의 권유에 못이겨 빅이어를 들어 올렸을 때 도르트문트 팬들의 야유가 흘렀나왔는데요. 원래 독일은 특이하게 세금범죄자가 자진 신고를 하고 벌금을 내면 형사적 처벌을 면할 수 있습니다. 울리 회네스도 세무당국과 이런 약속을 하고 45억원을 냈는데, 그 과정이 독일 검찰에 제보가 되면서 검찰은 그를 먼저 기소를 해버렸습니다. 해서 현재 가석방 상태에서 재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독일 최고 구단의 성공적인 구단주이자 독일 여당의 실세들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울리 회네스의 탈세 소식은 독일인들의 마음에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 바람에 메르켈 입장이 참 난처하게 됐고, 실제로 지지율도 영향을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올해 총선이 있는 독일에선 울리 회네스 탈세가 중요한 정치적 이슈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여전히 바이에른 팬들의 일부는 그를 지지하지만 그 외 독일 여론은 그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독일 검찰의 이런 발빠른 대처를 보면서 왜 저는 그들이 부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인종차별 없는 분데스리가 축구장

울리 회네스 얘기로 잠시 얘기가 옆으로 흘렀습니다만, 어쨌든 독일 축구장엔 인종차별 구호를 듣기 어렵습니다. 이는 그들의 역사와도 관련지어 생각을 해볼 수 있는데요.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은 권력의 독점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알았기에 대통령과 총리로 권력을 양분했고, 나치즘을 옹호하거나 히틀러를 지지하는 것을 아예 원천적으로 법적으로 금지시켰죠.

 

이런 독일의 자기 반성과 엄격함은 축구장에서도 발휘되었습니다. 그 결과 인종차별 같은 반문명적 행위는 유럽 어떤 나라의 축구장 보다 덜하게 됐죠. 함부르크에서 뛰는 손흥민이나 아우구스부르크의 지동원과 구자철 등이 원정 경기에서 팬들에게 야유를 듣거나 인종차별적 언사를 받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없다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비록 팬들 간의 물리적 충돌이 있고, 격렬한 응원 문화로 인해 가끔은 인상을 찌푸리게도 되지만 경기 전 인종차별을 하지 말자는 캠페인을 선수들과 팬들이 함께 펼치는 등의 다양한 노력을 통해 더 큰 문제는 발생되지 않고 있습니다. 거기다 요즘 독일 프로팀들의 약진과 흑자 경영 등의 긍정적 결과들도 이런  분위기 조성에 일조한다 하겠는데요. 챔피언스리그에서 독일팀끼리의 결승전이나 유로파리그에 참가했던 독일 팀들은 좋은 경기력 등이 그 예라 하겠습니다.

 

대체로 고액의 스타 선수에 의존하지 않고 팀의 재정을 늘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도 좋은 경기력을 만들고 있다면 그 안에서 부정적인 요소들이 자리잡긴 힘들 것입니다.그에 비해 이태리 세리아 A는 반대의 분위기다.

 

싸이 야유 받다! 

우선 유럽 프로축구 3대 리그로 불리던 세리아A는 자국의 경제적 어려움과 맞물려 적극적인 투자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고, 이는 고스란히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계속해 좋은 결과를 보여주지 못함은 물론 4장의 출전권이 리그 순위에서 밀리며 3장으로 줄어두는 수모까지 당해야 했죠.

 

하지만 지난 일요일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을 앞두고 펼쳐진 싸이의 축하공연에서 이태리 축구팬들이 보낸 야유는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로만 해석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오래 전부터 이태리 축구팬들의 인종차별적 행위는 유럽 내에서도 비판을 받아 온 부분이라 이날 사건은 야유 이상의 의미로 우리에게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이태리 언론에 올라온 싸이 공연 관련한 캡쳐화면입니다. 이날 공연은 사실 좀 문제가 많았습니다. 싸이의 문제는 아니고요. 유투브 동영상을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하프타임 공연이 아닙니다. 경기 전 공연이었어요. 라치오와 AS로마의 서포터즈(우리 식으로 좋게 표현해)들만 경기장을 채운 상태에서 강남스타일이 흘러나왔습니다.

 

인종주의 살아 있는 광팬들의 구장

라치오와 AS로마는 이태리 내에서도 광팬들로 유명한 팀들입니다. 각목끝에 식칼을 붙이고, 손도끼를 긴 나무 막대에 달아 경기장에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죠. 더더군다나 현지에서 들리는 얘기로는 싸이 공연료 때문에 입장료가 올라서 (한화로 2만 원 정도 올랐나 봅니다.) 좀 화가 나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축구를 즐기로 온 사람들이 아니라 전쟁을 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고, 그런 양팀 응원단 사이에서 공연을 했으니 반응이 좋았을 리 없었겠죠.

 

하지만 이런 현장 분위기를 십분 이해한다고 해도 노래 부르는 내내 야유를 퍼붓는 것은 결코 좋은 태도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가수여서가 아니라 누가 무엇을 했더라도 인종차별적 행위가 일어나는 건 안되는 것이죠. 우리나라 분들도 많이 알고 있는 토티가 뛰고 있는 AS로마는 라이벌 AC밀란과 경기 때 발로텔리 같은 선수에게 인정차별 행위를 해 나중에 벌금을 물기도 했습니다. 라치오는 한 술 더 떴죠.

 

2004~2005시즌 라치오 소속으로 이태리 국가대표 출신의 파올로 디 카니오는 경기 중 골을 넣고 나치식 경례 퍼포먼스를 해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인물입니다. 공공연하게 자신이 파시스트이며 거기다 인종주의자라는 것까지 더해져 결코 좋게 볼 수 없는 그런 문제적 선수였죠. 최근엔 잔류가 확정된 선덜랜드의 감독으로 부임을 했는데요. 퍼거슨 경까지 나서 그의 감독으로서의 자질을 인정하며 논란을 차단했습니다.

 

하지만 지동원 선수의 원 소속팀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걱정부터 앞서는 게 사실이고, 어떻게 해서든 인종차별 덜한 분데스리가에 남아 좋은 선수생활을 했으면 하는 게 개인적 바람입니다. 이렇듯 이태리 축구계는 파시즘, 인종차별주의와 늘 싸워야 하는 곳입니다. 과연 이런 곳에서의 싸이 공연이 적절했는지는 좀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무솔리니와 히틀러로 대표되는 파시즘과 나치즘의 전쟁 패전국이 보여주는 전쟁 이후의 대응과 그 결과물은 이처럼 극명하게 갈리고 있습니다. 특히 이 대비감은 지난 주말 챔피언스리그 결승전과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을 통해 더 선명히 우리에게 비춰졌습니다. 비록 축구라는 스포츠 종목 하나에 한정돼 드러난 모습이긴 하지만 이는 역사 교육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또 자신들의 과오를 얼마나 철저하게 반성했는지 등의 태도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는 국경과 인종을 뛰어넘어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운동경기입니다. 이런 축구가  더 확장되느냐, 그렇지 않고 혐오스러운 모습들로 인해 위축될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축구를 사랑하는 팬들과 축구인들 스스로의 노력에 달린 문제가 아닐까요? 

 

"지난 주말 우리는 축구 경기장 두 곳에서 전혀 다른 두 얼굴의 유럽을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