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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2011년 서울의 겨울밤, 그 도로 위 풍경들


이번 한국 방문 동안 저는 지하철로 택시로, 가끔 버스 뒷좌석에 오랜만에 앉은 채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습니다. 주머니 비록 넉넉치 않을지라도 성탄과 연말을 맞는 사람들의 종종걸음과 표정에선 따스함과 풍성함 읽을 수 있었고, 독일의 칙칙한(?) 밤풍경이 아닌 화려한 서울의 야경엔 그만 낯선 이방인의 감탄사가 툭하고 튀어나와버리기도 했습니다. 강변길을 달리는 택시에서 바라본 한강은 그 화려함을 품은 채  어느 때 보다 넓고도 깊게 출렁이며 겨울밤의 삭막함을 덮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서울의 도로 위가 마냥 화려하고 낭만적이지만은 않더군요.



광경 1

첫 번째 불편함은 주말 모임을 위해 강남으로 향하던 택시에서의 경험이었습니다. 마포에서 강남역으로 가는 택시를 탔던 것이 저의 불찰이었는데요. 주말이고 하니 퇴근길도 아닌 강남이 되려 한가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늦어도 40분 정도면 충분할 줄 알았던 약속장소까지 1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흔히 말하는 '놀토'에 유독 결혼식까지 많이 겹쳐 있던 주말에 용감히 강남행 택시를 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주 많이 늦어버린 결정적 이유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한남대교를 조금 지나면서부터 막히던 도로는 이내 신사역 주변에 들어서면서 거의 옴짝달싹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조금의 도로 공간이라도 있을라치면 차들은 그 곳에 머리를 드밀기 일쑤였고, 차선이 없는 곳까지 차선이 만들어지며 병목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무슨 사고가 난 거 같은데요? 어쩌죠, 죄송해서?" 기사 아저씨는 연신 코스를 잘 못 잡았다며 제게 죄송해 했지만, 사실 그 분이 무슨 죄가 있을까요?

겨우 신사역을 빠져나온 택시는 하지만 논현동 방향에서 터미널로 가는 도로와 만나는 사거리에서 철퍼덕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고장이 난 것이 아닙니다. 도저히 제 신호를 받고도 직진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죠. 터미널 쪽에서 어떤 사고가 있었던 것인지 차량 흐름 자체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파란 신호가 두 번 정도 바뀌어야 꼬리를 물고 있던 차들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사거리에서 꼬리를 물고 있던 차들이 어렵사리 엉덩이를  빼어주었고, 이제 우리쪽 파란불이 들어오면 쏜살같이 그 아수라장을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라며 기사님은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금 논현동 쪽에서 사거리로 차들이 밀려들어옵니다. 분명 앞쪽에선 차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음에도, 그렇게 상황이 뻔히 보이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일단 신호가 떨어지자 차들이 앞차 꼬리를 콱 물고는 사거리를 공간을 점령해버린 것입니다. " 아니 진짜 뭐 저런 XX들이 있어!!!" 참고 참던 택시기사분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잠잠하던 차들의 경적음이 결국 일제히 공격해대기 시작합니다. 좀처럼 직진하지 못하는 옆 차선 차량의 운전자들 눈에서는 강력한 레이져광선들이 뿜어집니다. 그렇게 전쟁터 같은 사거리를 빠져나온 것은, 직진 신호가 5번이 바뀌고 나서였습니다...

눈앞의 넓다란 도로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1분이라도 빨리 가야하는 상황. 하지만 택시는 다시 교보빌딩이 있는 사거리에서 장벽을 만나게 됩니다. 이곳 역시 터미널 방향으로 가려는 차들이 사거리 중앙까지 꼬리를 물고 늘어서는 통에 꼼짝을 할 수 없게 된 것이죠. 몇 번의 신호가 바뀌고, 몇 번의 욕설이 서로간 오가고, 성질날 대로 난 차들의 클락션 소리들이 산을 만들고 난 뒤, 겨우 현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상황이 일어나는 걸까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막가파식 사거리 꼬리물기를 40여 분에 걸쳐 당하고 나니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물론,  흔한 경우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교육되어지고, 조금만 상황을 이해하는 운전을 했더라면, 그렇게 조금씩 양보운전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짙은 아쉬움은 이후 내내 가시질 않았습니다. 서울은 적어도 도심 도로시스템만 놓고 보면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도로를 이용하는 주인공들은 과연 세계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네요.
 


광경 2

버스 막차도 끊긴 늦은 시각. 밤바람이 차갑긴 했지만 좀 걷고 싶은 마음에 길을 씩씩하게 걷고 있었습니다. 도로변은 택시 잡으려는 귀가족들로 분주했죠. 그런데 그들 뒤로 낯선(?) 광경이 눈에 띄더군요. 은행 현금인출기 있는 곳에 두툼한 점퍼를 입은 남자분들이 여럿 모여 있는 것이 아닙니까? 가만히 보니 현금인출기 있는 곳곳마다 비슷한 분위기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서로 그닥 친하지 않은 듯 대화도 없이 그저 핸드폰만 들여다 보는 어색한 분위기였죠.
 
대리운전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추위를 피해 그렇게 있었던 것이죠. 왜 그리 그 모습들이  생경하던지요. 걷는 발걸음 위로 이름모를 무게감이 얹어졌습니다...



광경 3


밤 12시. 한적한 도로변에 노란색 학원차들이 여러 대 줄지어 서 있습니다. 곧 아이들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도대체 밤 12시의 추운 겨울밤, 아이들은 집에 있지 않고 왜 이런 곳에 있는 걸까요? 저 학원버스는 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실어 나르고 있는 걸까요? 매일매일 저렇게 치열하고도 희안한 경쟁 구도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은 무얼 배우고, 어떤 삶을 익혀가는 걸까요? 


이제 새로운 해를 맞이합니다. 우리나라 도로, 과연 내년에는 어떤 표정들을 만들어 낼까요?  이젠 너무나 익숙해 아무런 느낌조차 없는 이런 광경들 속에서 우리는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짧은 일정을 바삐 마치고 독일로 돌아왔습니다. 몇몇 분들껜 제대로 인사도 못 전하고 돌아오게 돼 죄송했는데요. 이 자리를 빌어 다시금 사죄의 말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