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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독일영화 어때요?

어떤이들에겐 위험할 수 있는 독일영화 '몰락'


오랜만에 영화 한 편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독일영화는 오락적이기 보다는 진중하고 무겁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만합니다. 이 쪽 사람들 성향이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합니다. 대신에 이런 무거움은 잘만들어진 영화를 통해 깊은 여운이나 생각의 '거리'를 만들어줄 때가 많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2004년 영화 몰락(Der Untergang)이 이런 독일영화의 특징을 잘 반영해주고 있다고 보여지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몰락-히틀러와 제3제국의 종말' 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는 이 전쟁영화는 독일이 아니면 만들 수 없습니다. 바로 소련군의 베를린 공세에서부터 히틀러가 자살할 때까지의 이야기이기 때문인데요. 목격자들의 증언과 트라우들 융에라는 젊은 비서의 회고록이 바탕이된 이 영화는 지하벙커 최후의 날들을 생생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살다보면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을 독일의 시점, 독일의 관점에서 다룬 영화들을 제법 많이 접하게 됩니다. 그간 헐리웃 중심의 서구에서 그려진 2차대전과는 다른 시각이라는 점에서, 전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데 충분히 풍성하고 다양한 생각을 갖게 해줍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독일에서 만든 2차대전 영화만큼 전쟁에 대해 비판적이고 비극적인 영화를 만나기도 어렵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들이면서도 전쟁이 얼마나 잔혹하고 비참하며 슬픈 것인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전쟁피해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자칫 신화가 될 수 있는 히틀러에 대해 자살을 앞두고 실패할까 두려워 하는 인간으로, 계속되는 소련의 공세에 어찌할 수 없는 나약한 지휘관의 모습으로 그를 그려냅니다. 신화라는 가림막을 벗겨낸 히틀러는 늙고, 연민을 불러일이킬 만큼 무기력하게 그려지죠. 하지만 이 연민의식을 일으키는 히틀러의 모습은 자칫,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전쟁살육광에 대한 측은지심을 갖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스럽게도 보여집니다. 

이런 점만 조심해서 본다면 영화 몰락은 우리가 그간 접할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관점과 소재의 영화이며, 소름돋는 배우들의 열연을 감상하는 영화로 그리고, 매우 사실적인 과정을 통해 2차대전 패망시점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최고의 영화라 단언할 수 있습니다. 2시간 30분의 긴 러닝타임만 감당할 수 있다면 결코 놓치지 마시라 추천을 하고 싶은데요. 특히 선동선전의 대가이자 히틀러 자살 후 잠시나마 수상에까지 오른 괴벨스의 자녀들 시퀀스는 충격과 슬픔 그 자체였습니다.


영화 속 공보장관 괴벨스 부부와 그 자녀들


요셉 괴벨스의 아내가 아이들을 모두 독극물로 죽이는 장면은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데요. 특히 첫 째 딸은 자신들에게 약을 먹이는 엄마의 거짓을 눈치채고 울며 거부하죠. 하지만 괴벨스의 아내는 침착하고 또 침착하게 이 일을 마칩니다. 결국 괴벨스 부부 역시 자살로 삶을 마무리 하고 마는데요. 전쟁을 선동질한 괴벨스가 그 전쟁으로 인해 자신의 자식들을 모두 죽일 수밖에 없게 된 것은 결코 슬픔으로 미화될 수 없는 잔혹함 그 자체일 뿐입니다.

히틀러의 잘못된 신념과 그 신념을 하늘의 뜻처럼 떠받들던 이들. 그리고 그 신념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살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 이 영화는 갈등과 고민의 총집합체처럼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들이 매우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이처럼 영화는 당시 상황을 사실적이고도 처절하게 재현해 냈습니다. 이야기와 캐릭터 그리고 그걸 끌고 가는 감독의 연출력이 빚어낸 결과였다고 보여지는데요. 독일영화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리얼리즘은 '몰락'을 통해 더욱 그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영화를 다 보고 문득 든 생각... '히틀러가 조금만 더 그림을 잘 그렸더라면 역사는 바뀌었을 텐데...' 

몰락은 히틀러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를 조금도 미화하려는 의도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씀드렸듯 자칫 독재살육광에 대한 연민으로 그를 바라볼 수 있는 여러 장면들이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이 부분만 주의해서 본다면 '몰락'은 단연 최고의 영화입니다. 전혀 다른 시각으로 전쟁사를 바라보고자 하는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는 Der Untergang...독일영화의 진수를 경험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적극 권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