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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스케치

독일 해설자 올리버 칸이 본 16강전의 한국축구


아~ 아직도 아쉬움에 멍한 상태입니다. 게임시작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음을 비웠으니 지든 이기든, 부끄럽지만 않게 싸워달라고 속으로 되뇌였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고 보니, 지든 이기든이 어딨습니까? 무조건 이기라고 소리지르며 응원을 해댔죠!

사실 오늘 독일 중계는 제2공영 방송인 ZDF가 담당했습니다. ARD와 번갈아가며 중계를 하고 가끔 민영방송인 RTL이란 곳에서도 게임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주로 두 공영방송이 번갈아 중계를 하는 식인데요. 내심 올리버 칸이 해설하는 ZDF에서 방송해주기를 기다렸었습니다. 왜냐구요? 칸은 항상 한국 축구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를 해주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해설가였거든요.


당대 최고의 골키퍼였으며 강렬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인 올리버 칸이 많이 후덕해진 모습이죠? 사실 게임 시작 전에 칸은 한국이 1:0으로 우루과이를 이길 것이라고 두 번이나 확신에 차서 얘기를 했었기 때문에 결과와는 상관없이 기분이 참 좋았더랬습니다. 게임시작하자마자 박주영의 아까운 프리킥이 나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정말 칸의 예상이 맞아 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어이없는 실수로 첫 골을 상대에게 내주고 말았죠.

현지에서 중계하는 캐스터가 그러더군요 전반 30분 시점까지 한국 선수들이 너무 움직이지 않는다고...눈으로 봐도 선수들이 잔뜩 긴장한 것이 보였습니다. 개인적으로 화면에 비춰지는 허정무 감독의 상기되고 긴장된 표정을 보면서, '감독이 저렇게 긴장하면 어쩌냐' 싶어 맘이 편치가 않았는데요. 다행히 후반들어 한국선수들이 엄청나게 파생공세를 펼쳤습니다.

우루과이가 무리하게 틀어막는 수비축구를 너무 일찍 했던 게 아닌가 싶어서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아~ 결국 수아레즈에게 다시 한 방 맞으며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아쉬움도 컸지만 다행인 것은 한국선수들이 그래도 이전과 같은 어이없는 축구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수비의 불안도 여전했고 결정적 찬스를 날려 먹은 것도 있었지만, 최선을 다한 경기가 아니었나 싶더군요.

게임이 끝나고 차두리 선수가 독일 중계팀과 울면서 인터뷰하는 모습이 어찌나 안됐던지요..."후반들어 최선을 다했고 8강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려했다.. 아쉽다. 아프다...하지만 우리팀은 젊기에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다음을 위해 다시 일어서겠다.." 라며 눈물의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화면에 고개를 떨군 한국 선수들이 나오자 현지 캐스터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 한국 선수들은 고개를 들기 바랍니다. 당신들은 고개를 떨굴 이유가 없는 멋진 축구를 했고, 고개 들어 당당하게 어깨펴고 고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고개를 드세요!"

코끝이 찡해왔습니다. 별의별 불만과 비판도 해왔지만 그 한 마디 들으니 선수들을 다독이고 싶어지더군요. 스튜디오로 화면이 넘어오고 올리버 칸은 16강 첫 경기에 대해, 한국축구에 대해 간단하면서도 애정어린 멘트 3가지를 해줬습니다.

1. " 두 번째 수아레즈에게 먹은 골은, 그 각도에서는 그 방향으로 찰 수밖에 없었다. 골기퍼는 그걸 알 수 있었어야 했다. " <- 직접적이진 않았지만 정성룡의 경험부족을 언급한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골 역시 수비진들의 커뮤니케이션 문제와 골키퍼의 경험 부족을 얘기했던 터였기에, 이 점은 분명하게 한국축구가 개선을 해야 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2. " 한국 축구 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축구는 너무 착하고 얌전한 축구를 한다는 것이다. 강하고 영리하고 때론 나쁜 축구를 할 필요가 있는데 그렇지 못하다." <- 경기내내 제가 아내에게 했던 얘기를 똑같이 해주더군요. 무식하고 거친 파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악할 정도로 영리한 축구를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순딩이들이 착한 축구를 한 것입니다. 

3. " 우루과이가 압박도 잘했고 결국 2:1로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진짜 축구, 정말 축구다운 축구는 우르과이가 아닌, 한국이 했다. 그들이 멋진 경기를 보여줬다." <- 이 사람 예전부터 계속 한국축구에 애정을 갖고 얘기를 했었습니다. 차붐의 나라, 차붐의 아들이 뛰는 축구여서 그랬을까요?... 아무튼, 허~한 가슴을 안고 앉아 있는 저를 올리버 칸이 마치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기분이었습니다. 

이제 4년 후를 준비해야겠죠. 이번의 경험을 철저히 교훈삼아 훨씬 나은 축구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한국 선수들 고생많았고, 열심히 뛰어줘서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 올리버 칸....진심으로 고마워요! "

(덧붙이기 : 아내가 그러더군요. " 박주영 선수는 서 있는 볼은 잘 차면서 굴러다니는 공은 왜 못 차? " 전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 없었습니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