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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자전거 천국 유럽은 왜 헬멧 의무화를 안 할까?

9월 말부터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헬멧을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합니다. 이용자들의 안전을 위해 정부가 결단을 내린 것인데요. 그런데 요즘 이 규정이 상당히 논란입니다. 안전을 위해서이니만큼 무조건 착용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과, 자전거 문화 활성화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의견들이 동시에 쏟아지고 있죠.

사진=adac


사실 외부 칼럼용으로 글을 쓸까 하다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의견을 적고 싶어서 블로그에만 글을 올리기로 했으니 다소 내용이 정돈되지 않았더라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선 자전거 하면 유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겠죠? 정말 자전거 천국입니다. 


독일만 하더라도 2011년에 이미 7천만 대의 자전거가 보급됐다고 하네요. 엄~청납니다. 독일만이 아닌, 유럽 전체가 자전거를 좋아하고, 권유하고,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문화가 발달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럽에서 자전거 헬멧 의무화한 나라는 1~2곳이 전부입니다. 왜 그런 걸까요? 


현재 헬멧 의무화 국가

호주, 뉴질랜드 : 벌금이 있다

핀란드 : 벌금이 없다

스페인 : 도시 밖에서만 모든 자전거 운전자에게 헬멧 의무화 적용


수십 년 된 독일의 헬멧 의무화 논쟁

그리고 반대 이유

독일의 경우 자전거 헬멧 의무화 관련한 논쟁은 이미 7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합니다. 40년이 훌쩍 넘은, 꽤나 오래된 이슈라 할 수 있겠는데요. 이처럼 긴 세월 논쟁을 벌이면서도 지금까지도 독일은 물론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자전거 헬멧을 의무화하지 않고 있습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내 / 사진=이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 사진=이완

독일을 대표하는 자전거 단체로 ADFC를 꼽을 수 있는데 이곳은 공식적으로 헬멧 의무화에 반대입니다. 또 유럽 자전거 포럼 등에서도 헬멧 의무 착용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뭘까요? 바로 '자전거 이용자 감소'입니다.


헬멧을 반드시 써야 한다면 이 헬멧을 착용하는 것을 불편해하거나 부담을 느끼는 이용자들이 자전거 타는 것을 포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실제 세계 최초로 1991년 자전거 헬멧을 의무화한 호주의 한 조사에서도 30% 정도 이용자가 줄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호주의 자전거 이용자가 백만 명을 조금 넘는 수준인 것에 반해 앞서 알려드린 것처럼 독일에는 자전거 보급이 7천만 대, 매년 생산되는 자전거가 2백만 대가 넘습니다. 잠깐의 외출 시에도, 또 출퇴근을 위해, 독일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다양한 이유로 자전거를 이용합니다. 날 좋을 때면 시내든 동네든, 곳곳에서 자전거를 만나게 되죠. 독일 인구의 80%가 자전거를 갖고 있는 셈인데, 만약 헬멧을 의무화하게 되면 이 숫자는 분명 줄어들 것입니다.

독일에서 자전거를 이용하는 성인들의 10% 정도만이 헬멧을 착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쾨팅엔 / 사진=ADFC


특히 독일이나 네덜란드 등, 대부분의 유럽에 보급된 자전거는 산악용이나 경주용이 아닌 생활형 자전거라는 점에서 의무화에 따른 자전거 이용자 감소는 어렵지 않게 예상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전거 이용자가 줄게 되면 자동차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시민 건강 증진, 그리고 환경 문제 등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이 유럽의 자전거 단체는 물론, 정치인이나 시민들의 공통된 인식으로 보입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역설적으로 헬멧 의무화로 인해 안전 의식에 소홀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독일에는 자전거 헬멧만을 위한 비영리단체(fahrradhelme.org)가 있는데요. 이곳에 소개된 반대 의견 중 헬멧을 착용한 운전자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헬멧을 착용했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자전거 운전이 거칠어질 수 있고, 그로 인해 사고를 더 쉽게 당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스페인처럼 도시 외, 혹은 도시와 주택가 외의 곳에서만 헬멧을 의무화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합니다./ 사진=ADFC


또 자전거 이용자가 줄게 되면 오히려 남은 자전거 이용자들이 사고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명확하게 데이터로 증명된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 받아들일 수만은 없지만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은 아닌가 합니다.


헬멧은 사실 크게 도움이 안 된다?

캐나다 조사 보고서

세 번째는 헬멧 의무 착용이 사실 크게 도움이 안 된다는 의견입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이 소개한 자전거 사고 관련한 캐나다 보고서가 있었는데요.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캐나다는 1994년부터 2003년까지 6개 주에서 자전거 헬멧 착용을 의무화했었다고 합니다. 나머지 4개 주는 의무화에서 벗어났죠. 그리고 1994년부터 2008년까지 캐나다 조사 그룹이 자전거 사고로 병원을 찾은 7만 명의 부상자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부상자의 30%가 머리 부분을 다쳤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이 숫자는 헬멧 의무 착용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비율이었다는 게 당시 조사 그룹의 분석이었습니다. 그리고 의무 착용한 주와 자율에 맡긴 주의 머리 부상 차이가 크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의외의 결과라 할 수 있겠네요.

독일의 20세 전후 젊은이들은 헤어와 패션 스타일을 망칠 수 있어서 헬멧 의무화를 반대한다고 답했다고 하네요. 이게 이유가 될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이게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 사진=볼보


다만 그 조사 그룹은 전체적인 부상자 수의 감소는 있었지만 이것이 헬멧 의무 착용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없고, 오히려 예전에 비해 자전거용 도로 등, 이용을 위한 인프라가 개선이 된 점, 그리고 자전거 이용자들을 위한 정부나 단체들의 지속적인 교육에 따른 자전거 문화의 개선이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슈피겔과 인터뷰한 독일 뮌스터 대학 병원의 한 의사는 캐나다 내용을 독일에 직접 대입하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독일과 달리 생활형 자전거가 많지 않기 때문에 문화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죠. 또 부상자들이 헬멧을 착용했는지 안 했는지를 명확하게 조사했는지도 의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외에 몇 가지 이유를 들며 조사의 허점을 비판했는데요. 하지만 그럼에도 이 의사조차도 헬멧이 필요하나 이것을 의무화하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습니다. (2013년 기사)


우리나라 헬멧 의무화 뭐가 문제일까?

이제 우리나라로 넘어와 볼까요? 자전거 헬멧 의무화 얘기는 과거부터 있던 것입니다. 정치 성향, 몸담고 있는 정당 관계없이 법안을 만들려는 시도를 했었죠. 그러다 이번에 결정이 된 것인데요. 역시 앞서 이야기 드린 것처럼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자전거 이용자가 1,3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자전거가 늘어날수록 자전거 사고도 늘었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조사를 해보니 사고로 인한 부상자 중 머리를 다친 것이 전체의 38%로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위험한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헬멧을 의무화하는 게 맞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뭔가 빠진 거 같지 않으세요? 


교육과 인프라 개선부터 

자동차도 자전거도 함께 교육돼야

독일 자전거 전용도로 / 사진=ADFC


자전거 이용자들이 늘고 사고가 늘었으니 헬멧을 의무적으로 쓰라고 하기 전에, 자전거 이용자들이 늘고 있으니 자전거의 편리하고 안전한 이용을 위한 인프라 확대를 먼저 해야 합니다. 또 자동차 면허 취득 과정에서 자전거에 대해 철저하게 교육해야 합니다. 물론 어렸을 때부터 자전거에 대한 교육도 해야겠죠. 아이들 때 가장 좋은 습관, 좋은 인식을 심기에 좋기 때문입니다.


누차 이야기 드렸지만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자동차가 자전거 옆을 앞질러 갈 때 법으로 도로 상황에 따라 얼마의 간격을 두어야 하는지 아예 정해놓았습니다. 그래서 유럽의 자동차 운전자들 대부분은 자전거 옆을 지나갈 때 좌측으로 넉넉하게 간격을 두고 떨어져 갑니다. 체계적으로 교육된 자전거 운전자들 역시 도로를 어떻게 이용하는 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지 알고 있습니다.  


특히 자동차는 시동을 켜는 순간 보행자 및 자전거와 동등하지 않다는, 그래서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개념이 이들의 문화 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이 저는 인상적입니다. 그렇다면 자동차 면허 취득할 때만 이런 내용을 배우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독일에서 자전거 교육은 초등학교에서 정식 과목입니다. 아예 면허취득 과정까지 있죠. 실제로 경찰들이 와서 이론과 실기 시험 때 감독을 하고 아이들에게 형식적이긴 하지만 합격증을 나눠줍니다.

사진=ADAC

학교에서 제대로 교통신호나 표지판 보는 방법을 배우기 때문에 아이들은 운전자를 방해하거나 방해받지 않는 편이다/ 사진=이완


이 합격증을 받기 위해 아이들은 교통 문화 전반에 대한 교육을 받게 되죠. 자전거를 어떻게 타야 하는지 이때 열심히 배우는 것입니다. 어릴 때는 올바른 자전거 문화에 대해, 자동차 면허증 취득 시에는 올바른 자동차 문화에 대해 공부를 합니다. 헬멧의 필요성을 배우고 국가는 권장합니다. 단체들은 헬멧 안전 테스트를 해 그 결과를 공개하기도 하죠. 당연히 자전거 교육도 계속 됩니다. 하지만 헬멧 선택은 자율에 맡기죠. 


저는 이런 기초 과정이 생략된 채 '자전거 증가 ---> 사고 증가 ---> 헬멧 의무화'라는 단계로  훅~하고 건너 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를 배우고 인프라를 늘려나가는 것이고, 그런 다음에 헬멧 논쟁을 해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네요. 


특히 요즘은 자전거 공유서비스가 늘고 있는데 과연 어떻게 대응을 할지도 의문입니다. 호주에서도 공유서비스용 자전거 헬멧 분실이 많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분실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썼을지도 모를 헬멧을 공유하려고 할까요? 또 그 위생 관리는 어떤 식으로 할 수 있을까요? 이런 부분도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진=픽사베이


헬멧을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좋습니다. 네. 당연합니다. 설령 그 효용성이 다소 과장되었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정말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을 걱정한다면 제대로 된 교육부터 해야 합니다. 자전거 이용자는 물론 자동차 이용자 모두에게 말이죠. 


지금이라도 정부가 좀 더 큰 틀에서, 그리고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했으면 합니다. 자전거 헬멧 의무화가 자전거 보급을 막고, 그래서 환경 개선이나 시민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볼 문제가 아닌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