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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전기차가 시대가 오면 세단은 사라진다?

얼마 전이었죠. 포드가 미국에서 세단 라인업을 접고 SUV에만 집중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세단 모델들의 판매량 부진 때문이었는데요. 포드만이 아니라 크라이슬러와 GM도 일부 세단들을 정리하기로 했다죠. 유럽과 아시아의 경쟁력 있는 세단들과의 경쟁이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미국에서 앞으로 사라질 미국 차 퓨전 / 사진=포드


그렇다면 이렇게 세단이 빠져나간 자리는 무엇으로 채워질까요? 하이브리드와 순수 전기차를 위해 투자를 늘릴 것이라는 게 포드의 발표 내용이었습니다. 긴 역사 속에서 수많은 세단을 내놓았던 포드가 자국에서 더는 세단을 팔지 않겠다? 무척 상징성이 큰 결정이 아닌가 합니다.


전기차 + SUV = 대세될 것

그만큼 SUV의 인기가 높다는 얘기가 되겠는데요. 세단 단종 카드까지 꺼내 든 것을 보면 SUV 인기가 잠시 분위기를 타다 끝나는 일시적 현상이 아닐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특히!! 앞으로 배터리 전기차가 더 많이 만들어지고 팔려나가게 되면 SUV와 전기차의 조합은 더욱 깊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세단의 존재감은 그만큼 희미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iX3 콘셉트카 / 사진=BMW

전기차와 SUV의 조합? 이것이 왜 대세일 것이라고 이야기되는 걸까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현재 배터리 전기차의 경우 구조적으로 배터리팩은 거의 차의 밑바닥에 깔리는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일부 모델의 경우 다른 형태를 하고 있지만 완충 후에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느냐를 배터리 전기차의 중요한 경쟁력으로 보는 현재 기준에서는 차 바닥 면을 제외하고서는 이를 달성하는 게 쉽지 않을 듯한데요.

i-Pace 배터리 구조 / 사진=재규어


전기 SUV 조합의 장점 3가지

그렇다 보니 지상고가 낮은 3박스 노치백보다는 최저 지상고가 높아서 배터리팩을 깔기에 상대적으로 편안하고 배터리를 외부 충격으로부터 좀 더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SUV가 전기차와의 조합에 유리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실내 공간 역시 중요한 고려 대상이니 그 점에서도 SUV가 유리한 것은 분명하죠. 아주 파격적인 배터리 능력과 구조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엔 바닥에 배터리팩이 장착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듯합니다.


더군다나 SUV는 인기가 높습니다. 또 상대적으로 세단에 비해 가격 상승에 대한 저항에서 조금 더 자유롭기까지 합니다. 소비자가 원하고, 제조사는 설계하기 편하고, 마진까지 높은 SUV 전기차가 많아질 것이라는 건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재규어가 내놓은 I-Pace만 하더라도 전형적 SUV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치백이라고 부르기에도 모호한, 말 그대로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형 모델입니다.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는 만큼 형식을 파괴한다는 전략적 측면도 있지만 결국은 배터리를 많이 장착해 더 멀리, 그리고 더 (배터리 보호에) 안전하게 달릴 수 있어야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한 게 아닌가 합니다. 덕분에 무게 중심을 낮추는 효과도 볼 수 있게 됐죠.

i-Pace / 사진=재규어

곧 양산형으로 실체를 드러낼 아우디 전기 SUV E-TRON 콘셉트카 / 사진=아우디

벤츠가 내놓을 전기차 EQA 콘셉트카 / 사진=다임러

현대도 소형 SUV 코나 전기차를 공개했다 / 사진=현대


재규어뿐만이 아닙니다. 몇 개월 후에 만나게 될 아우디의 순수 전기차 역시 SUV가 되며, 메르세데스 벤츠 역시 전기 SUV를 내놓게 됩니다. 물론 모든 전기차가 SUV 형태를 하는 건 아니겠죠. 쉐보레 볼트 EV나 BMW i3 등을 봐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런 전기차들 역시 배터리팩을 바닥에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세단의 형태가 아닌, 다소 변형된 해치백, 미니밴과 해치백이 섞인 그런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쉐보레 볼트 전기차 / 사진=쉐보레

i3 / 사진=BMW

 

결국 전기차는 장거리를 가기 위한, 그리고 외부 충격으로부터 좀 더 안전하게 배터리를 보호할 수 있는, 그러면서 실내 공간을 일정 정도 만족시킬 수 있는 SUV, 그리고 지상고가 높은 크로스오버 타입이라는 두 가지 형태를 중심으로 흘러가지 않겠나 예상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세단이 사라진다고 하기도 힘듭니다. 다양한 소비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상품성 있는 전기 세단도 내놓아야겠죠. 물론 스포츠카 또한 그렇고요. 하지만 자동차 생산과 소비의 중심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전기차의 경우 SUV와 크로스오버로 바뀔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설득력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큰 틀에서 본다면 미래 전기차 시대엔 형태를 나누고 체급을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 되지 않겠나 싶은데요. 앞으로 나올 전기차를 이런 관점에서 지켜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