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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바꿔야 산다' VW과 현대차 기업 문화

얼마전 몇 분과 자동차 기업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나온 얘기가 폴크스바겐 그룹과 현대자동차 그룹이 비슷한 면이 있다는 것이었는데요.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닮았을까요?


디젤 게이트로 드러난 VW 민낯

사진=VW


2015년 터진 디젤 게이트는 디젤 자동차 배출가스 문제만이 아니라 사기 당사자인 폴크스바겐 그룹의 오랜 병폐를 대중들이 인식했다는 점에서 이래저래 큰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명령하면 밑에서 거부하지 못하는 권위적 구조, 경직된 구조, 그리고 내부 문제를 끄집어내 반발할 때 이를 개선의 기회로 삼는 게 아니라 조직적으로 덮어버리려 했다는 것 등이죠.


2011년, VW의 한 엔지니어가 배출가스 조작이 있는데 이래서는 안 된다며 상급자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목소리는 묻히고 말았죠. 미국 시장의 강력한 질소산화물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SCR 같은 후처리 시스템으로 가야 하는데, 이게 비용적인 측면에서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고 경영 그룹은 무조건, 어떻게 해서든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명령을 내렸고, 이에 대해 원가 상승이 없이 요청한 기간 안에 해결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결국 명령에 대해 합리적 비판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나쁜 방법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누구도 함부로 “아닙니다. 그렇게는 안 됩니다.”라고 말을 못 했던 것이죠.


그런데 이런 분위기는 예전부터 있던 것이었습니다. 어떤 문제가 발견됐을 때, 상사나 감사 부서 등에 말했다가 오히려 해고를 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또 경영진뿐만 아니라 폴크스바겐 노조 간부들의 비리도 만만치 않았죠. 노조 간부들이 성접대를 받는 일로 발칵 뒤집히기도 했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자동차 학자 두덴회퍼 교수는 폴크스바겐의 경영 집단과 노동조합의 권력화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죠. 경영 구조부터 거대한 노조의 힘은 반발을 용납하지 못했다고 많은 독일 언론들이 전하기도 했습니다. (오해 없기 바랍니다. 노동 운동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은 아니며, 기본적으로 저는 노동 운동을 지지합니다. )


마르틴 빈터코른과 현대 i30

이 기업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2011년 프랑크푸르트모터쇼 현장에서 현대 부스를 찾은 당시 회장 마르틴 빈터코른을 기억하실 겁니다. 현대가 내놓은 i30를 줄자 등을 들고 꼼꼼히 살피던 그가 운전석에 앉아 누군가를 급하게 불렀죠. 


폴크스바겐 수석 디자이너인 클라우스 비숍은 신경질적으로 자신을 부르는 회장에게 급하게 달려옵니다. 핸들 높이 조절을 하는데 왜 이 차는 소리가 안 나느냐고 따지듯 묻는 빈터코른의 모습이 영상을 통해 공개됐죠. 클라우스 비숍은 우리도 방법은 있지만 그렇게 되면 비용이 더 든다는 답변을 내놓습니다. 영상을 보면 마르틴 빈터코른과 클라우스 비숍과의 대화 모습이 마치 절대왕정 시대의 왕과 신하를 느끼게 합니다.

마르틴 빈터코른(가운데) / 사진=아우디


실제로 마르틴 빈터코른은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공학박사 출신으로 품질 부서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페르디난트 피에히 감독이사회 의장의 지원 아래 회장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됐죠. 물론 자신을 내치려던 상왕 피에히에 반기를 들고 결국은 자리를 보존할 수 있었지만 디젤 게이트로 결국 그도 물러나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꼼꼼하고 무서운 빈터코른 회장은 사실  페르디난트 피에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죠.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독일 자동차 업계의 전설과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외할아버지 회사인 포르쉐 시절, 경영진의 만류에도 엄청난 돈을 쏟아 부으며 917같은 괴물차를 만듭니다.


또 아우디 사장으로 지금의 아우디가 되는 거의 모든 기초를 닦기도 했습니다.  그룹 회장의 자리에 올라서는 폴크스바겐 그룹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게 했습니다. 포르쉐와의 경영권 다툼에서도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제국의 주인이 됐습니다. 그는 기술에서 최고였고, 경영에서도 최고였습니다. 너무 강력한 리더십으로 경쟁사에서는 저승사자로 묘사할 정도였죠.

페르디난트 피에히 / 사진=VW


상명하복, 명령하면 어떻게 해서든 이뤄내야만 했고, 그런 상황에서 반론을 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뛰어난 기술력과 경영능력을 가진 리더들이 회사를 이끈다는 건 큰 복이지만, 한편으로는 내부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없고, 회사의 문제를 공론화하는 게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공룡같은 기업의 구조도 복잡해서 일처리 또한 늦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업의 문화는 한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 현대에서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군대식 문화?

현대자동차의 기업 문화를 이야기하면 흔히 나오는 표현이 바로 군대식이라는 것입니다. 2016년, 한겨레신문에서 현대차의 기업 문화와 관련한 기사를 낸 적이 있는데요. 이때 현대 직원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도 ‘(회사가)군대 같다.’ ‘일이 너무 많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경직된 구조, 불필요한 보고서가 많고,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기 힘든 그런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는 얘기들이 있었습니다. 현대차 사정을 잘 아는 어떤 이는 공무원 사회 같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는데요. 일 열심히 하는 공무원분들께는 죄송한 표현이지만 공감했습니다.


잘못되면 잘릴 수 있다. 그러니 무리를 하지 말자. 이것이 현대차의 기업 문화를 보여주는 또 다른 표현이 아닌가 싶은데요. 뭐 D컷 운전대 하나 새로 적용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할 정도라면, 정말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생각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혹이라도 기업에 경제적 손실을 끼칠까 봐 조심스러워해서 과연 일류 기업으로 자리할 수 있을까요?

사진=현대자동차


요즘은 정의선 부회장이 일선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제게 현대자동차라고 하면 정몽구 회장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기업 내에서는 제왕과도 같은 인물이죠. 오너이자 최고경영자인 그의 심기를 거스르는 게 쉽지 않고, 수십 년을 그렇게 달려온 현대자동차는 소통보다는 명령이 익숙한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고 봅니다.


엔지니어로, 디자이너로, 유명한 외국인들이 현대차로 많이 왔습니다. 다른 세계, 다른 분위기에서 온 이들인지라 뭔가 기업에 새로운 변화를 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너무 빠르고 정확(?)하게 현대의 기업 문화에 그들은 이미 적응했다며 농담 아닌 농담을 하기도 했죠.  

사진=현대자동차

이처럼 두 회사는 일방적 명령, 절대 권력자 중심의 긴장된 구조, 내부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게 힘들다는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유형의 기업들이 이 두 회사만은 아니겠죠. 하지만 두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많이 아쉽습니다. 


‘창조적’ ‘혁신적’이라는 단어를 기업들이 참 좋아하죠. 그런데 과연 이런 기업 문화, 분위기 속에서 창조와 혁신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위기는 내부로부터 온다고 생각합니다. 소통하고, 귀를 열어 더 많은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이 기업 문화로 자리 잡을 때, 그 기업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 집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도전하는 게 두려운, 그래서 만들어진 보신 문화, 왕따 문화, 내부 문제에 과감하게 칼을 빼 들지 못하는 반혁신적 문화가 계속 이어진다면 그 기업은 언젠가  큰 위기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디젤 게이트가 잘 보여줬습니다. 제2의 , 제3의 디젤 게이트는 언제든 다시 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