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첨단 기술에 관한 소식들, 자동차도 예외는 아니죠. 증강현실 기술을 품질 관리에 이용한다든지, 커넥티드 카 시대에 맞춰 원하는 정보 무엇이라도 편하고 빠르게 얻어낼 수 있다든지 하는 것 등을 보면 얼마나 앞으로 자동차가 좋아지고 더 많은 일을 하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런 최첨단 시대를 지향하는 자동차 제조사들이 거의 손 놓고 있던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스마트키의 보안 문제인데요. 원격으로 시동을 걸 수도 있고, 주머니나 가방 안에 넣어만 둬도 차의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키레스고 기능) 것은 물론, 스마트키를 통해 자동차의 기본적 정보를 파악할 수 있고, 또 원격 주차도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이 편리한 키가 의외의 간단한 방법으로 차량 도난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사진=adac
100유로 이하로 쉽게 만들 수 있는 증폭기
스마트키로 차 문을 여닫는 자동차들은 최근 증폭기라는 장비를 이용한 절도에 당하고 있습니다. 절도범들은 대개 2인 1조로 움직이는데, 열쇠와 자동차가 주고받는 신호를 증폭시켜 차를 훔쳐 달아나죠. 집 안 깊이 스마트키를 보관한다고 해도 짧게는 7~8미터, 길게는 100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신호를 잡아내는 통에 해외의 많은 운전자가 알루미늄 포일로 감싸거나 깡통 속에 보관하는 등, 웃지 못할 방법들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이 증폭기가 초창기 때만 하더라도 수천만 원에 범죄자들 사이에 거래됐지만 요즘은 누구나 쉽게 직접 만들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실제로 미국이나 독일 등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도난당하는 차가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된 통계를 내기도 쉽지 않은 정도라고 합니다.
운전자 옆에 1명, 차량 옆에 1명 등, 2인이 한 조로 움직이는 게 보통 / 그림=adac
180대 자동차 테스트에서 한 대도 통과 못 해
증폭기를 이용한 차량 도난 문제가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이슈가 안 되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로 자주 다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독일은 2~3년 전부터 부쩍 이 스마트키 보안을 우려하고 있는데요. 언론과 자동차 클럽 같은 곳에서는 대응책은 물론 제조사들이 왜 이 문제에 손을 놓고 있는지 등에 대해 자주 비판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증폭기 이용한 차량 도난 소식을 접한 게 6~7년 전부터이니 제법 오래된 문제지만, 어찌 된 일인지 제조사들은 적극적 대응을 그동안 하지 않았습니다. 독일 최대 자동차 클럽 아데아체 같은 곳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가장 꾸준히, 그리고 영향력 있게 다룬 곳 중 하나인데요.
지금까지 180개 자동차의 스마트키 보안 문제를 테스트했지만 완벽하게 대응한 모델은 단 한 대도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나마 BMW i3의 경우 시동은 걸렸으나 문이 열리지 않았고, 인피니티 Q30은 반대로 문은 열렸지만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고 하네요. 절반의 성공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최근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의 완벽 대응
디스커버리 / 사진=랜드로버
아데아체는 다른 자동차들과 마찬가지로 랜드로버의 2018년형 디스커버리 모델에 대한 스마트키 보안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증폭기가 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동차 제조사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제대로 대응한 첫 번째 사례라고 아데아체는 밝히기도 했는데요. 랜드로버 측도 스마트키와 자동차 사이에 거리와 신호의 크기를 매우 정밀하게 파악하는 컴퓨터 칩을 심어 놓았다고 아데아체에 알려왔습니다.
증폭기를 이용해서 원래 수준의 주파수에 변화를 주면 자동차는 이상 신호로 간주, 스마트키의 기능을 강제로 OFF 하게 된다는 게 기본 원리라고 하는데요. 디스커버리만이 아니라 상위 모델인 레인지로버와 레인지로버 스포츠(2018년 최신 모델만 해당)도 같은 방식의 보안 대책을 마련했으며, 재규어의 경우 이제 판매가 본격 시작될 콤팩트 SUV E-페이스에 보안이 강화된 스마트키 시스템이 적용된다고 아데아체는 전했습니다.
E-페이스 / 사진=재규어
소비자 비판이 제조사 태도 바꿀 수 있어
사실 이런 문제는 소비자들이 알고 있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차를 사기 위해 상담을 할 때 딜러나 제조사 측에 "스마트키에 이러 이러한 보안 문제가 있다는데, 해결했습니까?"라고 물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고객의 합리적 비판이 커지면 커질수록 자동차 회사들은 해법을 내놓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일단 재규어와 랜드로버 자동차를 구입하려는 고객들은 스마트키 보안 문제에 대해 내가 구입하려는 모델이 이런 스마트키 보안에 대응이 된 것인지 잘 확인할 필요가 있겠고, 영업 현장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정보를 미리 잘 확인해서 고객들에게 알릴 수 있어야겠습니다.
E-Pace 스마트키 / 사진=재규어
최근에는 열쇠 대신 스마트폰을 이용해 차 문을 열고 시동을 거는 자동차가 등장하기도 했죠.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자동차가 열쇠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키의 활약은 새로운 방식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별 것 아니라고 여기지 말고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또 제조사들은 재규어랜드로버처럼 빨리 약점을 보완해 고객들의 불안감을 씻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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