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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어떻게 제네바는 모터쇼의 도시가 됐을까?

서울만큼 크고, 보석처럼 아름다운 레만호 곁에 자리하고 있는 제네바는 스위스에서 두 번째로 많은 사람이 사는 도시입니다. 두 번째라고는 하지만 인구 20만 명 수준으로 그리 크지 않은 곳인데요. 수백 개에 이르는 국제기구가 있으며, 금융의 도시이자 동시에 끊임없이 관광객이 찾는 이곳에서 88회째를 맞은 제네바 국제 모터쇼(Geneva International Motor Show)가 열리고 있습니다.

2018 제네바 모터쇼 포스터 / 출처=gims.swiss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어떻게 해서 이 작은 도시, 그것도 자동차 브랜드 하나 없는 곳에서 메이저 모터쇼가 열리게 됐는지 말입니다. 디트로이트, 프랑크푸르트, 파리, 상하이, 베이징, 도쿄, 서울 등, 모터쇼가 열리는 이 도시 모두는 자국 자동차 브랜드를 가진 곳들이지만 제네바는 자동차와 연결 지을 만한 게 잘 안 보입니다.

제네바 전경 / 사진=luftbilder-der-schweiz


과학과 기술의 도시

막 20세기에 들어선 제네바는 지금과 달리 과학과 기술의 도시였습니다. 특히 이웃한 프랑스에서 종교 박해 등을 피해 건너온 시계공들이 자리를 잡으며 시계 산업이 크게 성장하게 되죠. 쉐보레 자동차의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루이 쉐보레가 제네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태어났는데, 그곳 역시 시계 산업이 발달한 곳이었습니다.


이처럼 유능한 시계공은 물론 여러 산업 분야에서 활약하는 엔지니어들이 제네바와 그 인근에서 탄생하게 됩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스페인 자동차 브랜드도 스위스의 엔지니어와 함께 자동차를 만들기도 하는 등, 재력가들이 기술자들을 지원하며 에너지 넘치는 기술 도시로 자리하게 됐습니다.


자동차 자체에 관심이 많았던 곳

또한 제네바는 첫 모터쇼가 열린 1905년 이전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독일어권 스위스 지역과 달리 프랑스어권 서스위스는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그에 따라 자동차 수백 대가 제네바 시내에서 돌아다녔습니다. 스위스 주요 도시 몇 곳을 합친 것보다 많은 자동차가 제네바에 있었다고 하죠.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인접한 지리적 이점

제네바는 도로는 물론 30분 정도 걸려 레만호를 가로지르면 바로 프랑스에서 올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 프랑스인들이 제네바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죠. 이탈리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중요한 자동차 회사들이 북이탈리아에서 생겨나 발전했는데 제네바와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쑥쑥 커나가던 자동차 산업과 자동차 문화가 제네바로 흘러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본과 기술, 그리고 문화가 한 곳에 모였으니 자연스럽게 자동차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몇몇이 자동차박람회를 개최하기로 뜻을 모으게 됩니다.

2016년 제네바모토쇼 현장 / 사진=gims.swiss


어렵게 시작된 모터쇼, 그리고 성공

당시 제네바의 첫 모터쇼는 스위스 자동차 클럽(ACS)의 회장, 또 엔지니어링 노동조합의 사장, 그리고 미쉐린 타이어의 스위스 대리인과 사업가 등이 주도하는데요. 부족한 자금은 부족한 재정을 쪼개가며 제네바시가 빌려주는 등, 적극적으로 개최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1905년 4월 29일 역사적인 제네바모터쇼의 첫 문이 열렸습니다. 입장료는 50센트부터 2프랑이었고,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입장권 추첨행사도 벌여 1등에게는 오토바이를 주는 등, 흥행에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그 결과 5월 초까지 열린 모터쇼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습니다. 1만 7천 명이 넘게 찾았고 15,000프랑의 돈을 남겨, 시에서 빌린 500프랑도 어렵지 않게 갚을 수 있었습니다.


2회 모터쇼는 더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3회는 취리히로 잠시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모터쇼는 1911년 급증하는 보행자에 대한 사고로 자동차 금지령이 발동되자 모터쇼 주최측은 이런 분위기에서 모터쇼를 열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됩니다. 그리고 1차 대전이 터지면서 1924년 다시 모터쇼가 개최될 때까지 꽤 긴 시간 제네바모터쇼는 열리지 못했습니다.


제네바모터쇼는 계속될 수 있을까 

2018년 제네바모터쇼 현장 / 사진=gims.swiss


1924년 국제 모터쇼로 인정받으며 규모는 커집니다. 관람객 숫자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죠. 2차 세계대전으로 다시 한번 모터쇼가 열리지 않았지만 이후 제네바모터쇼는 특정 자동차 회사들이 주도하는 박람회가 아닌, 모두에게 공평한 모터쇼라는 이미지를 얻으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성공적인 길을 달려온 제네바모터쇼도 걱정이 없는 건 아닙니다. 모터쇼 참가를 포기하는 제조사들이 늘고 있고, 자동차 회사들이 적극 참여하는 가전박람회의 성장도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직접 현장을 찾지 않아도 신차 정보를 파악하고 경험할 수 있는 인터넷은 모터쇼의 생존 고민의 가장 큰 요인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제네바모터쇼를 떠받칠 수 있는 자국의 유력 자동차 회사가 없다는 점도 위험 요인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텐데요. 하지만, 그럼에도 매년 70만 명 가까운 관람객이 제네바모터쇼를 찾고 있습니다. 작년만 하더라도 69만 명이 찾았다고 하죠.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이탈리아는 물론 더 먼 곳에서도 박람회를 찾아 제네바를 찾고 있습니다. 이런 관심과 열정이 살아 있는 한, 스위스 작은 도시에서 펼쳐지는 자동차쇼는 오랫동안 버텨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