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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CO2 기준 달성 못한다고?' 자동차 회사들 초비상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낯설어하던 전기차가 요즘은 많이 받아들여지는 느낌입니다. 수십 종의 전기차를 출시하겠다는 제조사들의 경쟁적(?) 발표도 나오는 거 보면 확실히 자동차 패러다임 변화가 그리 멀지 않았다는 생각인데요.


이처럼 전기차에 정부나 제조사가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요? 입장에 따라 조금 다를 수는 있겠지만 역시 환경, 그중에서도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에 따른 대응이 가장 직접적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럽 역시 환경과 보건이라는 두 가지 이유로 인해 배출가스 규제를 강화하고 있죠.

사진=tuev-sued

EU는 2020년까지 제조사들이 연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95g/km을 넘지 말아야 한다고 정했습니다. 만약 이를 어기면 엄청난 벌금이 기다리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벌금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요? 일단 기준은 평균 95g/km이고 여기서 1g/km 초과 시 95유로를 물리도록 했습니다. "액수 별거 아니네!"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A라는 제조사가 한 해 동안 EU 내에서 판매한 전체 자동차 수 곱하기 95유로가 되는 겁니다. 많이 팔면 팔수록, 그리고 기준치를 더 초과하면 할수록 벌금 액수는 하늘을 뚫고 올라가게 되는 것이죠. 이와 관련해 최근 흥미로운(?) 자료가 공개됐습니다. 'PA 컨설팅'이라는 곳에서 11개 자동차 그룹의 이산화탄소 목표 도달 가능 여부를 분석한 것인데요.

PA 컨설팅이 예상한 CO2 예상 배출 순위 / 자료=paconsulting


볼보, 토요타, 르노-닛산, 그리고 재규어 랜드로버 안정권

국제청정운송위원회(ICCT)와 PA컨설팅 자체 자료를 토대로 만들어진 분석 결과는 볼보와 토요타, 르노-닛산, 그리고 재규어 랜드로버 그룹 등만이 자신들의 목표치 이상의 결과를 얻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95g/km을 0.1g 차이로 넘지 않을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뭐 결과는 그때 가 봐야 좀 더 정확하겠지만 어쨌든 몇몇 회사들의 안도의 숨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합니다.


PA 컨설팅은 볼보의 경우 지난해에는 전체 7위였지만 2019년부터 생산하는 자동차에 모두 전기 모터를 장착하겠다고 선언을 했고 이것이 반영돼 1위가 되었다고 전했습니다. 당장 내년에 4개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보이는 등, 선제적 대응을 통해 친환경 브랜드로 거듭나려는 의지가 느껴지는군요. (유럽에서 디젤 판매량이 절대적인 브랜드라는 점도 감안해야겠죠.)

사진=볼보

토요타는 아시는 것처럼 프리우스 등, 하이브리드 모델의 선전이 좋은 미래를 예상하게 했습니다. 다만 배터리 전기차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없다는 점에서는 불확실성을 여전히 갖고 있고, 현재 집중하고 있는 수소연료전지차가 얼마나 판매에 도움이 될지도 좀 더 지켜봐야 할 거 같습니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는 소형차 판매 비중이 높고 전기차에 대해 일찍 투자해 유럽에서는 친환경 차 부분에서 앞서간다고 볼 수 있겠네요. 


독일 제조사, 피아트 크라이슬러는 어쩌나

푸조-시트로엥, 포드, VW 그룹, 피아트 크라이슬러, 벤츠의 다임러, 그리고 BMW 등은 기준치를 넘길 것으로 보이는데요. 특히 독일 제조사와 FCA 등은 자신들이 세운 목표를 넘기는 것은 물론 법적 기준인 95g/km에도 여전히 차이를 보입니다. 만약 PA 컨설팅이 예상한 수치가 현실이 되었을 때 VW 그룹의 경우 얼마의 벌금을 물게 될지 볼까요?


자료에 따르면 2021년에 약 5g/km을 초과하는 것으로 되어 있죠. 그램당 95유로가 벌금이니까 총 475유로가 됩니다. 독일의 한 경제 전문지가 폴크스바겐 그룹의 2021년 EU 내 판매량을 약 455만 대로 보고 있으니까 455만대 곱하기 475유로를 하면 대략 21억 6천만 유로가 됩니다. 요즘 우리 환율(1,285원)로 계산하면 약 2조 8천억 원의 벌금을 내게 되네요. 엄청나죠?


BMW는 약 1조 7천억, 피아트 크라이슬러는 9천 8백억가량의 벌금을 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재규어 랜드로버는 2021년 이산화탄소 예상 배출량이 130.9g/km이나 되는데 왜 벌금을 물지 않는 걸까요?  EU 내에서 한해 판매량이 30만 대를 넘지 않는 브랜드는 2007년 배출량의 45%까지만 달성하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벤츠의 대표 대형 자동차 S클래스 / 사진=다임러


독일의 치열했던 로비, 그리고 실패

이처럼 엄청난 벌금을 물게 될 것이 눈에 보이는 독일 제조사들은 어떻게 해서든 적용 시기를 늦추기 위해 한동안 치열한 로비전을 폈습니다. 메르켈 총리까지 나섰고, 2024년으로 연기해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듯했지만 결국 EU는 원안대로 결정을 내렸죠.


그나마 킬로미터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50g 이하인 자동차가 팔릴 때마다 감경해주기는 수퍼 크래딧 제도를 도입했지만 이번 조사는 이 수퍼 크래딧이 반영된 결과라는 점에도 독일 제조사들이 지금 얼마나 난감한 상황에 처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얼마 전 VW 마티아스 뮐러 회장이 디젤에 대한 세금 감면 제도를 없애고 전기차 활성화에 그 돈을 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또 다른 고민 : 전기차 CO2

곡절의 시기를 지나 전기차 대중화 시대가 온다고 해도 이산화탄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며칠 전에도 관련 글을 썼지만 전기차 생산부터 폐차까지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CO2, 그리고 전기 생산 방법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이산화탄소 발생량 등, 보이지 않는 문제가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죠.


흔히 Well-to-Wheel이라고 해서 에너지원을 채굴해 저장하는 과정에서도 이산화탄소는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때 전기의 경우 석탄으로 만들어졌는지, 아니면 가스나 수력에 의한 것인지 등, 국가별 전기 생산 의존도에 따라 가솔린과 디젤 정유 과정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유럽은 빠르게 친환경 재생에너지의 비율을 올리고는 있지만 여전히 많은 나라가 석탄과 원자력 등의 의존이 여전히 높습니다. 따라서 정치인들과 환경 단체 등은 이런 점이 규제를 정하는 데 반영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사진=픽사베이


3가지 요인 : 디젤 감소, SUV 증가, 비싼 전기차 

이번 보고서를 작성한 PA컨설팅은 목표 달성이 어려운 요인들을 몇 가지 들었습니다. 우선 디젤 점유율이 떨어지는 것이 이산화탄소 규제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제조사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실제로 2017년 독일에서 판매된 신차의 약 39%가 디젤이었는데, 2015년의 절반 수준과 비교하면 크게 떨어졌고, 프랑스 역시 신차 디젤 점유율 50%의 벽이 무너졌습니다.


문제는 이 빠져나간 수요가 친환경 차량으로 간 것이 아니라 대부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높은 가솔린 자동차로 갔다는 것인데요. 제조사 입장에서는 고객의 선택을 말릴 수도 없고,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무거운 SUV 판매량이 계속 증가하는 것도 이산화탄소 배출량 부분에서는 손해라고 봤습니다. 


물론 SUV가 디젤과 결합된 경우가 많지만 요즘 부쩍 판매량이 늘고 있는 소형 SUV의 경우 가솔린 비중이 높고, 소형차의 경우 아예 디젤을 라인업에서 빼는 경우도 계속 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전기차가 너무 비싸다는 점도 고민으로 봤는데요. 유럽은 현재 충전 인프라보다는 전기차 판매가 기대만큼 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가장 우려하고 있는 듯합니다. 

쿠페 SUV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X6 / 사진=BMW


그들 스스로가 만든 문제

하지만 위에서 문제라고 지적된 내용을 들여다보면 자동차 기업 스스로가 만든 결과물은 아닌가 싶습니다. SUV가 주는 높은 이익에 매몰된, 그리고 디젤 게이트 등, 질소산화물 배출과 관련해 디젤에 대한 무너진 신뢰, 여기에 전기차의 경우 기술을 통해 원가를 줄이고 가격 부담이 덜한 모델부터 판매량을 올리는 전략을 세우지 못한 점 등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럽에서만 자동차 회사들은 매년 65조 원을 연구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고 하죠. 그중 상당 부분이 연비 관련한 기술입니다. 그럼에도 몇몇 제조사들은 천문학적인 벌금을 물기 직전에 와 있습니다. 과연 이 문제를 그들은 어떻게 해결할까요? 이산화탄소 목표 달성은 소비자 탓, 정부 탓할 게 아닌, 제조사 스스로가 풀어야 할 자신들의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