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번째 포르쉐 911, 아이리쉬 그린, 그리고 가족

2017년 5월 포르쉐 독일 공장 추펜하우젠에서 백만 번째 포르쉐 911이 생산되었다는 소식, 접하셨을 겁니다. 1964년 처음 만들어진 911은 억대의 비싼 가격임에도 지금까지 백만 대가 넘게 팔려나갈 만큼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죠. 차 잘 모르는 사람도 911이라는 숫자가 포르쉐와 관련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포르쉐 상징과 같은 911 백만 번째 모델의 색상이 아이리쉬 그린인 것은 의외였습니다.

1백만 번째 911 카레라 S / 사진=포르쉐


왜 아이리쉬 그린이었을까?

포르쉐 911 하면 머릿속에 은회색 컬러를 떠올리기가 쉽죠. 물론 개인마다 선호하는 색상이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독일 자동차는 레이싱 대회를 휩쓸던 30년대 당시 은색이 상징으로 쓰였고, 은빛화살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후 은회색은 독일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또한 독일 자동차를 잘 드러내는 색상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징적 컬러 은회색이 아닌 아이리쉬 그린을 중요한 모델에 적용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요? 단순히 색상이 이뻐서라고 하기에는 기념 모델이 갖는 의미와 다소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포르쉐는 특별 모델을 공개하며 그 이유를 간략하게 소개한 바 있습니다. 창업자 페리 포르쉐가 소유한 첫 번째 911의 색이 바로 아이리쉬 그린이었다는 것인데요.

페르디난트 포르쉐와 함께한 페리 포르쉐. 1934년 / 사진=포르쉐


페리 포르쉐는 20대 초반에 이미 아버지가 설립한 포르쉐 설계 및 제조회사를 함께 이끌어 갔습니다. 356이라는 포르쉐 최초의 양산 모델 개발은 물론 포르쉐 박사 사망 후 전설이 된 911을 개발해냅니다. 911은 페리 포르쉐의 대표작이 되었고, 911 탄생에는 맏아들이자 디자이너인 알렉산더 포르쉐도 함께였습니다.

알렉산더 포르쉐 / 사진=포르쉐

아버지 페리와 아들 알렉산더 / 사진=포르쉐


2012년 사망하기 전까지 알렉산더는 포르쉐 디자인에 계속해서 영향을 준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911과 떼어 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이 모두 떠난 지금 회사에는 페리의 막내 볼프강 포르쉐만이 남아 있습니다. 포르쉐 감독 이사회 의장이기도 한 볼프강 포르쉐는 이번 백만 번째 911 생산을 지휘했습니다.


그는 백만 번째 911 생산을 기념해 왜 아이리쉬 그린 컬러를 사용하게 됐는지, 그리고 911 성공 원인은 무엇인지, 또 백만 번째 911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등을 짧은 영상을 통해 전해줬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영상을 여러분과 공유하기 위해 부족하지만 자막을 달아 봤는데요. 일단 보시죠.


<볼프강 포르쉐 영상>


아버지에 대한 오마주 

영상에서 밝혔듯 백만 번째 911에는 페리 포르쉐에 대한 존경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색상 역시 아버지가 처음 소유했던 911 컬러와 맞췄습니다. 영상 속에는 없지만 한 아일랜드 신문은 볼프강 포르쉐 어머니 도로테아 포르쉐가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모든 자동차가 다 초록색이었으면 하고 바라셨죠. 아버지 역시 눈에 띄는 색상보다는 오크 그린이나 브루스터 그린 등을 더 좋아하셨어요." 그러면서 그는 911은 의심할 것 없는 가족의 자동차이며 부모님으로부터 위대한 사랑을 물려받은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진 앞쪽으로 도로테아와 페리 포르쉐, 뒷줄 왼쪽부터 2남 게르하르트, 3남 한스 페터, 장남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막내 볼프강. 1979년 / 사진=포르쉐


이처럼 끈끈해 보이는 가족애는 수십 년간 지속한 외가 피에히 가문과의 경영권 다툼으로 더욱 깊어진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 때 벤델린 비데킹 회장을 앞세워 폴크스바겐을 인수하려다 실패한 후 볼프강 포르쉐는 사촌이자 독일 자동차 업계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페르디난트 피에히 전 의장에게 무시받는 등 힘든 시절을 보내야 했죠. 그러다 극적으로 페르디난트 피에히가 현역에서 쫓겨나듯 물러나게 되며 그제서야 포르쉐 가문 전쟁의 마지막 승자로 남을 수 있게 됐습니다

볼프강 포르쉐 자신도 아이리쉬 그린 컬러의 911 모델을 가지고 있었고 현재는 포르쉐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볼프강 포르쉐와 백만 번째 생산된 911 / 사진=포르쉐


파산까지 염려해야 했던 시절, 그리고 폴크스바겐이라는 공룡을 인수하려다 실패하며 얻게 된 굴욕의 순간들을 뒤로하고 볼프강 포르쉐는 이제 백만 번째 911을 통해 가족과의 추억을 되살려 냈습니다. 과연 그의 바람처럼 백만 번째 911이 포르쉐의 희망찬 미래를 보여줄 상징이 될 수 있을까요? 911의 역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그 달려갈 길을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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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겉보리 2017.08.12 01:25 신고

    초창기 모델들보다 길어졌고 앞 뒤 오버행이 커져서 저는 요즘 포르쉐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가장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수퍼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겠습니다. 백만 번째라니 놀랍네요.

    • 아무래도 성능 강화, 또 안전성 강화 등에 따른 변화라서 아쉽긴 해요. 정말 예전 디자인이 멋졌는데 말입니다;;

  • 리히토 2017.08.13 21:19 신고

    멋지네요...

    근데...저도 아이리쉬 그린이랑 영국군의 그린 색상 좋아합니다...

    예전 영국이 전쟁이 끝나고 무지 막지하게 남아도는 그린 색상과 로열네이비블루 색상으로...

    전후 민수용 차량에 사용했다하죠...^^

    아무튼 영국 스피드파이어 전투기의 그린 색상과 조화를 이룬 차량 좋아합니다...

    특히나 투박한 오프로더와 이색상이 잘어울린다 생각되네요...ㅎㅎㅎ

    그리고 포르쉐는 은색입니다...ㅋㅋㅋ

    한국도 이런 색깔 만들면 좋지 않을까요?? 한국을 상징하는 색상이...;;

    코리아블루? 화이트? R.O.K.A.F.그레이? 딥블루?

    암튼 잼있네요~^^

    • 영국이나 아일랜드가 그린 컬러를 좋아하는 거 같습니다. 물론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의 경우는 굳이 고집을 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린하면 잉글랜드 아일랜드가 떠올라요. 참고로 아이리쉬 그린은 종교적인 것과 관련이 깊은데 세잎 클로버와 관련이 있습니다. ^^

      우리나라는...흰색...이...될까요? ㅎㅎ

  • 하모니 2017.08.14 16:42 신고

    톰클랜시 소설에서의 묘사인데 주인공 잭라이언 와이프가 초록색 포르셰를 모는데, 와이프를 죽이려던 테러범이 차가 정말 탐난다고 함.. ㅋㅋ 그 구절을 읽고 포르셰는 초록이 진리구나 했어요..

    • 1세대 포르쉐는 녹색 컬러가 참 멋있어 보입니다. 뭔가 약간 컬러가 클래식카에 어울린다는 게 저의 느낌이에요. 포르쉐니까 녹색이 용납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ㅎㅎ

  • 디젤마니아 2017.08.15 00:15 신고

    포르쉐도 911을 기반으로 슈퍼전기차를 2019년까지 내 놓을 거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포르쉐 911도 앞으로 전기차로 점점 바뀌어 갈지, 전기차로 바뀐 911을 포르쉐 마니아들이 과연 좋아할지 의문입니다.

    • 네. 저도 이미 소개해 드렸죠. 관련 플랫폼을 만들고 관련 직종 종사자들을 새롭게 뽑는 등 본격적으로 포르쉐도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 태도입니다. 투자액도 만만찮고요. 전통적 포르쉐 팬들 입장에서도 내키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배출가스 규제에 대응하려면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고, 독일 정부의 정책도 있고 하니 대응할 수밖에 없겠죠. 포르쉐가 만드는 전기스포츠카, 한편으로는 기대도 해보게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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