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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푸조∙시트로엥은 왜 실연비를 공개했을까?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 9월부터 유럽에서는 새로운 연비측정법(WLTP)이 적용됩니다. 우선 새롭게 출시되는 신형 모델부터 순차적으로 적용돼 2021년까지 완전히 새로운 연비측정 및 배출가스 측정 시스템이 자리를 잡게 될 예정입니다.


길고 긴 제조사와의 밀고 당기기 끝에 얻어낸 결과물이기에 의미가 크다고 하겠는데요. 역시 새 측정법이 갖는 가장 큰 의미, 변화라고 한다면 그간 실험실에서만 진행되던 연비 및 배출가스 측정이 이제는 실제 도로를 달리며 이뤄진다는 점입니다. 


아직 구체적인 테스트 방법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환경, 어떤 조건 아래에서 진행이 될지 궁금하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다이나모 위에 바퀴를 올리고, 현실에서는 좀처럼 맞닥뜨리기 어려운 최적의 조건에 맞춰 연비와 배출가스를 뽑아내는 식의 허무한 결과물은 만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를 앞두고 푸조∙시트로엥이 재밌는, 혹은 의미 있는 시도를 작년부터 하고 있습니다. 자체적으로 개발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실제 도로 위를 달리며 측정한 연비를 홈페이지에 공개한 것입니다. 

RDE 테스트 중인 푸조 차량 / 사진=PSA


푸조∙시트로엥은 디젤 게이트가 터지고 난 후 약속 한 가지를 했습니다. 자체적으로 실제 도로 위를 달린 후 나온 연비와 질소산화물, 이산화탄소 등을 공개하겠다고 한 것이죠. 이를 위해 교통 및 환경 (Transport & Environment)과 프랑스 자연환경연합(FNE)과 같은 공익 단체 등과 손잡고 실도로 주행(RDE)용 프로토콜을 개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테스트를 통해 얻어낸 결과를 뷰로 베리타스라는 국제 인증 기관으로부터 인증을 받는 과정까지 거쳤습니다.


PSA 그룹 내 총 58개 모델이 대상이었고, 각종 조건을 조합하면 약 1000가지 버전이 나오는데 이에 대한 연비를 확인할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한 가지 자동차에도 엔진이 다르고 타이어 크기가 다르고, 변속기가 다르기 때문에 트림별로, 모델별로, 여러 조건을 대입하면 천 가지 정도의 버전이 나오는 것으로 보입니다.


도로 주행의 조건 자체도 무척 현실적이었는데요. 사람도 타고, 짐도 싣고, 또 언덕도 오르고 했습니다. 물론 에어컨도 켜기도 했고 도심 23km, 오픈 도로 40km, 그리고 고속도로 30km 등, 주행 환경도 다르게 가져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결과를 현재 유럽 6개국의 푸조 및 시트로엥 홈페이지에 공개했고 점차 국가를 늘려갈 예정입니다. 아직은 연비만 공개했지만 올여름부터는 디젤차의 문제 덩어리 질소산화물(NOx)의 수치도 공개할 겁니다.


그렇다면 현재 유럽 공인 연비와 자체적으로 실시한 실도로 주행 연비의 차이는 얼마나 될까요? 한국에서도 판매가 이뤄지고 있는 모델과 함께 비교를 해보았습니다. 우선 푸조의 경우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관심을 듬뿍 받고 있는 뉴 3008 SUV를 선택해봤습니다.

뉴 3008 / 사진=푸조


한국 공인 연비 : 3008 SUV Allure 1.6 BlueHDi 1.6리터 (6단 자동 변속기 기준)

복합 연비 : 리터당 13.1km


유럽 공인 연비 : 3008 SUV Allure 1.6 BlueHDi 1.6리터 (6단 자동 변속기 기준)

복합 연비 : 리터당 23.80km


실도로 주행 연비 : 3008 SUV Allure 1.6 BlueHDi STT 1.6리터 (6단 수동 변속기 기준)

복합 연비 : 리터당 16.12km

푸조 독일 홈페이지 캡처 화면


변속기가 다르긴 하지만 유럽 복합 연비와 실제 도로 주행 연비의 차이는 컸습니다. 67%나 줄어든 결과인데요. 푸조는 여기에 더해 자신의 운전 타입, 운전 거리, 주요 이용 도로 상황 등을 입력해 다시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몇 번 조건을 대입해서 해봤는데 큰 차이는 없더군요. 


어쨌든 이처럼 다양한 조건에서 실제 연비를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은 분명 새롭고, 또 의미 있다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시트로엥으로도 한 번 해봤습니다. 역시 스타일의 독특함과 높은 연비로 관심을 끌고 있는 C4 칵투스입니다.

C4 칵투스 / 사진=시트로엥


한국 공인 연비 : C4 칵투스 Blue HDi 100 (16인치 휠, 자동 변속기 기준)

복합 연비 : 리터당 17.5km


유럽 공인 연비 : C4 칵투스 Blue HDi 100 (16인치 휠, 수동 5단 변속기 기준)

복합 연비 : 리터당 29.4km


실도로 주행 연비 : C4 칵투스 Blue HDi 100 (17인치 휠, 수동 5단 변속기 기준)

복합 연비 : 19.60km

독일 시트로엥 홈페이지 캡처 화면


역시 현행 유럽 공인 연비와 RDE 방식으로 측정한 실도로 연비의 차이는 상당히 컸습니다. 옵션 장착 여부 등 여러 변수가 있긴 하지만 한국의 공인 연비보다는 조금 더 나오고 유럽 현행 공인 연비보다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적게 연비 결과가 산출됐고, 현재는 없지만 곧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질소산화물 배출량도 공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PSA는 왜 이런 결과를 공개했을까?

그렇다면 궁금한 것이, 왜 PSA는 이처럼 홈페이지에 실도로 주행 연비를 공개하고 있는 걸까요? 사실 연비 결과만 봐서는 그리 도움이 안 될 거 같은데 말이죠. 딱히 이점이라 할 만한 게 없음에도 이렇게 공개가 된 이유는 PSA와 함께 실도로 테스트 프로토콜을 만든 '교통과 환경' 이사인 그렉 아처의 이야기를 통해 짐작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는 푸조와의 인터뷰에서 실제 도로를 주행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측정을 위한 이번 테스트는 신뢰할 수 있고 재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또 소비자들의 강력한 실제 연비에 대한 요구가 있다는 것을 (제조사가) 인정했으며, 마지막으로 부정한 조작의 시대에 투명하고 개방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고객으로부터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사실 그대로를, 먼저 공개하는 것이 디젤 게이트 이후 쌓인 소비자 불신의 벽을 허물 수 있는 길로 본 것입니다. 아마 PSA는 자신들이 공개한 RDE 테스트를 통한 실도로 주행 연비가 다른 경쟁사 경쟁 모델보다 편차가 적거나 더 낫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고, 또 이런 선제적 시도를 통해 폴크스바겐 등과는 다른 투명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부각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진=푸조


푸조-시트로엥의 이런 노력이 소비자에게 어떻게 비춰질까요? 사람마다 다양하게 받아들일 텐데요. 확실히 연비, 그리고 무엇보다 디젤 게이트 이후 배출가스에 대한 완성차 업체들의 긴장감, 그리고 위기에 임하는 자세 등이 느껴집니다. 관행처럼 해오던, 혹은 '이런 정도면 대충 통하겠지'라는 식으로 넘기려 했다가는 이 불신의 시대에 살아남지 못할 것임을 제조사 스스로 인정한 게 아닐까 합니다.


끝으로, EU 차원에서 실시하는 실도로 연비 측정과 얼마나, 어떤 차이가 있을지도 또 다른 궁금증 중 하나인데요. 아무쪼록 푸조∙시트로엥처럼 모든 자동차 회사들이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를 드러낼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이번 기회를 통해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신뢰 없는 실력이 아닌, 믿음 위에 세워진 경쟁력이 소비자에게 인정받는 시대를 기대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