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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왜 벤츠는 트럼프의 독일 공격 상징이 됐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갈등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당선인 시절인 1월 독일 신문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독일 자동차업계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게 공식적(?)인 갈등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메르켈의 난민정책 등에 대한 비판은 물론 영국의 EU 탈퇴를 지지하는 등, 다소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메르켈 정부에 쓴소리를 쏟아냈다는 게 독일의 대체적 여론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3월 독일과 미국 양국 정상회담에서 다시 한번 트럼프와 메르켈의 갈등이 표면화됩니다. 사진을 찍기 위한 악수 포즈 요청에 메르켈 총리는 응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고개를 돌린 채 이를 거부한 모습이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이죠. 독일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분담금 문제를 다시 꺼내 들었고, 덧붙여 독일의 대미 무역흑자 등에 따른 불공정 무약에 대한 불만도 여과 없이 토해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 사진=위키피디아, Doug Coulter


두 사람 갈등의 폭발은 트럼프 대통령의 유럽 방문 때 정점에 이릅니다. G7 회담 참석을 위해 5월 하순 유럽을 방문한 트럼프는 지난 25일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 도널드 투스크 유럽의회 의장 등과 브뤼셀에서 만난 자리에서 독일의 대미 무역 흑자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고 독일 언론이 일제히 전했습니다.


특히 슈피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인들은 나쁘다. 매우 나쁘다. 그들이 미국에서 파는 수백만 대의 자동차를 봐라. 끔찍하다. 우린 이걸 멈추게 할 것이다.”라고 했다며 관련한 장문의 분석 기사를 내걸기도 했죠. 슈피겔의 이런 보도를 자동차 매체들도 인용 보도했고, 특히 일부 전문지는 “끔찍하다(Fürchterlich)” 라는 트럼프의 표현을 부각하며 독일 자동차 업계가 맞을 후폭풍을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3월 미시건을 방문해 자동차회사 노동자들 앞에서 연설하는 트럼프 / 사진=위키피디아


G7 회담에서 각종 논란을 만든 트럼프는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할 것임을 내비치는 등, 유럽에 와 유럽과 관련한 갈등 요소만 키운 채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메르켈 정부의 난민정책부터 나토분담금 문제, 그리고 무역적자 등에 대해 강한 비판을 쏟아낸 트럼프를 메르켈이 결국 참지를 못한 모양입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트럼프는 당선 이후 계속해서 메르켈을 비판했고 흔들어댔으니까요. 


결국 메르켈은 G7 회담 이후 뮌헨에서 특정 국가에 의존적이던 시대는 끝났다는 발언을 하기에 이릅니다. 직접 미국을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절대적인 미국의 우방이며, 친미국적인 독일의 그간 기조를 봤을 때 누가 들어도 미국을 겨냥한 발언임은 확실했습니다. 선거를 어느 정도 염두에 둔 발언이었지만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트위터 등에서는 관련 기사에 좋아요가 눈에 띄게 늘었고, 미국에 당하고만 있다고 생각한 이들은 통쾌해했죠. 오바마 때의 미국과 독일의 밀월관계는 트럼프 시대에 완전히 반대의 상황을 맞게 됐습니다. 독일인들의 오바마 지지가 절대적이었다면 트럼프 지지는 10% 이하로 곤두박질쳤고, 다시 이번 트럼프의 공격으로 트럼프에 대한 여론은 완전히 돌아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트럼프의 독일 비판 속에 등장하는 독일 자동차 회사가 두 곳이 있습니다. 하나는 BMW이고 또 하나는 지속적으로 트럼프로부터 비판받은 메르세데스였습니다. 도대체 트럼프는 왜 독일 자동차 업계를 비판하는 것이며 무엇이 문제라고 본 것일까요? 

멕시코 공장 건립을 위한 첫 삽을 뜨던 때 / 사진=BMW


BMW는 억울하다?

트럼프가 당선되고 나서 그가 강조한 것은 간단했습니다. 미국산 물건을 살 것, 그리고 미국인들을 고용할 것이었습니다. 미국산 물건이라는 것은 결국 자동차 회사들 입장에서는 미국 내 공장에서 생산된 자동차를 이야기합니다. 멕시코에 공장을 건립하려던 포드는 트럼프의 강력한 경고 앞에 무릎을 꿇고 미국 공장 건립으로 돌아섰습니다. 토요타는 두 번에 걸쳐 거액을 미국에 투자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BMW는 계획대로 멕시코에 조립공장을 건립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발로 보였을 것입니다. 트럼프는 그렇게 되면 35%의 관세를 물게 될 것이라며 경고했습니다. BMW는 직간접적으로 미국에서 7만 명의 고용이 이뤄지고 있다고 반응했죠. 하지만 트럼프 귀에는 그런 얘기가 들어올 리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BMW의 멕시코 공장 건립은 오래전부터 준비된 것이었습니다. 공장 건립이 본격화된 것도 지난해 6월이었죠. 이미 공장 건립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걸 뒤엎으라는 얘기밖에 안 됩니다. BMW는 원래 계획대로 나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과연 트럼프가 세금폭탄을 떨궈 BMW에게 엄청난 타격을 줄지 지켜봐야겠지만 어쨌든 BMW는 조금은 억울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예전부터 벤츠를 경고해 온 트럼프

벤츠와 트럼프의 인연은 오래됐습니다. 엄청난 부를 소유한 트럼프는 소유한 자동차도 최고들이었습니다. 롤스 로이스는 물론 벤츠 최고급 세단은 물론 스포츠카도 몰고 다니는 등, 유럽산 자동차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동차는 최고급 유럽산을 소유했지만 벤츠에 대해선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이와 관련해 오래전 트럼프가 한 발언을 소개했습니다. 1990년 트럼프는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당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모든 메르세데스와 일본 제품에 세금을 부과할 것이다.”


그의 벤츠에 대한 발언은 1월 독일 매체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다시 등장하죠. 메르세데스 벤츠가 미국에서 팔리는 것만큼 쉐보레가 팔리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2013년 GM이 쉐보레를 철수시킨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암튼 이런 발언으로 다시 한 번 벤츠는 부담을 갖게 됩니다.


결국 다임러는 최근 미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벤츠에 더 많은 미국산 부품을 사용하겠다는 답을 내놓습니다. 언론에 따르면 이미 미국에서 생산되는 벤츠의 미국산 부품 비율은 미국 제조사들보다 더 높다고 하죠. 얼마나 더 비중을 늘릴지 모르겠지만 다임러 입장에서도 미국 정부의 연비 정책 등에 부담을 느끼고 있던 터라 가급적 자극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뉴욕모터쇼에서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럭셔리 브랜드임을 알리고 있다 / 사진=다임러


독일 대미무역 흑자의 일등공신 자동차

그렇다면 왜 이렇게 독일의 자동차에 대해 트럼프는 불만이 높은 걸까요? 아시는 것처럼 미국은 주요 수출입국들과 무역적자가 큽니다. 미국에게서 가장 큰 적자를 안겨주는 나라는 중국이고 그다음이 일본과 독일입니다. (참고로 대한민국은 7위 수준.) 그리고 이런 엄청난 무역 불균형 현상을 만드는 것은 자동차와 부품 산업이었습니다.


독일이 미국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내는 것이 자동차와 부품업계(28%)이고 2위는 기타(24.2%), 3위가 기계(19.4%), 4위 의약(11.5%), 5위 전자(6.5%) 순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전통적인 자동차산업과 석유업계에 대한 애정(?)이 높은 트럼프 입장에서 독일 자동차 업계가 가져가는 거대한 이익이 곱게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트럼프는 다임러와 BMW, 그리고 폴크스바겐 그룹 등을 앞으로도 계속 압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독일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인 메르세데스 벤츠에 대해서도 트럼프는 공세를 계속 이어갈 것입니다. 이런 공세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그의 인물관에서 분명히 드러나는데요.


백악관에 신설된 국가무역위원회 위원장으로 대표적인 반중국 학자인 피터 나바로 교수를 임명했습니다. 그는 ‘중국에 의한 죽음 (Death by China)’이라는 책을 썼고 같은 이름의 다큐멘터리 등에 출연을 한 대표적 중국 비판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미국의 무역불공정과 환율조작 등에서 중국을 강하게 비판하는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독일의 강력한 수출정책에 대해서도 비판하며 특히 유로화의 가치를 낮춰 독일이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비판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독특하게 미국 야당인 민주당 소속인 학자이지만 트럼프의 중국이나 독일에 대한 인식과 거의 같은 철학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 정부가 앞으로 독일 및 독일의 자동차 업계를 어떻게 대할지 짐작할 수 있을 듯합니다.

독일 작센주에 세워질 다임러 최신식 배터리 공장 기공식에 참석한 메르켈 총리 / 사진=다임러


한미 FTA 재협상이 걱정이다

미국과 유럽은 벌써부터 독일과 프랑스 등이 손을 잡고 반트럼프 전선을 구축할 것이라는 점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독일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죠. 서로의 이익을 위해 전략 전술을 동원하며 기 싸움을 벌이겠지만 동맹관계를 깨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미국과 일정 정도 투닥거릴 힘이 있는 유럽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미국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의 국가입니다. 이미 여러 지표를 통해 우리나라의 대미무역 흑자가 크다는 게 드러나 있고, 한국산 자동차가 미국에서 많이 팔리는 것과 달리 한국에서 힘을 못 쓰는 것을 트럼프는 잘 알고 있습니다. 무역적자 폭을 줄이는 것이 트럼프 정부의 가장 큰 정책 중 하나임을 생각한다면 한미FTA 재협상은 우리에게는 분명 부담이 될 것입니다.


트럼프의 이런 강력한 미국 제일주의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때보다 우리나라 정부와 자동차 업계를 향한 압박은 클 것입니다. 그리고 과연 막가파식 트럼프의 정책에 우리가 균형적 협상을 끌어낼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콧대 높은 벤츠도, 토요타도 권력자 트럼프의 공격에 힘들어하는 이런 상황에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