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자동차 와이퍼와 기억해야 할 두 여성

눈보라가 몰아치고, 폭우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운전을 할 때 자동차 와이퍼의 존재는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단순하지만 중요한 자동차장치는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걸까요?

위키피디아 영어판에는 현재 와이퍼의 구체적 시작점을 1903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3명의 발명가가 내놓은 와이퍼 관련한 기술이 모두 특허를 받게 되죠. 그중 메리 앤더슨이라는 한 여성이 발명한 것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자동차 와이퍼의 시초라 보통 얘기되고 있습니다.

사진=tuev-sued


메리 앤더슨(Mary Anderson)

미국인 메리 앤더슨은 1903년 초 뉴욕을 여행하게 됩니다. 겨울이었고 하필 진눈깨비가 날리는 등 날씨 상태가 좋지 않았죠. 그런 그녀의 눈에 운전자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운전하다 말고 차에서 내려 창문을 닦는 사람, 달리는 차 안에서 손을 내밀어 창을 닦는 사람, 또는 아예 앞 유리를 접고 (당시 자동차 앞 유리는 대체로 접히는 형태) 눈을 맞으며 운전을 하는 사람 등, 다양한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계속해서 의문이 남았습니다. '왜 창문을 닦는 장치는 없는 걸까?' 고민하고 혼자 이 문제를 개선해보겠다는 마음으로 도전을 시작합니다. 수개월에 걸쳐 씨름하던 그녀는 드디어 자신이 완성한 차창 닦기에 대한 특허를 같은 해 11월 미국 특허청으로부터 얻게 되죠.

메리 앤더슨 와이퍼 특허 이미지 / 사진=위키피디아

앞 유리 위쪽에 와이퍼가 장착되는 형태로, 창 안쪽에 달린 조절기를 손으로 당겨 쓸 수 있는 구조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 날씨가 좋을 땐 차창에서 이 장치를 떼어 따로 보관할 수도 있었죠. 그녀는 캐나다에 있는 한 회사에 자신의 와이퍼 기술에 투자할 것을 요청하지만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되고 맙니다.

몇 년 후 와이퍼는 당시 자동차의 표준장비가 됐고 엄청나게 많은 차에 달려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특허 기간은 매우 짧았고, 특허가 소멸된 이후 와이퍼가 본격 달려 나왔기 때문에 메리 앤더슨에게는 관련한 어떤 로얄티도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자동차에 있어 중요한 와이퍼를 구체화시킨 첫 번째 인물이었는데도 말이죠. 몇몇 그녀를 다루는 글에서 마치 평범한 가정주부처럼 얘기하기도 했지만 사실 메리 앤더슨은 목장을 소유하고 있었고 부동산 개발사업도 겸하던 사업가이기도 했습니다. 

메리 앤더슨 / 사진=famousinventors.org


샬롯 브릿지우드 (Charlotte Bridgwood)

메리 앤더슨의 와이퍼는 사람이 조절기를 직접 작동시켜야 한다는 약점이 있었죠. 그리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여러 발명가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캐나다 태생의 샬롯 브릿지우드는 '최초의 전동식 와이퍼'를 만들어 낸 발명가였습니다. 엔진이 작동할 때 그 힘으로 전기를 발생하고 이 전기를 통해 고무롤러가 앞 유리를 닦는다는 그런 원리였죠. 지금처럼 블레이드(유리에 닿는 고무 날) 타입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진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1917년에 특허를 얻었지만 이 권리는 몇 년 만에 소멸하고 맙니다. 이후 여러 발명가들에 의해 자동형 와이퍼가 앞다퉈 시장에 나오게 되죠. 이후 와이퍼는 꾸준히 개선돼 1950년대 중반이 넘어서야 지금과 같은 워셔액이 포함된 와이퍼의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그런데 이 샬롯 브릿지우드하면 또 한 가지 잊어선 안 되는 게 있습니다. 발명에 일가견이 있던 그녀는 전동식 와이퍼를 개발할 즈음 또 하나의 중요한 자동차 발명품을 냅니다. 바로 방향지시등이죠. 그녀의 발명품이 나오기 전까지 사람이 손으로 방향을 지시하거나 아니면 손모양의 표시기를 차에 달아 이것으로 수신호를 대신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샬롯 브릿지우드가 전기를 이용해 불을 켜는 방향지시등 장치를 만들게 되고, 이후 1930년대에 들어서 피아트와 뷰익 등에 의해 깜빡이는 방향지시등이 개발, 장착되게 됩니다. 샬롯 브릿지우드는 그 외에도 의미 있는 발명품을 더 만들었지만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사진 한 장 변변한 게 남아 있지 않아 지금도 그녀의 자료를 찾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방향지시등을 만든 발명가로 가끔 샬롯 브릿지우드가 아닌 플로렌스 로렌스라는 이름이 거론된다는 점입니다. 이 플로렌스 로렌스는 샬롯 브릿지우드의 딸로, '첫 번째 무비스타'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진 영화배우였습니다. 당시 헐리우드는 배우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는데요. 제작 시스템이 우선이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영화 팬들이 배우에 대한 관심을 높이자 스타 시스템이 사업성이 있다고 본 영화사들은 배우의 이름을 영화 속에 넣게 되는데, 바로 플로렌스 로렌스가 첫 번째로 이름을 영화 속에 올린 배우가 됐습니다. 어쩌다 영화배우 딸이 발명가 엄마의 이름을 대신했는지는 모르겠네요.

헐리우드 스타시스템의 첫 주인공이었던 플로렌스 로렌스 / 사진=위키피디아

자동차를 흔히 남자들의 장난감이라고 부르죠. 하지만 자동차 역사는 또한 여성들에 의해 든든하게 이어져 왔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카를 벤츠 아내 베르타 벤츠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삼각별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루이제 피에히(페르디난트 포르쉐의 딸)가 없었다면 포르쉐는 무너졌을지도 모릅니다. 

여성 최초로 자동차 세계 일주를 성공시킨 클레네노레 슈티네스도, 고트립 다임러에게 판매권을 얻어와 세계 최초의 자동차 회사를 만든 마담 사라쟁도 모두 기억해야 할 자동차 역사 속 중요한 이름입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한 두 명의 발명가 메리 앤더슨과 샬롯 브리지우드 역시 잊지 않고 기억되는 그런 이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