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투산 범퍼 빔 논란, 현대의 이상한 해명

현대 투산이 미국고속도로보험협회(이하 IIHS)가 실시한 조수석 스몰 오버랩 테스트에서 경쟁 모델들을 따돌리고 G등급을 받았다는 소식이 있었죠. 그리고 곧바로 차량의 내부 구조가 이슈가 됐습니다. 미국용 투산 범퍼 빔과 국내 판매용 투산의 범퍼 빔 구조가 달랐다는 보도가 있었기 때문인데요.

현대차가 자신들의 블로그를 통해 이 주장을 반박했고, 일부 언론과 블로거, 그리고 자동차 관련 커뮤니티 등에도 반박 내용이 실리며 제기된 차별 논란은 '황색 언론'의 자극적인 주장 정도(?)로 마무리가 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처음 이 문제를 꺼내 든 모터그래프는 현대차의 반박 내용을 재반박하는 동영상을 올렸고, 이로 인해 범퍼 빔 논란은 재점화됐습니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지난번 현대차 관계자의 증언을 토대로 가상대화 형식으로 쓴 글과는 많이 다릅니다. 지난 글이 현대차의 입장을 전달하는 것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엔 현대차의 공식 해명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기에, 이 점을 한 번 따져보려 합니다. 

미국형 투산의 정면 구조 / 사진=모터그래프 유튜브 영상 캡처

 

국산 투산으로 스몰오버랩 테스트해도 동일?

이번 투산 논란 핵심은 범퍼 빔 끝이 미국형과 국내형이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범퍼 안쪽에서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범퍼 빔이 국내형은 짧고 미국형은 무언가 다른 (위 사진에서 파란색 칠해진 부분) 게 덧붙여져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현대차 입장은 이 '덧붙여진 것은 '코너 익스텐션'이라는 것이고 스몰 오버랩 충돌 테스트 결과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였습니다.


미국형과 국내형 투산 비교 / 사진=모터그래프 유튜브 영상 캡처

현대차가 밝힌 코너 익스텐션은 시속 약 4.8km/h의 저속 테스트에 대응하는 구조물입니다. 범퍼의 외형 보존 및 손상 감소를 담당하고 있다는 건데요. 이 구조물을 통해 좋은 보험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시속 60km/h의 속도에서 실시하는 스몰 오버랩 충돌 테스트와 코너 익스텐션은 직접적 연관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모터그래프가 IIHS 부사장으로부터 받은 답변에 의하면 색칠된 부분(첫 번째 사진)들은 충돌 보호 구조라는 것이었습니다. 각 부품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일부는 스몰 오버랩 테스트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답을 했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개인적으로 답을 들은 현대차 관계자의 증언에서도 비슷하게 나왔습니다.


관계자 발언 

"스몰 오버랩 테스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여러 부분이 보강됩니다. 설계나 소재, 구조 등이 강화될 수밖에 없고, 이러게 되면 무게만 해도 몇십 kg 더 나가게 됩니다. 코너 익스텐션이 충돌 테스트에서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코너 익스텐션이 과연 얼마나, 어떻게 충돌 에너지를 흡수하는지 정확하게 알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게 스몰 오버랩과 무관한, 범퍼빔의 확장된 부분이 아니라고 말하는 게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아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계속해서 다뤄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스몰 오버랩 충돌 테스트를 하지 않는 내수형 투산으로 스몰 오버랩 충돌 테스트를 해도 북미형과 동일한 충돌 안전성을 보장한다는 현대의 발언 부분이었습니다.


어바웃 현대 설명 일부분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투싼으로 스몰 오버랩 테스트를 실시하여도 결과는 동일합니다. 국내 투산 오너 분들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SUV를 운행하고 계신 것임을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


이 발언대로라면 투산은 북미형과 다를 바 없는 스몰 오버랩 대응 모델이라는 얘기가 됩니다. 하지만 모터그래프와 인터뷰를 한 엔지니어의 얘기는 달랐습니다. 테스트를 하는 지역에 따라 그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내수형과 북미형은 길이나 각도 등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제게 확인을 해준 관계자 역시 스몰 오버랩 테스트를 하는 곳은 북미뿐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판매하는 차량은 현지 테스트 기준에 맞게 보강을 한다고 분명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니 어느 쪽이든 한 곳은 잘못된 이야기를 하는 게 됩니다.

사진=모터그래프 유튜브 영상 캡처

같이 갈 필요는이라는 표현은 미국의 기준이라는 표현이 생략된 것 /사진=모터그래프 유튜브 영상 캡처

만약 현대의 공식 해명처럼 북미형과 내수형이 동일한 수준의 충돌 안전성을 보장한다면 이는 객관적인 테스트를 통해 자료를 공개하면 말끔하게 해소가 될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 현대가 어떤 답을 할 것인지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국내용 코너 익스텐션 없는 이유는 보행자 보호 차원?

두 번째는 현대는 코너 익스텐션을 스몰 오버랩 테스트와는 거의 관계가 없는, 저속 범퍼충돌 테스트를 위한 구조물이라고 설명한 부분입니다. 이에 대해 모터그래프가 재반박했다는 점은 이미 설명해 드렸죠. 어쨌든 현대자동차는 '코너 익스텐션을 내수형에 적용하면 보행자가 충돌 시 상해가 발생돼 해당 법규 (보행자 보호법)를 충족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적용치 않았다'고 분명하게 명시했습니다.

좋습니다. 코너 익스텐션이 충돌 테스트와 전혀 무관한 것이라는 현대의 주장을 일단 받아들여 보도록 하죠. 그리고 그들의 발언처럼 시속 4.8km/h짜리의 범퍼충돌 테스트를 위한 장치라고 해보죠. 그렇다면 과연 시속 40km/h로 실시되는 보행자 충돌 테스트에서 코너 익스텐션이 보행자의 다리에 상해를 가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보행자 보호를 위한 충돌 테스트는 아시는 것처럼 우리나라는 유럽연합의 기준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내의 보행자 보호 충돌 테스트 경우 머리 부분 테스트 결과가 24점, 다리 부분 충돌 테스트 결과는 6점을 만점으로 기준을 잡았습니다.  다리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유럽의 경우는 머리 부분과 골반 부분, 그리고 다리 부분 등, 우리나라보다 좀 더 세밀하게 구분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역시 다리 쪽 비중은 높지 않습니다.

현대차 관계자 역시 보행자 충돌 테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충돌 시 보행자의 머리를 얼마나 잘 보호하느냐이지 다리 쪽은 거의 모든 메이커가 문제없이 통과된다는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유럽의 보행자 충돌 테스트 관련 조항을 봐도 머리 부분 테스트에 대한 설명이 훨씬 복잡하고 제조사에게 요구하는 조건이 까다롭게 되어 있습니다. 

후드가 튀어 올라오는 리프팅 시스템을 개발하거나 후드에어백 등을 장착하는 것도 바로 이 머리 보호의 중요성 때문인데요. 반면 다리 쪽의 경우 임팩터 (충돌체)라는 원형 기둥 모형을 범퍼 쪽으로 던져 그 결과를 가지고 점수를 주게 되어 있고 이에 대한 기준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보행자 다리 충돌 테스트 장면 / 사진=교통안전공단 충돌테스트 유튜브 영상 캡처


유로 NCAP의 무릎 이하 충돌 테스트 조건

무릎 이하 다리 충돌 테스트는 최소 3번을 실시해야 하며 부상이 가장 많다고 여기는 곳을 주 대상으로 한다. 각각의 범퍼 충돌 지점은 범퍼 중앙과 그 측면들이며, 최소 132mm 이상 떨어져야 하고 (한국은 100mm), 범퍼 코너에서 최소 66mm 이상 안쪽으로 들어와야 한다. 


현대는 바로 이 충돌 테스트의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범퍼 빔을 짧게 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범퍼 빔이 반드시 짧아야만 충돌 테스트를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험 확률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범퍼를 짧게 했다는 겁니다.  이건 선택의 문제 즉, 방법론의 문제이기 때문에 맞다 틀리다로 논할 부분은 아니라는 게 현대 관계자의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리모양의 원형 기둥을 범퍼와 충돌시킬 때 범퍼 코너까지 제대로 테스트를 할지는 테스트를 진행하는 사람이 판단할 문제입니다. 범퍼 엣지 부분까지 할 것이냐 다른 부분에 집중할 것이냐는 현장 테스트 주체가 아닌 이상 누구도 명확히 답할 수 없습니다. 다만 범퍼의 구조와 충돌체의 구조로 인해 곡이 진 코너 충돌 테스트를 하는 건 쉽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는 점은 참고할 만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현대와는 달리 범퍼 길이를 짧게 하지 않고서도 대응하는 제조사들도 많다는 점입니다.


메르세데스 GLC 범퍼 빔 구조 / 사진=다임러

폴크스바겐 신형 티구안 범퍼 빔 구조 / 사진=폴크스바겐

위에 두 사진을 보면 모두 국내 판매형 투산 범버 빔보다 더 길어 보이는데요. 물론 정확하게 측정을 해봐야 알 수 있는 문제이지만 시각적으로는 차이가 충분히 느껴집니다. 그리고 위 사진들이 북미형 모델일 수 있어 지난주부터 조립에 들어간 볼보 V90의 사진을 한 장 더 준비해 봤습니다.


V90 범퍼 빔 구조 / 사진=볼보

볼보 V90는 왜건 모델로 미국에는 내년부터 판매가 될 예정이고 유럽은 올 9월부터 판매됩니다. 이미 유럽에서는 예약주문을 받기 때문에 지금 스웨덴 공장에서 조립되기 시작한 것은 유럽용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 V90의 범퍼 빔을 보면 역시 국내 투산보다 더 길어 보입니다.

현대차는 범퍼 빔이 코너 익스텐션과 같은 구조물로 인해 길어지면 보행자 보호 규정을 충족 못 시킬 수도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쉽게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른 제조사들도 현대처럼 범퍼 빔을 짧게 해버리면 됩니다. 하지만 반대 경우들이 눈에 보입니다. 그 얘기는, 범버 빔이 길다고 보행자 보호 규정을 못 지킬 만큼 위험한 것은 아니라는 게 됩니다. 또한 한국에서 판매되는 일부 현대 모델에도 투산보다 긴 범퍼 빔이 적용되어 있다는 점도 현대의 주장이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즉, 범퍼 빔의 구조가 짧다 길다로 보행자 충돌 테스트의 안전성을 확보한다기 보다는 길이와 상관없이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보행자 안전성이 보장된다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더불어 범퍼 빔을 길게 할 경우 부품 보호도 함께 할 수 있다는 또 하나의 이점이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소비자 입장에선 보행자 보호도 만족하고 부품 보호 확률도 높일 수 있는 긴 범퍼 빔을 원할 것입니다.


투산 유럽형 / 사진=현대자동차


소비자는 누구나 더 좋은 걸 바란다

얘기를 정리해보죠. 현대차는 이번 범퍼 빔 (코너 익스텐션) 논란과 관련해 이는 스몰 오버랩 테스트와 거의 관계가 없으며 저속에서 실시하는 범퍼 테스트를 위한 부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내수용 투산도 미국용과 같은 충돌 테스트 수준을 보인다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만약 코너 익스텐션이 정말 그들 말대로 스몰 오버랩과 무관한 것이라면, 그리고 내수용도 미국용과 같은 수준이라면, 예전에 한 것처럼 충돌 테스트를 공개적으로 실시해 차이가 없다는 걸 밝혀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 국내용 범퍼 빔이 짧은 이유는 코너 익스텐션으로 인한 보행자 상해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했습니다. 만약 코너 익스텐션이 그들 말대로 스몰 오버랩 대응 부품이 아니라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보행자 충돌 테스트도 함께 실시해 그 차이가 없다는 걸 보여주면 됩니다. 그래서 모든 게 현대의 말처럼 증명되면 쓸데없는 소모적 논쟁을 한 방에 제압할 수 있게 될 것이며, 되레 현대차의 진정성이 확인받게 될 겁니다.

저는 모터그래프의 두 번째 반박 영상을 확인한 후 현대 관계자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독일에서 한국으로 전화를 걸어 두 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격론을 벌였죠.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나 기아를 칭찬을 하면 한다고 욕을 먹고 비판을 하면 한다고 욕을 먹는데, 어느 누가 이 문제에 기쁜 마음으로 뛰어들 수 있을까? 그냥 편하게 독일 차 이야기나 달달하게 할 걸 그랬나?' 그럼에도 논쟁 속으로 들어온 것은 소비자들의 알 권리, 소비자의 권익을 위해서는 사실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나름의 책임의식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또 언론의 역할이기도 할 것입니다.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내수 고객과의 소통을 중요한 이슈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논란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주길 바랍니다. 그렇게 서로 내수 시장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를 좁히고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였으면 합니다. 그래야 언론다운 언론, 국민을 위하는 기업다운 기업으로 소비자에게 박수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수용과 수출용의 차이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처음부터 그냥 "스몰 오버랩 대응을 하려다 보니 이렇게 구조가 다른 부분이 생겼다. 이해 바란다." 라고 답을 했었다면 어땠을까 합니다. 그랬다면 문제가 이처럼 시끄러워지진 않았을 텐데 말이죠. 갈수록 소비자들의 상품에 대한 요구 수준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과거 같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도 점점 더 따져 묻는 시대가 됐습니다. 이점을 제조사들이 잊어선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