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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外 여행

스위스 여행기-라보(Lavaux)에서의 3박 4일 (上)

이달 초, 3박 4일 동안 스위스 라보 지역을 다녀 왔습니다. 고민 끝에 여행지를 선택하고, 그 지역을 어떻게 돌아볼지 준비를 했지만 여행이란 게 계획 그대로 이뤄질 순 없는 거겠죠. 현장에서 일정이 뒤바뀌기도 하고 있던 코스가 빠지기도 하고, 어느 정도 변수를 감안했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계획했던 것 거의 그대로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짧다면 짧은 일정이었지만 할 얘기가 많았는데요. 몇 번에 걸쳐 이야기를 풀어 쓸까도 싶었지만 그냥 이야기를 많이 줄이고 상,하로 나눠 기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금부터, 아름다운 스위스 레만호로 함께 떠나보기로 하겠습니다.




어디로

"우리한테 주어진 시간은 4일이야."

아내는 확인하듯 읊조렸다. 올 초, 편안하게 며칠 쉬었다 오자고 이야기한 게 결국 10월 초로 여행 일정을 잡는 수순으로까지 이어졌다. 3박 4일은 짧다면 짧고 충분하다고 보면 충분한 시간이다. 결국 주어진 시간을 어떻 보내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시기와 기간을 먼저 정하게 된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갈 것인지 여행지를 결정해야 했다. 하지만 이는 의외로 쉽지 않았다. 


볼거리도 충분해야겠지만 너무 이 곳 저 곳 돌아다니지 않았으면 하는 게 우리의 공통된 바람이었다. 또 너무 시끄럽고 많은 사람이 몰리는 곳은 가급적 피하기로 했다.무엇보다 한정된 금액으로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했기 때문에 금액에 맞춰 계획을 짜야만 했다.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곳은 포르투갈이었다. 좋은 날씨, 이국적인 분위기와 종교적 색채가 곳곳에서 느껴져 많은 이들이 찾는 나라였다.


포르토 전경 / 사진=픽사베이

그런데 아무래도 일정이 빡빡하게 느껴졌다. 포르투갈 수도인 리스본과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포르토 두 군데를 다녀야 했는데 이 동선이 만만치 않았다. 또 이동 경비나 숙박비 등도 계획 보다 초과될 것 같았다. 물론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40대 부부에게 배낭여행 같은 강행군은 부담이다.포르투갈을 3박 4일 동안 여백을 두고 천천히 즐기기엔 아무래도 빠듯해 보였다.

"포르투갈은 다음에 기회를 봐야겠는데?"

잠시 생각에 잠긴 아내가 한 곳을 추천했다.

"토스카나 어때?"

"이태리?"

"응. 당신 취향과 맞을 거야."

아내는 정확했다. 모던한 도심 여행 같은 건 애초부터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내겐 인구 75만의 프랑크푸르트 조차 부담스러운 대도시로 여겨질 정도니까. 당연히 조용하고 작은 마을, 또는 오랜 세월의 흔적 가득한 그런, 햇볕 가득한 곳이길 원했다. 이런 취향을 잘 알고 있는 아내가 권한 곳이 바로 토스카나(Toscana)였다. 


사진=7-themes.com


사진=wallpaperszip.com

토스카나는 이태리 중북부에 위치한 주로 피렌체가 주도인 곳이다. 흔히 PC 바탕화면용 월페이퍼로 많이 쓰이는 위의 사진들이 바로 토스카나 지역이다.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피사도 있고, 그 유명한 메디치 가문이 살던 지방이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고장이기도 하다. 갑자기 자동차로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곳을 원하는 방식대로 찾아 다니며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넓은 지역을 제대로 돌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루트를 어떻게 짜야 할지 난감했다. 무엇보다 살고 있는 프랑크푸르트 쪽에서 피렌체까지는 약 1천 킬로미터의 거리였다. 쉬지 않고 달려야 10~12시간 사이에 도착할 수 있는 제법 먼 거리. 시간만 많았다면 중간에 스위스에서 1박을 해도 좋았겠지만 어쨌든 쉽지 않은 이동 거리였다. 인터넷을 뒤적여 보니 현지에서 1:1 가이드를 해주는 분이 계셨다. 원하면 렌터카로 함께 토스카나 지역을 돌아준단다. 와~ 하지만 역시 비용이 문제였다. 


원하는 만큼 토스카나 지역을 즐기려면 현재 예산의 두 배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 난 쓰고 싶었지만 아내는 그렇게까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집사람이 그렇게 하자면 따라야 하는 게 남편들의 숙명이 아니던가. 이틀에 걸쳐 격론(?)을 벌이 우리는 결국 토스카나는 아껴두기로 했다. 일단 이렇게 계속 틀어지게 되니 계획을 짜는 것이 부담됐다. 비용과 취향이 조화를 이룰 만한 곳이 어딘지를 고민해야 했다. 이동은 직접 운전을 하며 자동차로 가는 게 아끼는 방법이었고 숙박 역시 좋은 호텔 등을 피해야 했다. 


특히나 처음부터 이번 여행 정보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언제 유럽을 와볼 수 있을까, 또는 유럽을 여행한다면 어디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필요한 정보가 만들어져야 했다. 그래서 한정된 시간과 한정된 금액, 그러면서도 만족도 높은 여행지를 찾는 게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의미감으로 다가왔다. '무슨 사서 고생이람?' 그렇게 끙끙거리던 내 눈에 어느 날 스위스 레만호의 전경이 모니터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목적지는 스위스 레만호

스위스하면 내겐 목가적 풍경이 먼저 떠오른다. 아마 이런 그림들일 거다.


마테호른, 파라마운트 영화사 로고로 잘못 알려져 있는...어쨌든 절경이다. /사진=픽사베이


인터라켄 찾는 이들에겐 꼭 들려야 할 곳 중 하나인 그린덴발트 일부 모습/ 사진=픽사베이


레져의 천국 알프스, 복받은 스위스, 라임 좀 타봤다. ㅡㅡ;; / 사진=스위스관광청 홈페이지

거대한 알프스 자락 한 곳에 똬리를 틀 듯 자리한 스위스는 알프스의 험준함을 극복하고 관광대국이 되었다. 그 얘기는, 알프스를 빼고 스위스를 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스위스의 관광지가 알프스의 직접적 혜택을 입은 것은 아니다. 특히 제네바와 로잔 등, 불어권 도시들은 레만호수의 영향이 지대하다. 호수 주변의 작은 마을들은 포도밭과 멀리 병풍처럼 호주 주변을 감싸고 있는 알프스 산맥과 어울려 또 다른 스위스의 멋과 맛을 선사한다. 

조용한 산 속에서 레져와 휴식을 즐기다 올 것인지, 아니면 레만호 주변의 포토밭을 하이킹하고 마을들을 돌아 볼 것인지 결정하는 일만 남았다. 결국 우리는 후자를 선택했다. 인터라켄을 찾아 이미 그린델발트 등을 잠깐이나마 경험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엔 다른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었다. 특히 IOC 본부가 있는 로잔 옆으로 나란히 붙어 있는 브베(Vevey)와 몽트뢰(Montreux)는 꼭 가보고 싶었다. 찰리 채플린과 퀸의 프레드 머큐리 형님이 살았던 곳들이 아니던가. 오래 전 tv를 통해 소개된 몽트뢰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이 내겐 제법 강하게 남아 있었다.


숙소 정하기와 일정

처음엔 몽트뢰 내에 있는 호텔들 중에 한 곳을 선택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딱히 끌리는 곳이 없었다. 며칠 동안 숙소에 대한 고민을 하다 호텔이 아닌 BnB (베드 앤드 브렉퍼스트)로 눈을 돌렸다.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브베에서 차로 5분 거리었고 포토밭 한 가운데 조용히 위치해 있었다. 대표적 BnB 사이트와 대표적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 모두 예약이 가능했는데 호텔 예약 사이트의 비용이 예상을 깨고 조금 더 저렴했다. 무시무시한 스위스 물가 기준에도 그리 큰 부담은 아니었다. O.K! 숙소가 결정되자 그에 맞는 3박 4일 동안의 동선을 짜는 게 손쉬워졌다.


 

수요일 출발해 토요일 돌아오는 일정은 그럴싸하게 채워졌다. 목적지, 여행 일정, 날짜, 숙소 등 모든 것이 결정됐다. 집에서 약 500km 조금 넘는 거리인지라 운전에 대한 부담도 덜했다. 마지막 남은 것은 날씨뿐. 여행에서 날씨가 차지하는 비중은 적어도 절반은 되지 않을까 싶다. 흐리고 비라도 내리는 날이 계속되면 이 번 여행의 즐거움은 절반으로 뚝 잘리고 말리라. 출발 일주일 전부터 로잔 주변의 날씨를 확인했다. 다행히 비 온다는 예보는 없었다. 그래도 장담할 수는 없었다. 물과 빵, 그리고 커피 등 먹을거리를 마련하고 떠날 채비를 마쳤다. '제발 비만 오지 말아라'


출발, 그리고 도착

출발 당일. 하늘은 흐렸지만 비가 올 것 같진 않았다. 하긴, 지금 내게 프랑크푸르트 날씨가 무슨 상관인가. 출근 시간대를 피한 우리는 즐거운 여행이 되자며 하이파이브를 하고 출발했다. 그렇게 여행은 시작됐고 운전대를 잡은 난 아내에게 스마트폰을 맡겼다. 급한대로 사진들을 좀 찍어달라는 부탁이었다. 목적지는 내비게이션으로는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 숙소에서 그럴 경우 위도와 경도를 입력하라고 성실한 장문의 안내문을 보내왔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고객센터에 전화를 연결해 숙소 주소를 불러주자 바로 내비게이션에 위치를 입력해 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놀랍도록 정확하게 길을 찾아 줬다.



흐렸던 하늘이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파란 하늘로 바뀌어 갔다.




스위스 국경에 다 와가면 휴게소 표시와 함께 통행증을 판매한다는 표시도 함께 되어 있다.

국경에서 시간을 허비하기 싫어 적당한 휴게소를 찾아 40유로 조금 넘는 거액(?)을 주고 

스위스 통행증을 사 붙였다. 스위스는 무조건 1년짜리만 판매. 



국경이다.

통행증을 붙인 차량들 중승용차는 1차로를 이용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냥 통과~ 독일로 돌아올 때도 똑 같았다.




 어라? 

날씨가 심상치 않다. 그래도 일기예보를 믿기로 했다.




응?

숙소가 코앞인데 하늘은 더욱 심술궂어 보였다.

"어머 여보, 저기 번개 치는데?"

"어디?"

놀란 눈을 하자 아내가 웃는다.

"농담~"

"으이구"




라보 지역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 쉐브레(Chexbres)를 지나자 포토밭 사이길이 이어졌다.

겨우 오가는 차량들이 서로 스치지 않고 지나갈 만한 좁은 도로였지만

이 곳을 달리는 현지인들은 랠리에 출전한 선수들 같았다.

결국 3일 정도 지나자 나 역시 이 길을 달리는 데

익숙해지긴 했지만 어쨌든 아슬아슬한 도착 마지막 순간이었다.

놀랍도록 정확하게 진입로까지 안내한 내비 덕에

숙소에 무사히 도착하게 됐다. 




여주인이 환하게 우릴 맞았다.

프랑스 발음 가득한 독일어로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안내에 따라

예약된 방으로 향했다. 와이너리이자 숙소로 사용되는 이 곳은

주차의 불편함을 제외하면 최고의 만족을 선사했다.


거실과 침실이 구별된 넓다란 방에 들어서자 오래된 창이 보였다.

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창문을 열었다.





예상한 대로 좋은 경치가 펼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하늘은 계속 흐려 있었다.

짐을 정리한 후 숙소 주인에게 일정표를 보여줬다.

그녀의 의견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참 들여다 본 그녀는 둘 째날 일정이 너무 빡빡한 거 아니냐는 의견을 냈다.

그래서 몽트뢰를 따로 빼는 것이 어떠냐 물었더니

그게 낫겠다며 시옹성을 꼭 가보라 추천했다.

하지만 우린 꼭 가보라는 시옹성은 빠듯한 일정상 포기해야만 했다.


도착하고 이런 저런 자잘한 일들을 마무리하고 나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난 상태였다. 저녁식사는 원래

로잔의 플롱이라는 모던한 곳에서 먹을 생각이었지만

시간 관계상 숙소 아래 마을 상사포항(St. Saphorin) 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주인이 추천해준 레스토랑은 2곳.

그런데 50가구 정도밖에 없는 상사포항에는 딱히 그 두 곳 외엔

먹을 데가 없었다. 창밖이 밝아지는 기운을 느끼며

마을로 출발했다. 걸어서 10분 정도 내려가면 닿을 곳이었다.



숙소



숙소 마당으로 서쪽 지는 해가 보이기 시작했다.

야호~





제네바 쪽에서부터 구름이 걷히고 있었다.

비로소 우리가 아름다운 라보 지역에 와 있음을 실감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느림 걸음으로 마을로 내려갔다.







피곤함이 싹 풀리는 저녁 풍경이 이어졌다.

"그런데 올라 올 때 어떡하지?"

헉~ 그러고 보니 저녁 먹고 올 때가 문제였다.

깜깜한 포도밭 사이를 낑낑거리며 올라와야 하는데...

하지만 그 걱정은 그 때 가서 하기로 하고,

포도밭 사이를 지나 조금씩 내려가니 드디어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암반과 돌담과 꽃과 나무들로 가득했던 마을.





정말 작은 마을이었다.

한 50가구 정도 살까?

그런 곳에 와인 파는 가게는 여럿 눈에 띄었다.

걸어가며 툭툭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었지만

이 예쁜 마을은 그런 성의없는 사진에도

최고의 포즈로 임해주고 있었다.

특히 이 녀석...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교회당 건물을 뚫고 흘러 나오는지 

절묘한 곳에 먹는 물 시설이 되어 있었다.

농구공을 들고 집으로 향하던 서넛의 아이들 중

한 녀석이 갈증이 났는지 물이 나오는 꼭지에

입을 가져다 댔다. 낯선 관광객이

스마트폰을 드리대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 덕에 이렇게 이쁜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두 곳의 레스토랑 중 첫 번째 곳은 마을 규모에 맞지 않게

너무나 거창한 곳이었다. 분위기를 대충 확인하고 

엄청난 식사비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조금 더 내려가 봤다.

허름한 마지막 레스토랑이 나왔다.


그곳은 영어도 독일어도 안 통하는

두 명의 여성분들이 운영하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말 그대로 동네 밥집 같은 곳이었다.


겨우 기억을 더듬으며 프랑스어로 주문을 한 아내는

가격표를 슬쩍 보여준다.

생선요리 가격이 독일 웬만한 식당의 두 배였다.

'도대체 이 나라 사람들은 돈을 얼마나 잘 버는 걸까?'


가격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첫 날 저녁이니만큼 제대로

먹기로 했다. 맛은...정말 좋았다.

감자튀김 조차 놀라울 정도로 맛있었다.

디저트로 주문한 아이스크림엔

마른 포도와 위스키가 함께 섞여 있었다.

취기가 훅하고 올라왔다.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기분 좋게 취한 아저씨 한 분이

우리에게 영어로 말을 건냈다. 유일하게

영어가 되는 분이었는데, 작은 포도밭을 가지고 있다면서

뜬금없이 우리에게 스위스 와인을 수입하지 않겠냐며

진지하게 물어 왔다.


그러고 보니 스위스 와인은 생산량이 적어 대부분이

스위스 안에서 소비가 된다고 하던데, 이 아저씨

이야기를 들으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았다.

일부 한국에도 수입이 되는 모양이던데,

어쨌든 잠시 와인 이야기를 나누고 우린

다시 숙소로 향했다.


올라갈 일이 걱정이었지만 어둔 골목은

사람을 인식하는 센서가 달린 가로등들이 있어

운치 있게 마을길을 다시 거스러 올라갈 수 있었다.

캄캄한 포도밭은 어땠냐고?

스마트폰이 있지 않는가.

후레쉬를 켜니 길이 제법 밝게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우리 둘은 먹은 저녁 다 소화시키며

숙소로 올라와 첫 날을 마감했다.


몽트뢰와 브베

사실 이번 여행의 시간 순서대로 여행기를 쓴다면 브베는 둘 째날 오후 일정에, 그리고 몽트뢰는 돌아오는 토요일 오전 일정에 넣어야 했다. 하지만 순서를 편집해 먼저 브베와 몽트뢰를 소개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나머지 여행지와 비교했을 때 두 곳은 상대적으로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브베는 강가를 걷는 게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몽트뢰는 너무 관광지화 되어 있었다. 그래서 일단 이 두 곳을 먼저 간단히 소개하고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이부와와 라보 하이킹을 뒤에서 자세히 다루는 게 낫겠다 싶었다.




 

둘째 날이 밝았다.

오후 일정으로 브베를, 그리고 마지막 돌아오는 날 오전 일정으로 몽트뢰를 찾았다.

브베는 로잔과 몽트뢰 사이에 있는 작은 도시로, 유명한 네슬레 본사가 이 곳에 있다.

그리고 더욱 이 곳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찰리 채플린 동상과 네슬레의 

음식박물관 알리망타리움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1995년에 만든

8미터짜리 포크 조형물이다.


그리고 이 거면 브베를 다 봤다고 해도 된다. 물론 순수 미술품들을 전시한 에니슈 미술관과

사진박물관, 그리고 알리망타리움 등은 박물관 좋아하는 분들에겐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여름이었다면 수영하는 아이들, 수영하는 젊은이들로 활기가

넘치는 브베 호숫가이지만 평일 오후의 호숫가는 여유로움 그 자체였다.

제법 긴 호숫가 산책로를 따라 걷는 건 브베의 최고 즐거움이다.


하지만 호숫가에서 한 블럭만 도심 쪽으로 들어가면 분위기가

많이 바뀐다. 지독스럽게 평범한 유럽의 어느 도심과 같고,

이 곳이 세계적인 관광지인가 싶을 정도로 일상적인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 다소 복잡했고, 화려한 건물들이 많았던

몽트뢰에 비하면 칙칙한 느낌까지 줬다. 


이렇게 브베가 일상적이고 비교적 조용한 관광지라면 몽트뢰는

상대적으로 화려했고, 누가 봐도 '나 관광지거든?'하는 분위기를 하고 있었다.









토요일 오전이라 무척 한가했던 몽트뢰는 산기슭에는 주로 주거 지역이,

그리고 호숫가 주변으로는 호텔과 다양한 즐길거리들이 모여 있다.

산책로는 브베에 비해 훨씬 화려하고 세련됐으며,

비엔날레 출품된 작품들이 전시돼 있어

걷기만 해도 자연과 작품들을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하지만 내 눈에 가장 빛나는 건 프레디 머큐리 동상이었다.





 

프레디 머큐리가 말년에 이 곳에서 음악 작업을 했고, 살았다고 한다.

그의 탐스런(?) 엉덩이는 수많은 관광객들의 손길로 더욱 빛이 나고 있었고

이제는 몽트뢰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그를 보기 위해 난 참 오랜 세월 참았다.


이 곳은 여름철 펼쳐지는 세계적인 재즈페스티벌이 또한 유명하다.

60년대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음악 축제는 재즈를 좋아하는,

아니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소중한 추억이 될 거다.

그러고 보니 이 곳은  유럽 연합 방송 유로비전이

1954년 나르키스커스 축제를 처음으로 생중계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실제로 산책로에는 이 내용을 적은 표지판이 적혀 있다.

확실히 이 곳은 축제와 관련이 깊다.


하지만 숙소 주인이 몽트뢰 이야기를 꺼냈을 때

가장 먼저 이야기 한 곳은 시옹성( Chateau de Chillon)이었다.

몽트뢰를 찾는 이들이 꼭 가야 하는 곳으로 여겨질 정도로

대표적인 명소였지만, 독일에 수 많은 성들을 

보고 지낸 우리 입장에선 굳이 여기까지 와서

성을 봐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해 여정에서 제외시키고 말았다.


보통 몽트뢰 중앙역에서 버스를 타거나 아니면 호수를 다니는

유람선을 타고 시옹성을 방문할 수 있다는데, 대부분 배를 타고

성으로 향하는 걸 추천하고 있다.

바이런의 서사시 '시옹 성의 죄수'로 더욱 유명한 이 성 외에도

산악열차로 2천미터 정상까지 올라 갈 수 있는

로쉐 드네(Rochers-de-Naye) 산도 추천할 만하다.

몽트뢰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고 하이킹도 즐길 수 있다.



이 길을 따라 걸어가면 (걷기엔 좀 멀지만)


시옹성을 만날 수 있다 / 사진-픽사베이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앞서 밝혔지만 하편에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담겨 있습니다. 프랑스의 700년된 작은 마을 이부와, 그리고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된 라보 지역 하이킹, 이 두 곳을 만나게 될 겁니다. 급하게 쓰느라 좀 어수선한데, 다음 주 하편은 좀 더 미리 신경써서 기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주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