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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 아우토반 시승기

[시승기] 골프 GTI, '모자람 없지만 욕심 더 부렸으면'


'Oft kopiert, nie erreicht.' '카피할 수는 있어도 도달할 순 없다'


7세대 골프 GTI가 출시되었을 때 독일에서는 위와 같은 도발적 문구가 광고 카피로 등장했습니다. 핫해치 원조로서의 자부심이 묻어나는 내용이었습니다.하지만 콤팩트 고성능 모델들 사이의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위기감도 저 문구 속에 담겨 있지 않나 싶더군요. 오늘은 유럽에서 여러 도전자들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는 GTI에 대한 시승 소감을 간단히 정리해 봤습니다.






GTI는 붉은 색이 제 맛

독일에 살고 있는 제가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7세대 골프를 한국에 와 이제서야 타보게 되다니, 기분이 좀 묘하더군요. 한 때 심각하게 구매를 고민했던 자동차였기에 이 기회를 통해 제대로 검증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1박 2일. 차를 받으러 갔을 때 받은 첫 느낌은 붉은 컬러와 GTI와의 핫한 조화였습니다. GTI 고유의 알로이 휠도 눈에 들어 왔고, 붉은 색 브레이크 캘리퍼도 눈에 들어왔지만, 뭐니뭐니해도 그릴에 박힌 GTI 글자가 시승자의 기분을 충분히 달궜습니다.


두툼한 골프 특유의 C필러는 언제나 듬직했지만 다소 날카로워진 후미등 디자인은 아무리 GTI라고 해도 덜 매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실내로 들어가게 되면 그런 외모에서 받은 아쉬움은 깨끗하게 사라집니다. 일반 골프 보다 작은 D컷 스티어링 휠과 붉은색 스티치는 '아 내가 GTI를 타고 있구나' 라는 설렘을 주기에 충분하죠. 더 화려해진 7세대 골프의 실내는 여러 면에서 만족스러웠습니다. 





안락함과 뛰어난 코너링

직진 가속력은 아쉬움

얼마 전 골프 쪽창 얘기를 해드렸습니다만, 7세대 골프는 이전에 없던,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1세대에 있다 사라졌던 쪽창이 다시 생겼습니다. A필러 (기둥)가 비스듬하게 누우면서 사이드 미러가 도어에 달리게 됐고, 커진 사각 지대를 보완하려는 목적으로 낸 것이었죠. 


사실 운전자 입장에선 이 쪽창 효과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다만 운전자는 동승자석 쪽의 쪽창을 살피는 게, 동승자는 운전자 쪽 쪽창을 살피는 게 그나마 시야 확보에 도움이 되었는데요. 어쨌든 이런 쪽창 덕분인지는 몰라도 골프의 전방 시야 확보는 경쟁 모델들과  비교해 더 좋으면 좋았지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평가를 독일에서 받았습니다. 그래도 4,5세대 수준의 개방감을 느끼긴 어려웠습니다.


GTI에 새롭게 생긴 쪽창 모습


지금부터 주행 얘기를 해보도록 하죠. 일단 첫 날 운전은 야간 주행, 그것도 막히는 도심에서의 운전이어서 211마력의 힘을 느낄 여지가 없었습니다. 대신 최대토크가 2.0 TDI 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이라 복잡한 공간을 순간 치고 나가는 즐거움이랄지, 순간 가속력에서는 충분히 만족했던 날이었습니다. 


다음 날 오전, 지방에 있는 지인을 방문하는 것으로 코스를 잡고 고속도로를 탔습니다. 얼마 달리지 않아 바로 떠오른 생각은 '과연 우리나라에 211마력 힘을 느낄 만한 도로가 있을까' 였습니다. 최고속도 110km/h의 도로 환경에선 200마력 이상은 힘의 낭비라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물론 이런 생각은 시승을 마칠 때 즈음 바뀌게 됩니다.


어쨌든 시승 초반 110km/h를 지키며 달리다 보니 독일 아우토반에서 시승을 했다면, 그래서 속도 무제한 구간을 힘 닿는 데까지 달렸다면 과연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해보게 됐습니다. 그래도 부분 부분 가속을 하면서 느낀 직진 안전성은 좋았습니다. 특히 서스펜션 조율이 잘 돼 있다는 게 느껴졌는데요. 하체와 차체의 일체감, 그리고 급코너에서의 안전성 등은 지방도로의 곡선 구간을 달릴 때 더 명확하게 와 닿았습니다.


시승 때는 전혀 기억을 못하고 있다 나중에 자료를 보고 알았지만, 골프 GTI에는 프로그레시브 스티어링 장치와 전자식 디퍼렌셜 록 (XDS 플러스)이라는 장치가 장착돼 있습니다. 프로그레시브 스티어링 장치는 속도에 따라 운전대의 무게감이 달라지고, 또 조향비를 줄여 조금의 조작으로도 많은 회전각을 얻게 해주죠. 사실 D컷의 지름이 작은 운전대를 장착한 200마력대 차들은 대체로 이런 성향을 보입니다. 고속 직진 시 안정감을 주고, 코너링에선 더 빠른 회전 반응을 이끌어 내게끔 조율이 되어 있죠. 


또 한 가지는 XDS플러스 시스템으로, 한 마디로 코너 때 바퀴 접지력을 높여 빠르고 안정감 있게 빠져나가도록 해줍니다. 프로그레시브 스티어링 장치와 XDS플러스의 조합이 코너링의 안정감과 맛을 더해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만 핸들링은 지금도 나쁘지 않지만 조금만 더 날카롭고 거칠어져도 괜찮겠단 생각입니다. 


전체적으로 GTI 7세대는 주행 안전성에 신경을 많이 썼고, 코너링에서 특히 운전의 재미가 드러났습니다. 6단 DSG는 우려(?)했던 것 보다 엔진과 조합이 잘 이뤄져 이질감 없이 작동해 줬습니다. 패들 쉬프트 조작감과 반응 속도 등은 보통 수준이었고, 뒷좌석 승차감이 유럽 차를 경험하지 않은 분들에겐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고속에서 치고 나가는 맛은 조금 떨어진다는 부분은 아쉬웠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지만 시승 초반엔 211마력이 남아 돈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타고 달려 보니 오히려 조금 마력에 대한 욕심이 나더군요. 그러고 보니 한국에 들어와 있는 GTI는 211마력을 내는 북미형 엔진으로, 220마력과 230마력을 내는 유럽형과는 다릅니다. 


어떤 법규 문제로 인해 유럽형 엔진이 들어오지 못했다고 하는데, 소비자 입장에선 이 20마력 차이가 아쉽게만 느껴집니다. 더군다나 독일에서 230마력 GTI 퍼포먼스 트림은 거의 모든 동급 경쟁자들을 따돌릴 정도로 비교테스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까지 했죠. (참고로 북미형 GTI 제로백은 제원상 6.8초이고, 유럽형 GTI 퍼포먼스는 제원상 6.4초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독일 아우토모토운트슈포트의 GTI 비교시승 장면 / 사진=PDF 캡쳐


4대의 비교시승 최종 순위. 이 잡지 외에도 다른 매체들에서도 GTI는 좋은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 auto-motor-und-sport.de 캡쳐


하지만 이런 마력의 아쉬움도 8세대 GTI가 나오면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독일 자동차 매체들은 2017년 말에 출시될 8세대 골프 GTI에는 최고 300마력까지 힘을 내는 엔진이 장착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는데요. 이렇게 되면 골프R 수준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물론 그 때가서 GTI가 300마력까지 힘을 낼 필요가 있느냐는 논란이 또 생기겠지만, 적어도 지금 나와 있는 GTI에서 느낀 마력의 아쉬움은 떨쳐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이고, 또 가열되는 핫해치 경쟁에서도 한 발 더 앞서가게 될 것입니다.


마력이 아쉽네 어떻네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굳이 마력에 갈증을 느끼지 않는 취향의 운전자이고, 그래서 일상 주행의 편안함과 적당한 역동성을 겸비한 멀티플레이어를 원한다면, 7세대 GTI는 충분한 답이 될 것입니다. 사실 가격 대비 성능에서 이 정도 만족을 줄 핫해치를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이 시승기는 DAUM 자동차에 송고하지 않았습니다. 어수선한 댓글들 난무하는 곳 보다는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어 블로그에만 올렸습니다. 그리고...무엇보다 메르스 문제로 힘든 시간을 보낼 고국에 계신 분들께 위로와 응원의 말씀 드립니다. 모두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