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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벤츠공장에서 50년 일한 어느 노동자 이야기


지난 주에 원래 약속을 드리기론, 독일에 팔리는 한국 차에 대한 튀프 (자동차 검사소) 분석 내용을 소개하겠다고 했었죠. 하지만 고민 끝에 오늘 다른 내용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분석 내용 자체가 사실 특별할 것도 없고, 최근 4~5년 안에 나온 신모델들의 심도 있는 평가는 내년이나 후년 정도에 나올 것으로 보여 아무래도 그 때즈음 분석을 해드리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이점 양해 바랍니다. 


대신 오늘은 흔하게 접하기 어려운 그런 내용을 하나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 회사 벤츠의 공장에서 일해 온 한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독일 사회의 또 다른 단면을 볼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먼 남의 나라 이야기이지만 뭔가 우리의 현실과 대비감 있게 다가오는 그런 내용이라서 나름 의미가 있지 않겠나 생각됩니다. 시작해 볼게요...



▶벤츠 공장 노동자 프리츠 슈탈 씨


프리츠 슈탈 씨를 소개하고 있는 디벨트 기사 화면 캡쳐


얼마 전 독일의 일간지 디벨트(Die Welt)에는 독일 노동자에 대한 기사 한 편이 실렸습니다. 프리츠 슈탈 씨가 그 주인공인데요. 올 해로 65세를 맞은 그는 11월 들어서며 정년을 다 채웠기 때문에 퇴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올 연말까지 계속해서 일을 하고싶다고 했고, 회사 측에서는 그의 요구를 받아 들였습니다.


1964년부터 다임러의 신델핑엔(Mercedes-Benz Werk Sindelfingen) 공장에서 있었으니까 50년을 한 회사, 한 공장에서 일을 한 셈이죠. 그의 아버지가 이 공장에서 일을 했고, 그 역시 뒤를 이어 조립라인에서 인생을 바쳤으니 삼각별과는 정말 각별한 인연을 맺은 집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재미 있는 게,


그토록 오랫동안 다임러 공장에서 일을 했고 이 곳에서 일했다는 자부심이 대단한 슈탈 씨는 정작 자동차를 그리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집에는 1년엔 1만킬로미터도 안 타는 오펠사의 저렴한 소형차 코르사가 주차장에 놓여 있다고 합니다. 그는 전형적인 슈바벤(사람)이었던 것이죠.



슈바벤 특징은 벤츠의 특징


신델핑엔 공장 라인 모습. 사진=blog.mercedes-benz-passion.com

슈바벤(Schwaben)이란 지역은 딱히 행정구역으로 정해진 곳은 아닙니다. 물론 뮌헨이 있는 바이에른 주에 슈바벤이란 지역이 존재하긴 하지만  역사 문화적으로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그리고 독일 남서부의 일부 지역까지를 아울러 슈바벤이라 부르는 게 일반적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곳에 사는 사람들도 슈바벤, 혹은 슈바벤 사람들이라고 불리고 있죠.


슈바벤들 하면 우선 떠올리는 게 '구두쇠' 이미지입니다. 깐깐하고 과묵하며, 모험 보다는 주어진 삶에 만족하는 그런 특색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죠. 또 그들은 정확하게 일처리를 하는 대신 주어지고 약속된 만큼만 일하는 성향도 강합니다. 물론 씀씀이도 헤프지 않고 살뜰한 편이고요.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독일인들의 특성을 보통 이 슈바벤 이미지와 많이 겹쳐 생각하게 됩니다.


슈탈 씨는 정확한 시스템 안에서 일하는 것을 중요하고 여기고, 몸무게 조절부터, 허리가 아프거나 병이 나서 병가를 낸 적이 지난 7년 동안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자기 관리에 철저했다고 합니다. 물론 안경도 안 쓴다네요. 그는 차체에 색을 입히는 도장 라인에서 평생 일해왔는데 그 라인도 딱 한 번, 공장 증설 때문에 위치를 바꾼 것 외엔 어떤 자리 이동도 없었습니다. 다만, 도장 시스템이 자동화 되면서 그 때부터는 조립의 맨 마지막 단계인 도장 이상 유무를 체크하는 일을 동료들과 담당했습니다.


맨 손으로 도장이 잘못 된 곳을 찾아내고 눈으로 흠집을 발견해 내야 하는 일인데, 이게 보통 숙련된 사람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평생 1만대 이상의 벤츠 차에 도색을 했던 슈탈 씨는 이제 그가 도색한 숫자의 몇 배가 되는 차량들의 도장의 이상을 체크하며 퇴직 직전까지 왔는데요. 자전거로 출퇴근하기를 좋아하는 그는 이사도 한 번만 했을 뿐 (그것도 부모님 집에서 나올 때) 평생을 슈투트가르트의 벤츠 공장에서 일해 온, 고집스런 독일 남부의 노동자였습니다.


바로 이런 슈탈 씨와 같은 슈바벤의 특징이  벤츠의 특징이라고 자동차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합니다. 프리미엄 파워라는 책에서도 다임러의 인사정책과 시스템이 보수적인 것도 이런 지역의 특징과 밀접하다고 적어 놓고 있죠. 그리고 개인 보다는 집단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기업 문화도 가지고 있는데요. 그래서 자동차 스타 디자이너들이 BMW나 아우디 등에서 배출될 때도 벤츠에서는 디자이너를 특별히 드러내 마케팅에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 벤츠 제 1의 신델핑엔 공장은?


1956년 신델핑엔 공장 모습. 사진=위키미디아


신델핑엔 공장 전경. 사진=blog.mercedes-benz-passion.com


슈투트가르트 남서쪽 15km정도 떨어진 곳 신델핑엔에1915년에 세워진 완성차 조립 공장으로, 다임러가 주식회사가 된 후 가장 먼저 세워진 공장. 약 3백만 제곱미터의 공간에서 2만 6천명 가량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주요 생산 모델로는 C클래스 , E클래스, CLS 슈팅 브레이크, SLS AMG 쿠페 및 로드스터, 그리고 S클래스 등이 있으며, 1년에 40만대 이상이 이 곳에서 만들어진다. 메르세데스 벤츠 테크놀로지 센터도 이곳에 위치해 있다.


신델핑엔 공장에서 만들어진 S클래스 와 함께 포즈를 취해주고 있는 디터 체체 다임러 회장. 사진=blog.mercedes-benz-passion.com


신델핑엔 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메르세데스 SLS AMG 로드스터 뒷모습. 사진=favcars.com




점점 더 한 직장에 오래 머무는 독일 노동자들


슈바벨과 슈탈 씨의 이야기를 통해 벤츠의 기업 문화까지 한 번 살짝 들여다 봤는데요. 일간지 디벨트가 프리츠 슈탈 씨의 이야기를 기사화 한 진짜 이유는 사실 여기서부터입니다. IAB라는 기관에서 조사를 해보니까 독일인들이 한 직장에서 머무는 평균 기간이 11년 정도라고 합니다. 프랑스나 이태리 보다는 짧은 편이지만 스페인, 영국, 덴마크 등 많은 유럽 국가에 비하면 긴 편이고, 이런 현상은 2000년 이후부터 더 강화되고 있다고 디벨트는 전했습니다.


그런데 삼각별 자동차를 만드는 다임러의 경우는 그 평균치를 크게 웃돌았는데요. 평균 20년이었습니다. 코메르츠방크(은행)가 17년, 자동차 부품회사인 콘티넨탈이 15년 등으로 그 뒤를 잇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한 근로자가 오래 일하는 것은 노동자 자신과 회사 모두에게 좋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일단 노동자는 오래 한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있어서 안정된 생활이 가능하고 기업은 이미지 재고에 도움을 받는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숙련된 노동력을 통해 좋은 차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죠.


또 독일 노동자들의 특징이라면 이직을 고민하는 경우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이었습니다. 한 직장에서 평균적으로 더 오래 근무하는 걸로 나온 프랑스의 노동자들 보다도 오히려 이직에 대한 고민은 적다고 조사에서 나타났다고 하는데요. 특히 엄격한 노동법에 의해 함부로 해고를 못하기 때문에 자리 이동이나 적절한 역할 분담 등을 통해 최대한의 수익을 내려는 노력이 독일 기업들에겐 일반적이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영국의 경우와 비교를 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영국은 직업적 성취도나 성장을 이직을 통해서 얻거나 확인하려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한 반면, 독일은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기업 내에서 주어진 승진의 기회를 통해 성장을 도모하려는 경향이 더 강하다고 디벨트는 전했습니다. 이따가 독일 네티즌들의 댓글 중에도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17세 정도부터 시작되는 아우스빌둥 (직업교육)을 통해 3년 정도 직업교육과 학업을 병행한 후 취직이 되면, 비교적 이른 나이에서부터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이 독일의 특징이라고 하겠습니다. 


아우스빌둥(직업교육)을 하는 교육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디터 체체 다임러 그룹 회장의 모습. 엄청난 지원자들을 뚫고 저 자리에 있는 학생들이 과연 과정을 마친 후 얼마나 채용이 되었을지 궁금하네요. 독일 청소년들에겐 부러운 사진일 겁니다. 사진=blog.mercedes-benz-passion.com




슈탈 씨 이야기에 대한 독일인들의 반응


프리츠 슈탈 씨는 연말까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 크리스마스 보너스까지 두둑하게 챙기게 되겠죠. 일을 끝낸 후에 편하게 쉴지, 아니면 자신이 일하던 공장을 그리워하며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의 삶은 50년 동안 벤츠와 함께였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슈탈 씨의 이야기는 독일의 현재 노동환경, 특히 벤츠라는 대기업의 근로 조건 등이 좋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얘기는 모든 독일 노동자들이 이런 혜택을 받는 게 아니라는 얘기도 되는데요. 기사에 딸린 댓글들 중 읽어 볼 만한 것들 몇 가지를 추려 봤습니다. 함께 읽어 볼까요?


Herbert Frahm jr : "이렇게 일해 온 사람도 있다만, 사실 흔한 이야기는 아니야.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월급이 부족하거나 일 자체의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상사들에게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일이 재미없는 거 아닐까? 결국 그런 환경에서 직원들은 제대로 된 동기부여가 될 수 없고, 그러니 스트레스만 받다가 병이 나기 일쑤고, 그래서 효율성이 떨어지니 결국 회사는 제대로 이익을 못해는 것이고 말야."


Artyom : "(기사가) 다 맞는 얘기야. 하지만 정말 기사에서처럼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는 게 길어지고 있나? 오히려 이런 일은 드물어지고 있는 거 같은데. 다임러 공장에서 일한다는 건 럭셔리한 노동이라고 봐야지. 전체적으로 안전하고, 월급도 높고, 많은 보너스도 있고...다임러와 보쉬 같은 회사에서 아우스빌둥 (직업교육)을 했다면, 너무 멍청하지만 않는다면 채용될 가능성도 있는데, 이런 친구들은 장기적으로 보면 고급 엔지니어들 보다 낫다고 난 봐.


25세에 벌써 자기집 짓기를 할 수 있고, 둘째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경재적 수준을 만들 수 있거든. 다임러 공장과 같은 곳은 특별한 곳이라고 하겠지. 슈탈 씨의 선택을 난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의 삶이 독일 노동자들의 기준일 수는 없다고."


Namezulang : " 저런 곳에서 일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지. 중소기업 등은 따라할 수 없는 풀 패키지 환경을 마련해 준다고. BMW, VW, 메르세데스 벤츠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좀 아는데, 대체로 20년 넘게 일하고 있어. 이 기사를 보면 왜 다임러에 들어가고 싶어하는지 이해가 될 거야."


Branchenkenner : "(윗 글에 대한 답글) 평범한 라인에서 일하는 다임러 노동자의 임금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 세전 월 4500유로야.(한화 약 600만원. 세금은 보통 30%에서 50% 미만까지 여러 노동 조건에 따라 다르고, 독일 직장인들의 평균 급여가 3500유로 수준이라고 알고 있으니, 확실히 높은 임금이 보장된다고 하겠네요) 다른 프리미엄 자동차 기업들도 비슷한 편이지. 그래서 그 일자리들은 엄청나게 인기가 높은 건 당연한 일이겠지?


mentor : "그와 그의 시니어 근로자들은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비싼 인력들이 아닌가 싶은데? 그런 일들은 그냥 파트타이머들도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Guenna : "(윗글에 대한 답글) 당신은 슈탈 씨가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지 모르는 거 같군. 그들이 마지막 공정에서 찾아내는 오류들은 99%의 사람들은 절대 발견하지 못하는 것들이야. 나 조차도 도장 오류를 찾는 일은 힘들어. 이런 직원ㄷ르은 그 기업 내에서 아주 높은 평가를 받고 있고, 중요한 인력들이야. 그래서 월급은 나쁘지 않는 것이고, 또 사실 그래야 하는 거라구."


Brazolino : "슈탈 씨가 몇 년 더 일했으면 좋겠어. 난 사람들이 자기의 일을 사랑하고 그것으로 행복해 하는 모습이 정말 좋거든."


Nie wieder diese Firma : "(벤츠 공장에서 일했던 사람이었던 듯합니다) 다임러에서는 어느 정도의 직원들이 정직원들 보다 안 좋은 조건(비정규직, 협력사 파견 인력 등) 아래에서 일하고 있어. 솔직히 요즘 다임러 공장의 분위기는 바닥이야. 월급은 오히려 평균적으로 나빠졌고, 원가를 절감해야 하는 상황이 있으면 정직원들이 아닌 인력부터 잘려나가지.


몇 년 전엔 퇴직금 안겨주며 희망퇴직을 받았는데, 그 때 나간 사람들이 포르쉐와 아우디 등에서 일하고 있어. 그런데 사실 진짜 실력 좋은 이들은 그들이었어.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다른 회사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그냥 머물렀던 걸 거야. 이런 상황에서 다임러가 아직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건 협력사 직원들의 힘이라고 봐. 


오히려 회사 내부의 엔지니어 보다 외부 엔지니어들의 실력이 더 좋다고 난 생각해. 벤츠는 확실히 10년, 15년 전 보다 숙련도가 더 떨어졌어. 중앙역 앞에 있는 택시 기사들에게 물어 보라고. 예전보다 더 많은 벤츠 택시에 대한 불만들을 들을 수 있을 거야. 과거엔 택시의 90%가 벤츠였지만 지금은 60% 수준도 안될걸?"


Sam : "난 퇴직함으로써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읽고 싶어. 그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하거든."




▶대한민국의 슈탈 씨들, 더 많아지길


예전에 우리나라의 한 항공사에서 오래된 정비사들을 무더기로 퇴사시킨 후에 비행기 고장 문제고 잦아져서 다시 그들을 불러 들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숙련된 직원들을 통해 품질을 높이고, 그들을 통해 신입 직원들의 숙련도를 높이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잊어선 안될 거 같고요.


독일의 프리미엄 자동차 회사의 공장 노동자의 이야기가 우리나라의 불안한 근로환경과 대비되어서 참 부럽게 느껴졌습니다. 한 회사에서 50년을 일할 수 있는 현실. 그리고 그걸 충분히 보장해주는 현실. 물론 독일 내에서도 이들은 아주 부러운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평가됩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한 이들부터 이처럼 고등학교와 연계해 직업교육을 받는 이들까지, 자동차 회사에 취직하는 걸  인생의 목표로 여기는 젊은이들이 굉장히 많죠.


또 비정규직(파트타이머)의 문제도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정규직 비율이 월등히 높고, 일단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노동 생산성을 끌어 올리기 위한 노동자 자신과 회사의 노력이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프리츠 슈탈 씨의 다임러 공장에서의 50년은 어땠을까요? 직접 묻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했을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을 거 같네요. 대한민국에도 슈탈 씨와 같은 노동자들이 훨씬 많아지길 바라면서 오늘 이야기 마치겠습니다.


참 한가지 더, 굉장히 슈탈 씨를 부러워한 독일 네티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를 귀족노동자류로 비난하는 댓글은 없었죠. 이유는 간단해 보입니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차가 세계 최고의 벤츠여서가 아닐까요? 우리나라에서 흔히 나오는 귀족노조의 논란도 결국 고객 만족을 통해 지워내는 길밖에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