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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차량용 블랙박스 문제로 지금 독일은 시끌


지난 번 쉐어드 스페이스라는, 공간과 교통에 대한 새로운 개념에 대해 소개해 드리면서 이런 얘길 했었습니다 "독일은 룰에 미친 나라다." 독일 인들이 스스로가 하는 표현인데요. 정말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아주 작은 부분들까지도 규정돼 있는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그냥 법대로 규정대로 하는 게 편하지 꼼수 부리다간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가 어려다는 거예요.


조직적이고 철저한 국가라는 느낌이 들고, 특히 운전을 하다 보면 대체적으로 합리적인 도로 문화가 자리잡은 나라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저의 취향과는 비교적 잘 맞는 편이죠. 그런데요. 마냥 합리적일 거 같은 독일이지만 엄격하게 규칙을 정해놓다 보니까 답답함을 느낄 때가 때때로 생깁니다. 조금 유연해도 될 법한데, 그냥 고지식하게 밀어부치는 경우들이 있죠. 오늘 얘기도 어쩌면 그런 부분이 아닐까 싶은데요. 차량용 블랙박스와 관련돼 시끄러운 독일의 얘기를 좀 해드리겠습니다.



차량용 블랙박스. 사진=amazon.de




獨 법원의 블랙박스에 대한 요상한(?) 판결


미국에서 먼저 법적으로 강제화시키면서 활성화 된 것으로 알고 있는 차량용 블랙박스는 우리나라에서도 일상적으로 사용이 가능해졌습니다. 블랙박스 영상과 관련된 방송 프로그램까지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차량 사고나 도난, 또는 보험 범죄 등에 대응할 수 있어 유용한 기기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블랙박스를 독일에서는 이제 활용할 수 없게 되어버렸어요.  


이야기는 지난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의 안스바흐라는 곳에 사는 한 운전자가 행정법원에 이런 신청을 했습니다. 자동차에 블랙박스를 달았는데, 여기에 찍힌 영상을 경찰에 제출해서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게 해달라고 한 겁니다. 1차적으로 이 영상을 사용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이 남자는 행정법원에 이의를 제기한 겁니다. 그런데 이 법원이 아예 법적으로 명확하게 안된다는 판결이 내려버린 겁니다. 판결 내용을 정리하면 대략 이렇습니다.


" 블랙박스로 촬영을 하는 것은 상관없다. 다만 그 영상의 목적이 증거용이 되어서는 안된다. 유튜브, 페이스북 등의 인터넷 안에 공개적인 곳에 영상을 올리는 행위, 또는 경찰에 증거용 자료로 제출하는 등의 행위는 모두 금지된다. 이는 정보보호법에 위반된다."


굉장히 애매한 내용의 판결이 내려졌단 생각인데요. 이 남자는 영상 안에는 다른 차량의 번호판도 안 드러나 있고, 지나가는 행인의 얼굴이 노출된 것도 없는데 너무한 것 아니냐고 억울해 했습니다. 이런 영상의 경우 도대체 무슨 정보보호의 대상이 된다는 걸까요?


특히 블랙박스 영상이 증거용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주체는 판사로, 과연 영상의 목적성을 명확하게 구분을 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작년에는 자전거에 달린 캠에 찍힌 영상을 경찰이 증거로 받아 들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때 판단이, 해당 영상은 증거용이 아닌 개인 소장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명확한 경우가 아닌 이상엔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는 잣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고현장 등, 시시비비를 가릴 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영상을 법적으로 인정을 안 한다는 건 오히려 개인 재산권 보호에 대한 제한적 상황을 만드는 것이고 반발이 심하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판결이 언론을 통해 소개되면서 시끌시끌했습니다. 그러다 최근 다시 한 번  이 문제가 독일인들의 혈압을 올리고 말았죠. 바로 그 문제의 판결을 내린 안스바흐가 있는 바이에른 주에서 법원 판결에 따라 불법으로 블랙박스 영상을 활용하다 걸린 사람에게 최고 4억 원 가까운 벌금을 물리겠다고 발표를 한 것입니다 (헉~)


독일은 연방제 국가라서 각 주별로 블랙박스 불법(?) 사용에 대한 대응이 다른데요. 현재까지 아직 명확하게 규정이 마련되지 않은 곳들이 많아서 어수선한 상황에서 바이에른 주에서 이런 무지막지한 기준을 정한 것이 다른 주 정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다시 한 번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독일 유튜브에서 블랙박스 검색어를 입력하면 독일 내 영상은 한 건도 나오지 않습니다. 러시아, 네덜란드, 호주 등의 영상만 올라와 있는 상태입니다. 사진=유튜브 캡쳐


자, 그러면 독일인들은 이 판결과 이 벌금 결정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까요? 독일 주요 매체 중 디차이트와 빌트에 실린 네티즌들의 반응을 살펴 보도록 하겠는데요. 추천수가 높은 의견들 중심으로 몇 개를 골라 봤습니다. 한 번 보시죠.


Trollhunter : "말도 안되는 법원 판결이 나오고, 이젠 터무니 없는 벌금을 위해 공무원들이 움직였군. 결국 국가는 되고 개인은 안된다는 얘기잖아!"


Wauz : "정보보호법? 이런 정보 보호에 제일 큰 관심을 갖는 자들이 누군지 알아? 숨길 게 많은 자들이야. 예를 들면 경찰들...만약 인터넷에 블랙박스 영상들이 올라간다고 해봐. 경찰들의 폭력적이고 불법적 행위들을 확인할 수 있게 되거든."


Manni kopfeik : " 모든 CCTV도 다 떼라!!"


machbbes : "저런 결정을 내린 안스바흐 판사의 생각이 궁금해. 만약 어떤 교통사고로 인해 아이가 죽었다고 하자고. 그리고 그 결정적인 장면을 찍은 블랙박스 영상이 있다고 쳐. 그래도 과연 저런 결론을 내렸을까? 블랙박스를 인정하게 되면 결국 경찰들은 옆집 사람들 처럼 구경꾼이 될까봐 그러는 걸까?"


emagard : "법원의 판단은 영상을 찍어 그게 활용되는 것 보다 영상에 찍힌 개인의 정보보호가 더 중요하다고 본 것인데, 젠장할~ 내가 나를 보호하겠다고 하는 것도 안된다는 거야?"


M.Aurelius : "개인적으로는 블랙박스를 그리 좋다고 생각하진 않아. 하지만 국가가 개인정보 관리하는 분량을 생각하면 블랙박스 사용은 콩알 만한 수준도 안되는 거 아닌가?" 


baking bread : " 이미 국가는 국민들을 찍고 있는데, 그건 괜찮고?"


Stepp Uffpepp : "바이에른 사람들 또 오버한다. 얼마나 운전할 때 황당한 상황들이 많은가 말야."


Welt Frieden : "또 바이에른이군. 예상했다. 범죄율이 높은 곳이니 뭐..."

(범죄율 관련해서는 정확한 내용인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kenai Mangler : "내가 교통사고 피해를 당했다고 해. 그래서 내가 잘못이 없다는 걸 영상으로 이젠 증명을 할 수가 없게 된 거야. 갑자기 정보보호법이라는 것이 거인처럼 등장해서 말야. 하지만 NSA 등, 국가 기관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선 왜 제대로 대응을 안 하는 걸까?"


Kampfhund Streichler : "누가 내 차를 위협해서 그것 때문에 다른 차를 내가 박았어. 하지만 내가 잘못이 없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영상이 있어. 그런데 그걸 경찰에 넘기면 벌금을 최고 4억이나 내야 한다네. 사고를 목격한 영상도 증거가 될 수 없다니. 독일 요즘 돌아가는 모습은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구나."


Peter Blitz Duque : "이미 두 번이나 억울한 차량 관련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법원이 저런 결정을 했건 말건 상관없이 계속해서 블랙박스를 난 쓸 거야."


Vladmir cumackel : "시속 210km/h의 속도로 내 차 뒤에 다른 차가 달라 붙어 있으면 그걸 찍어서 신고하고 싶어. 아니면 왼쪽 차선(추월차선)을 막고 비키지 않는 차들도 찍어서 신고하고 싶고. 또 손가락 욕을 하는 등(독일에선 운전 중 손가락 욕이나 말로 욕을 하다 걸리면 벌금을 크게 물게 됩니다.) 의 행위도 블랙박스로 찍어 신고해주고 싶어. 경찰이 못하면 우리라도 직접 나서서 이런 잘못된 운전들에 대응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Nathan Weise : "전형적인 독일식 판결! 국가는 모든 것이 되고 국민은 무엇도 안되는."


Peter Schmitz : "정말 독일스러운 결정들이야."


Volker Hennirg : "전형적인 독일. 세계 곳곳에서 쓰고 있는 블랙박스를 도대체 독일은 왜 금지를 시키는 건지."


천 건이 넘는 댓글들 대부분이 판결과 벌금에 대한 불만 의견들이었습니다. 실제로 빌트에서는 바이에른 주의 벌금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네티즌들의 의견을 물었는데요.

bild.de 캡쳐

10월 8일까지 총 35,264명이 설문에 참여했고, 그 중 78%가 "잘못된 결정이다"라고 했습니다. 22%만이 "맞는 결정" 이라고 답했으니 거의 8:2의 비율로 블랙박스 벌금에 대해 반대 의견들을 내고 있었습니다. 이 의견이 모두 블랙박스 영상을 공개적으로 사용하게 해달라는 의견으로 볼 순 없을 겁니다. 벌금에 관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불과 몇 년 전 블랙박스 관련한 소식을 전할 때의 여론과는 많이 달라져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여기서 잠깐! 유럽의 블랙박스 유럽 내 사용 실태

블랙박스 사용 가능 국가 : 영국, 스페인, 프랑스, 보스니아, 세르비아, 말타, 네덜란드, 노르웨이, 이탈리아 등

블랙박스 영상 공개 금지 국가 : 독일, 벨기에, 스웨덴, 룩셈부르크, 포르투갈, 스위스 등

블랙박스 사용 완전 금지국 : 오스트리아

자료 : adac.de




타인의 인권과 정보는 보호되어야 한다

                    VS

나의 재산과 내 자신을 지킬 권리도 보호받아야 한다


이제 많은 독일인들이 블랙박스를 써보면서 그 효용성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사생활, 원치 않게 타인에 의해 나의 정보가 함부로 유출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 독일이란 나라의 국가관이고 (위에 전형적 독일이란 표현들의 의미), 이것이 블랙박스의 효용성 보다 우위에 있다고 법은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죠. 


반대로, 블랙박스 활용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나의 재산과 나의 권리를 지키고 정확하게 보호받고 싶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저는 타당하다는 생각입니다. 결과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정부의 의지와, 개인 재산권을 스스로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국민 개인의 현실이 부딪히고 있는 것인데요.


솔직히 이 두 가지가 모두 지켜졌음 좋겠습니다. 제가 이 글 시작하면서 법원 판결에 고개를 갸웃했었죠. 그것은 개인의 권리 보호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판사가 블랙박스에 녹화된 영상의 목적을 과연 정확하게 판정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 그리고 중요한 증거자료로써의 가치가 있는 영상을 경찰에 제출하지 못하게 하는 것까지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점때문이었습니다.


유튜브 등에 영상을 올렸을 때도 자연 경관을 보여주는 등 것은 별 문제가 없겠죠. 하지만 몰래카메라처럼 타인들을 훔쳐보는 영상에 대해선 신고 등을 통해 처벌을 받게 하면 될 것입니다. 몇 가지 기준을 세워 안전장치를 마련한다면 충분히 타협을 이룰 수 있을 거 같은데 너무 일방적으로 이런 결론을 내리니까 많은 독일사람들이 반발을 하는 거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금도 독일 아마존 등에서는 블랙박스가 판매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번 판결로 인해 판매에 영향은 받겠지만 과연 이 결정이 계속해서 이어질지, 아니면 국민들의 요구에 의해 다른 판결이 또 나오게 될지는 좀 더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 할 거 같습니다. 개인의 정보 보호에 대해 관심이 높은 우리나라 상황에서 이 독일의 블랙박스 논란은, 먼 남의 나라 이야기인 거 같기도 하면서도 뭔가 묘하게 우리네 상황과도 맞물려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군요. 여러분이라면 어떤 판결을 내리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