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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獨 아우토반 통행료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아우토반하면 우선 폭풍질주가 먼저 그려지시죠? 속도제한 없이 달리는 꿈같은 도로. 물론 점점 무제한 구간이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법적으로 허용된 과속구간이 분명 독일엔 존재합니다. 아우토반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라면 이 도로가 통행료를 받지 않는, 모든 곳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까지 알고 계실 겁니다. 


아우토반 이야기를 갑자기 꺼낸 이유는, 공공재로서의 도로의 가치와 관련한 글을 하나 준비하고 있는데 관련 자료를 찾다  재미난 내용이 있어서 오늘 그걸 소개해 드리면 어떨까 싶어서였습니다. 독일 전체, 아니 유럽 전체에서 관심을 받고 있는, 뜨거운 감자에 대한 내용입니다.



독일 아우토반 전경. 사진=위키피디아




아우토반,

더 이상 무료로 이용하지 못하게 된다고?


'아우토반'은 독일 전역에 걸쳐 약 12,800km 이상의 길이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세 배 정도 수준으로 알고 있는데요.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니까 그 역사가 상당합니다. 히틀러가 극심한 실업난 해소와 전쟁 준비라는 두 가지 큰 목적을 가지고 밀어부친 국책사업이기도 했죠. 


이런 아우토반은 독일인들은 물론 세계 어느 나라 번호판을 달고 있든, 승용차는 모두 무료로 이용을 하고 있습니다. 공공재에 대한 독일의 인식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거기다 전범국가라는 낙인을 조금이라도 지우고, 주변국들에 대한 책임의식 때문에라도 이 도로는 완벽하게 오픈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현재 2곳의 터널에서는 통행료를 받고 있음.) 그런데 이런 자유와 질주, 부채의식 등이 뒤섞인 상징적 도로가 큰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통행료를 받겠다고 독일 정부가 선언을 했기 때문이죠. 




표면적 이유는 유지관리비 충당,

실상은 재정적자 해소용?


독일 아우토반을 이용하는 차량의 수는 년간 약 1억 7천만 대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 외국(주변국) 차량 비중은 승용차 기준으로 약 5~6% 사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1년에 독일 정부가 아우토반을 포함해 각 종 도로를 유지하고 보수하는 비용만 우리 돈으로 1조원 가까이 든다고 하는군요. 독일인들 입장에선 이 비용의 상당수가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외국 차량들이 무료로 이용하는 것에 상당한 불만들이 있어 왔습니다. 


독일 정부도 이 도로를 제대로 관리하고 국민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아우토반을 비롯한 독일 내 모든 도로를 이용하는 외국 차량들에게 통행료를 받겠다고 결정한 것입니다. 



독일 아우토반은 공사 구간 많기로 유명. 사진=스케치북


올 가을 의회에서 이 법안의 통과를 정부측은 기대하고 있고, 그렇게 해서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실행을 할 예정에 있습니다. 통행료는 차창에 붙이는 스티커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이고요. 열흘 짜리(10유로), 두 달짜리(19유로), 1년짜리(88유로) 등으로 차별화 하고, 차량의 상태, 그러니까 소형차냐 아니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차냐 등을 구분하는 것까지도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 독일 내에서 찬반 의견이 팽팽합니다. 과거에도 이런 논의가 있었지만 그 때마다 국민과 언론의 반대에 부딪혔죠. 하지만 이번엔 그 분위기가 찬성 쪽으로 좀 더 기운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이긴 하지만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통행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받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 보다 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죠.


보수적인 국민들은 찬성을, 그리고 대체적으로 야당 성향의 진보적인 이들은 반대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물론 완벽히 딱 진보와 보수라는 프레임으로 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이, 정부 내에서도 반대하는 부처와 장관도 있고, 야당에서도 정치적 이유로 인해 찬성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죠. 


이해관계가 걸린 각 종 단체들도 찬반으로 의견이 나뉘었고, 국민들도 실리와 명분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특히 반대하는 이들은 메르켈이 재정흑자를 2016부터 만들겠다고 선언한 이상, 이 공약을 달성시키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이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들을 내고 있기도 합니다.




총대를 멘 교통부장관,

그리고 언론의 쏟아지는 비판


작년에 TV 프로그램에 나온 메르켈 총리는 통행세는 없을 것이라고 했죠. 하지만 야당과의 연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통행세 문제가 다뤄졌고, 특히 메르켈이 몸담고 있는 CDU 정당과 깊은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CSU (바이에른 주에서만 활동하는 보수 정당)의 당수 겸 바이에른 주총리 호르스트 제호퍼는 통행료 문제가 해결 안되면 연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아주 강하게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 난제를 해결하겠다며 총대를 멘 이가 등장하는데, 바로 독일 연방 교통부장관 알렉산터 도브린트입니다.



알렉산더 도브린트 독일 연방교통부장관. 사진=위키피디아


알렉산더 도브린트는 앞서 언급한 바이에른 보수당 CSU 출신의 정치인인데요. 메르켈을 대신해 통행료 문제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여론 보다는 언론들이 좀 더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며 정부를 공격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오늘 소개해드릴 디벨트지의 정치부 기자 마티아스 카만의 기사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고 있는데요. 그는 5가지 이유를 들어 통행료 문제가 실패할 것이라고 내다 봤습니다. 긴 내용이라 제가 간단하게 요약해 정리를 해봤습니다. 


<아우토반 통행료 실패할 수밖에 없는 5가지 이유>

1. 접경국과 국경 근처의 경제적 문제

일단 독일은 주변 9개 나라와 접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들 중에서 특히 오스트리아와 네덜란드가 심한 반대를 보이고 있는데요. 가장 큰 이유는 통행료로 인해 독일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여행을 오거나 식료품 등을 사러 오는 이들의 반발이 클 것이란 점입니다. 스위스 같은 나라는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국경 근처에 사는 이들은 독일로 물건을 사로 자주 넘어 오죠. 통행료로 인해 이런 방문자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한 조사 자료에 따르면, 통행료로 인해 주변국 방문자가 줄어들게 되고 15~20% 정도의 지역 경제가 손해를 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런 문제가 대두되며 반발이 커지자 다급해진 건 강력하게 통행료 제도를 만들자고 주장했던 CSU 당입니다. 오스트리아와 스위스와 맞닿아 있는 바이에른 주 입장에선 국경 근처 주민들의 불만을 해결해야겠죠. 그래서 도브린트 장관에게 이런 접경지대 주민들의 차량은 예외로 해달라고 호르스트 제호퍼(앞서 통행료 제도 안 만들면 연정에 사인 안하겠다고 한 주인공임) 주총리가 의견을 냈는데, 같은 당임에도 도브린트 장관은 아주 칼같이 의견을 잘라버리고 말았습니다.


2. 자칫 국가 재정에 손해가 될 수도

두 번째 실패 이유로는 재정의 위험성을 언급했습니다. 현재 교통부가 너무 통행료 걷히는 것을 장밋빛으로 계산을 했다는 것이죠. 반대하는 정당과 교통 전문가들의 분석은 결과는 실제로 거둬지는 통행료로 인한 수익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이미 2005년부터 받고 있는 대형 화물트럭 통행료를 통해 충분히 도로의 유지관리비가 마련되고 있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3. 과다업무

세 번째 문제는 갑자기 늘어나는 업무량을 해당 부서가 감당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입니다. 은근히 복잡한 형태를 하고 있는 통행료 제도로 인해 업무량이 폭주하게 되고, 현재 인력과 조직으로는 이를 제대로 감당해낼 수 없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일 년에 몇 개월 안 타는 오토바이와 한 달에 한 번 정도밖에 차를 이용하지 않는 노년층의 자동차에 대해 어떻게 통행료를 물리고 자동차세를 깎을 것인지, 현재 조직력으론 이런 부분까지 완벽하게 처리하기 어렵다는 것이 기자의 주장입니다.


4. EU 집행부와 주변국의 강한 반대 여론

EU 내에는 중요한 법이 하나 있는데 바로 차별금지법입니다. 통행료 부과가 이 법을 어길 수 있다는 것이죠. 왜 그런가...현대 독일 정부는 표면적으로는 독일인들에게도 통행료를 걷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자동차세를 깎아주겠다고 했기 때문에 결국은 자국민들에겐 통행세를 받지 않게 되는 것이죠. 이 부분을 네덜란드 (네덜란드 역시 흔하지 않는 통행료 없는 국가)와 오스트리아 등이 제소 등을 통해 걸고 넘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독일은 최근 영국 BBC 조사를 통해서도 드러났지만, 세계인들이 가장 호감을 갖고 있는 나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영국, 프랑스는 물론 미국과 호주, 그리고 아시아에선 우리나라가 독일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죠. 유럽 다른 나라들도 대체로 (스페인이나 그리스 등은 경제 위기와 관련해 부정적 평가가 늘었음) 독일하면 좋게 평가합니다. 이런 국가 이미지에도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조심히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들도 나오고 있는 것이죠.


좌측으론 벨기에, 앞에는 네덜란드. 특히 휴가철이 되면 유럽 각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자동차들로 독일 아우토반은 몸살을 앓는다. 사진=스케치북


5. 구멍난 시스템

마지막은 현실적으로 헛점이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현재 정부 정책대로라면 외국 승용차와 3.5톤 미만의 소형 트럭들은 아우토반을 비롯한 독일의 모든 도로에서 통행료를 내야 합니다. 또 7.5톤 이상의 대형 화물트럭들은 지금처럼 아우토반에서 통행료를 내야 하고요. (GPS나 휴대폰을 통해 정차없이 달리며 통행료 내고 있음) 그런데 문제는 3.5톤과 7.5톤 사이에 있는 차량들에 대한 규정이 없다는 겁니다.




과연 정치인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환경부나 쇼이블레 재무장관과 같은 유력 여권 정치인 등은 통행료 징수에 대해 반대하거나 아직 동의 의사를 표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국민들의 의견도 팽팽히 맞선 가운데 유럽 주변국들의 강한 저항도 현재 문제입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독일 정치인들은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요? 


"왜 우리 독일인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이 망친 도로의 보수비를 다 부담해야 하느냐, 우리의 환경을 오염시키고, 도로 정체를 만드는 것에 대해 그들도 일정부분 책임을 나눠져야 하는 거 아니냐"는  어느 독일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도 봤고, 또 "통행료 없이 아우토반의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전쟁을 일으켰던 독일이 취할 수 있는 주변국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겠냐"는 자동차 딜러의 이야기도 소개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실리와 명분 사이에 있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가 현재 독일에서는 답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과연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이 어려운 문제를 독일 정부는 어떻게 풀어갈까요? 먼 남의 나라 이야기이지만 우리에게도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어 보입니다. 제 의견요? 전 아직은 통행료를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 봅니다. 좀 더 늦춘 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현명한 방안 마련과, 주변국에 대한 설득작업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되네요. 물론 정책이란 것이 모든 것을 고려하고 만족시킬 수만은 없겠지만, 그래도 아우토반이란 도로가 갖는 상징성을 생각해서라도 좀 더 신중할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