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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자동차를 향한 뒤틀린 사랑, 이제 끝내시죠



여기 자동차 한 대가 있습니다.


메르세데스 벤츠 300 SL AMG 걸윙. 사진=netcarshow.com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에 만들어진 벤츠죠. 사람들은 보통 자동차를 좋아하는 직접적인 이유로 3가지를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스타일, 좀 폼나게 이야기해보자면 미학적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페라리 캘리포니아 T 엔진룸. 사진=netcarshow.com


페라리가 최근에 내놓은 캘리포니아T (2인승 오픈카)의 엔진인데요. 8개의 실린더가 있으며 560마력이라는 엄청난 힘을 냅니다. 두 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죠. 바로 엔지니어링입니다. 과학이 만들어내는 자동차 기술의 결정체, 그 기술력에 대한 환호와 열정이 자동차를 사랑하게 만들죠.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사진=netcarshow.com


세 번째 이유는 아무래도 스피드가 아닐까 싶어요. 속도에 대한 열망이 자동차를 좋아하게 만든다고 봅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이유로 자동차를 좋아하고들 계십니다. 저는 이 대표적인 이유 3가지를 '직접적 애정'이라고 표현을 해봤습니다. 왜 이런 표현을 썼냐면, 다음에 이야기할 것들과 구분을 짓기 위함이에요. 


이 '직접적 애정'은 과속 문제, 또 소음공해와 환경파괴, 그리고 자동차 사고 등의 위험을 필연적으로 파생시킵니다. 하지만 제가 오늘 이야기하고픈 '뒤틀린 사랑'은 두 번째 분류인 '사회적 애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죠. 이제부터 이 부분을 이야기하고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분 상징의 도구


좋은 자동차를 타거나 타려고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죠. 더 나은 운동성능을 느끼고 싶어서, 또 화려한 기능들을 누리고 싶어서,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 혹은 신분을 드러내고 싶어서 등입니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자동차에 대한 사람들의 첫 번째 애정은 바로 이 '신분 상징'과 밀접하다고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벤틀리 컨티넨탈 GTC. 사진=netcarshow.com


오스트리아인으로 자동차에 대한 비판적 활동을 펴는 헤르만 크노플라허라는 교수가 있습니다. 안티 자동차의 선두 주자격으로 이 양반이 쓴 자동차 바이러스라는 책에 신분상징을 이야기할 만한 에피소드가 담겨져 있습니다. 내용은 대충 이래요. 부자 노인이 편한 복장에 자전거를 타고 와 호텔에 묵겠다고 하니, 그의 모습을 본 호텔 주인이 거절을 합니다. 우리 호텔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이용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노인은 조용히 자전거를 끌고 나갔고, 호텔 앞에 있던 벤츠에서 운전사가 내려 그 노인의 자전거를 차에 실었습니다. 그 노인이 떠나자 호텔 주인은 그제서야 자신이 잘못 판단한 것을 알고 다음부터는 자전거 이용객들의 호텔 투숙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런 얘기는 전혀 특별하게 와 닿지 않아요. 얼마든지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 풍경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급 대형 세단과 작은 경차에 대한 시선과 대우가 다르거나 달라지는 것을 목격하는 건 매우 일상적 그림입니다. 좋은 차를 탔으니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판단을 하게 되죠. 그런데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좋은 차를 타는 사람을 인격적인 면에서까지 우위에 있다고 차별을 두는 인식으로까지 연결이 되기도 합니다. 자동차가 사람의 신분을 계급화시키는 하나의 도구가 돼버린 것이죠.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자동차라는 도구로 바라보는 일종의 배금주의적 관점, 그것이 우리의 욕망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유하고픈 강한 욕구


차로 차별받는 세상이 되다 보니 사람들은 순수하게 자동차 그 자체를 즐기고 좋아하는 단계를 넘어 사회적 신분을 규정짓는 도구로 이해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확장되면서 '무리를 해서라도 좋은 차를 사야지'라는 소유욕으로까지 이어지게 됐습니다. 애초부터 자동차는 부자와 권력가들의 장난감으로 시작이 되었기에 어쩌면 이런 욕망의 흐름은 일관된 것이라 할 수 있겠네요. 


물론 반론도 있을 겁니다. "난 차 그 자체를 좋아할 뿐입니다." " 내가 이 차를 선택한 것은 안전을 위해 꼭 필요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 등의 이야기들. 실제로 이런 분들은 지금 언급하는 것과 어느 정도 구별을 지을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과연 자동차에 대한 사회적 욕망과 완전히 분리한 채 차를 사랑하고 소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글쎄요. 저도 자신있게 말은 못하겠군요.


어쨌든 나를 과시하고 싶은 욕망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좋은 차, 더 비싼 차를 소유하고픈 욕구는 강해집니다. 그리고 이런 욕망을 자동차를 사랑해서 그런 것이라는 이야기로 자기 변호를 하게 되고요. 여기에 남성성을 드러내는 것과도 자동차의 소유욕은 관련이 있죠. "운전하는 남자 멋지지 않나요?" "후진할 때 내 남자의 목라인은 예술이죠." 등의 아낙들의 발언이 방송에서 나올 때마다 많은 남자들의 본능은 알게 모르게 '차를 사야해!' 라는 쪽으로 꿈틀대게 됩니다. 


사실 자동차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는 수도 없을 것이고, 이런 욕구를  배가시켜 무모한 소비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든 부모를 설득하고 아내를 설득해 내가 원하는 차를 사야지 "그렇지 않으면 병이 날 것만 같아"라고 말한다면 당신의 자동차에 대한 사랑은 뒤틀린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와 나를 동일시하는 현상


BMW 비젼 퓨쳐 럭셔리 쿠페. 사진=netcarshow.com


강준만 교수의 저서 '자동차와 민주주의'에는 제러미 리프킨이 한 말이 담겨 있습니다. 제러미 리프킨은 '소유의 종말' 그리고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3차 산업혁명'과 같은 책을 남긴 학자입니다. 그가 자동차를 표현한 부분 중 이런 말이 있어요. "어떤 사람들에게 자동차는 존재의 확장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존재의 대용물이다"


실제로 사회학자들은 사람들에게서 자동차를 자신의 신체 일부로 여기는 '합일화 현상'이 드러나기도 한다는 보고서를 내놓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자동차를 나의 일부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건데요. 자동차에 앉아 안전벨트를 메고, 시동키를 누르는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연결선이 차와 나를 하나로 묶는다는, 영화같은 상상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죠.


이런 합일화, 혹은 대용물로 자동차를 여기는 순간부터 운전은 나를 드러내는 일이 됩니다. 운전이 인격이라는 말들을 하는데 그건 여기 언급한 합일화와는 좀 다른 의미니 제외하기로 하죠. 어쨌든 내 운전을 방해하는 모든 행위는 나를 방해하는 행위로 간주됩니다. 갑자기 내 앞을 가로막는 차, 내 차 뒤에 바싹 따라붙어 오는 차, 내게 경적음을 울리거나 상향등을 켰다 껐다 하는 행위 등은 나를 공격하는 하는 행위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공격적 행동을 우리는 흔히 로드 레이지 (road rage, 난폭운전)라고 부르는데요. 폭력적 운전을 하게 되는 이유도, 그리고 그런 폭력적 운전에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태도도 결국은 나와 차를 동일하게 여기는, 그래서 "감히 나를 방해하고 나를 괴롭혀?" 라고 생각하게 하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위에 언급한 세가지 욕구에 대한 집착이 강하면 강할수록 자동차에 대한 '사회적 애정'은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틀린 사랑이라면, 과감히 버리자고요


주제넘기는 하지만 진단을 한 번 해보도록 하죠. 당신의 삶이 뭔가에 쫓기는 거 같고 늘 불만이시나요? '왜 나는 저런 차를 못 타는지'라는 신세 한탄이 자주 반복되신다고요? 자동차로 나를 과시하고픈 욕구가 너무 강해 현실에 감사할 수가 없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자동차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것에 집착하고 계신 겁니다. 이제 그 욕망의 덩어리를 과감하게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자동차를 내 삶의 한 조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덧입혀주세요. 그러면 한결 당신의 생활은 기쁨에 찰 것입니다.  



푸조208. 사진=netcarsho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