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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뉴스 읽기

獨 언론 "세월호 침몰, 정부에 치명타 될 수도"

 

 

담담하게 세월호 침몰 사고 소식을 전하던 독일 언론들도 하나 두울 사설과 기사를 통해 비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좀처럼 한국 뉴스를 보기 어려운 독일이고, 또 관련한 소식이 다뤄져도 대체로 단신으로 처리를 하거나 한국 언론들이 전하는 내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 평소의 모습인데요. 이번엔 좀 분위기가 달라 보이네요.

 

며칠 전 트위터로 디 차이트라는 독일 언론에 '한국인의 분노'라는 기사가 실렸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사실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그 때는 오로지 실종자를 찾는 일에 모든 것을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엊그제 새벽, 실종자 가족들이 청와대로 항의 방문을 시도하고 이를 가로막는 상황이 벌어지면서부터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받게 됐습니다.

 

그동안은 가급적 선장 개인의 범죄적 행위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대한민국 사회의 빈약한 안전의식, 그리고 돈벌이를 위해선 과정이야 어떻든 상관없다는 천민자본주의에 대한 분노를 해야 할 때가 됐다고 본 것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무능한 정부의 대처에 더 이상 입을 다물고 있어서는 안되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보다 앞서서, 그러니까 지난 금요일 독일에서 아주 신뢰받는 언론 한 곳이 현 한국 정부의 위기 상황을 예측하는 사설을 올렸습니다. 신문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 차이퉁 (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이란 곳으로 독일의 보수 신문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일간지입니다. 

 

300개가 넘는 언론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독일을 대표하는 언론 중 하나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 차이퉁(이하 FAZ, 읽을 땐 '에프아체트')은 정통보수 언론입니다. 객관적인 보도는 물론 반대 의견에도 귀기울일 줄 아는 신문사로 정평이 나 있죠. 신뢰도는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 이 신문이 세월호 사건에 대해 처음으로 '한국 정부가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다'는 상당히 강력한 어조의 사설을 싣었습니다. 굉장히 이례적이었죠.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홈페이지에 실린 세월호 관련 사설 캡쳐 화면

 

제가 전문 번역가도 아니고 해서 매우 조심스럽지만 기본 맥락은 헤치지 않는 선에서 사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우선 제목을 우리 말로 바꾼다면 <비극적인 선박참사, 한국 연안의 죽음> 정도가 될 거 같네요. 칼럼을 쓴 편집인 페터 슈투름 씨는 "세월호 침몰이라는 참사가 발생한 후, 피해자의 가족들이 잘못의 책임자를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월호 사건은 다른 비슷한 선박 사고와 비교해 봐도 더 많은 의문들을 하게 된다." 라고 했습니다.

 

사설은 선장의 무책임한 행동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선장이 사고가 났을 때 브릿지(함교)에 없었던 것은 물론, 경험없는 승무원에게 책임을 넘겼다. 선장이 제일 먼저 배에서 탈출한 사람들 중 하나였는데, 이것이 어쩌면 46개의 구명보트 중 2개만이 작동된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

 

실제로 유럽인들에게 이번 세월호 선장의 행동은 2012년 1월에 일어난 콩코르디아호 침몰 사건 때 이태리 선장이 배를 버리고 도망간 일을 떠올르게 합니다. 여러 언론들에 달린 네티즌들의 반응들도 대부분이 여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다만 페터 슈투름 씨는 여기에 몇 가지를 덧붙여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상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것은 지침을 줄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 자리에 없으면 다른 팀원들이 힘들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승객들에겐 치명적인 일이다." 그리고 본론이 시작됩니다. "피해자 가족의 입장에서는 정부도 잘못(유죄)이 있다. 그들의 그런 태도 역시 이해가 되고, 정부의 잘못이라고 보는 시선이 사실에 좀 더 가까와 보인다."

 

"구조활동들이 영화에서처럼 해피엔딩으로 현실에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번 참사는 전반적인 모든 상황이 조사될 것이다. 그리고 당국의 실수는 없었는지 밝혀지길 바란다. 특히,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을 때 이를 정부에서 은폐하지 않길 (unter den Teppich gekehrt werden) 희망한다."

 

여기서 당국이라고 한 부분은 중앙재난대책본부를 비롯한 정부와 관계된 기관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선박회사 등, 운항과 안전에 직접적 관련이 있는 곳들을 모두 아우르는 표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쨌든 사설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분은 여기입니다.

 

"사고가 있기 전,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의 서류조작 사건과 관련해 공개적인 대국민 사과를 했고, 이로 인해 난처해진 입장이었다. 대통령 선거 당시 이미 국정원이 제일 중요한 상대 후보의 신뢰를 깎아 먹는 시도를 했다고 의심되고 있지만 대통령 자신은 (여론조작 의혹에 대해) 몰랐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까지 박근혜 대통령은 여러 이슈들에 피해받지 않고 잘 넘겨 왔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로 인한 많은 학생들의 죽음은 대통령에서 치명적인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한 줄이 의미심장했습니다. " 정부의 운명이란 게 가끔은, 정치적인 것과 상관없는 것으로 결정되기도 한다."

 

저는 개인적으로 세월호 비극을 좌파니 우파니 하는 정파적 관점에서 보지 않았습니다. 비록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현재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기에 그녀가 정말 올바른 방향으로 나라를 이끌어 가길 바랐습니다. 그녀가 잘하는 것이 내 나라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번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무능하고 무기력한 정부의 대응을 보면서 과연 이게 국가가 국민들에게 할 수 있는 태도인가, 본질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그리고 이러한 질문은 세월호 침몰 사고를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켜보고 있는 국민 모두의 질문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바로 이 정치색 없는 국민적 분노가 탄탄대로를 걷던 정부에게 치명상을 안길 수도 있는 유일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조금은 두렵고 걱정스럽습니다. 과연 우리나라는 제대로 도니 길을 가고 있는 건가요? 과연 국민들의 이 깊은 상처와 분노와 슬픔을 국가는 과연 제대로 치유해낼 수 있을까요?

 

다만, 이번 비극을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부각시키는, 계산적인 도구로 이용하는 이들이 없길 바랍니다. 그것은 피해자 가족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가 될 테니까요. 하지만 밀려 올라오는 정부에 대한 분노까지,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 대한 본질적 물음까지 막아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피해자 가족분들께 무슨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까요. 그저 죄송하고 아프다는 말밖엔 못 드리겠네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