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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유럽 자동차 응급전화장치 의무화' 우리는?

 

세월호 침몰 소식을 접하고 슬픔과 분노, 무력감에 빠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이 같은 심정일 거예요. 독일 언론들도 계속해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고 있는 상황이죠. 돈 몇푼 더 벌겠다는 천박한 자본 제일주의 탓에 안전이라는 가치가 하등하게 여겨지고 있는 사회에서 일어난 비극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포스팅을 해야 하는 건지 계속 고민을 했어요. 마음을 모아 조용히 응원하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그런데 참 공교롭게도 말이죠. 세월호가 침몰한 그 날, EU 의회에선 의미 있는 법안 하나가 통과가 되었습니다. 내년 10월부터 유럽에서 판매가 되는 신차에는 이콜(e-Call)이라 불리는 응급전화시스템을 무조건 장착이 됩니다.

 

시트로엥 DS5에 달려 있는 응급전화버튼 (붉은색 SOS). 사진=netcarshow.com

 

 

e-Call이란?

한마디로 응급전화시스템을 말하는 건데요. 차가 사고를 당하는 순간 에어백이 터지거나 아니면 별도의 충돌센서가 작동을 하면서 응급구조센터로 자동 신호를 보내게 되고, 이 신호를 받은 응급센터는 운전자에게 전화를 걸거 상황을 확인하거나, 아니면 바로 현장으로 구급차량 등을 출동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통틀어 이콜이라고 부릅니다.

 

이미 2005년 유럽연합(EU)에 이 응급전화시스템에 대한 안건이 올라왔었습니다. EU 회원국들이 그 필요성에 동의해가기 시작했고요. 처음에 스웨덴과 핀란드 두 나라만 서명을 했지만 이후 유럽연합의 노력으로 10개국으로 늘어났고, 나중에 22개국까지 이 방안을 찬성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자동차 회사들에게 자발적으로 이 장치를 달게 유도했더니 너무나 참여율이 저조했습니다. 안되겠다 싶은 유럽연합 측에서는 2009년인가 이를 법으로 강제해야겠다는 의견을 냈고, 2011년에 그런 방향으로 법안이 통과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지난 15일 최종적으로 내년 10월부터 실시하는 것으로 확정이 난 것이죠.

 

독일운전자클럽 아데아체(ADAC)의 eCALL 기본 원리 설명도. 사진=adac.de

 

 

왜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려 할까?

일단 자동응급전화시스템은 자동차의 상태를 텔레매틱박스라는 장치가 읽고 임무를 담당을 하게 되는데요. 앞서 설명드린 것처럼 불의의 사고가 났을 때 e-Call 시스템은 스스로 작동하거나 아니면 운전자가 응급전화버튼을 눌러 작동할 수 있게 됩니다.

 

이걸 EU 내 자동차들에 모두 장착했다고 가정한다면 매년 2,500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하는군요. 거기다 교통사고 시 환자가 보다 빠르게 구급조치를 받을 수 있어 치명적인 상황으로 이어지는 걸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병원비나 보험료 부담이 줄 것이고, 교통사고에 따른 교통체증도 더 빨리 해결이 되고, 이 역시 도로 위에 쏟아붓는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게 됩니다.

 

 

BMW 3시리즈에 달려 있는 비상전화 버튼

 

이렇게 생겼습니다

 

문제는 없나?

일단 2015년부터 신차에 적용하기로 유럽연합이 최종 결론을 내렸지만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일단 각 국가별로 다르게 운영되고 있는 응급콜센터의 시스템을 e-Call에 맞게 모두 업그레이드 해야 합니다. 2017년까지 모든 인프라를 다 갖출 예정이라고 EU에서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e-Call 표준화를 EU 28개국이 모두 그때까지 갖춰야 한다는 것이죠.

 

이게 완성이 되면 국가별 지역별로 다르게 운영되는 응급콜센터가 메뉴얼에 맞게 대응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네덜란드 운전자가 독일에서 사고가 나도, 또 프랑스 운전자가 스페인에서 사고를 당해도 e-Call 시스템을 통한 동일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 표준화에 드는 비용이나 시간을 최소화 하려는 것이 또한 과제가 되겠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차량에 장착될 e-Call용 장치의 비용입니다. 처음엔 150유로 (약 20만 원) 미만으로 이야기가 나왔는데 최근엔 대당 100유로 (14~5만 원) 이하로 장착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응급전화시스템은 이미 텔레매틱스, 그러니까 자동차와 무선 인터넷이 연결되어 만들어지는 다양한 서비스 기능 안에 포함이 되어 있죠. 모든 메이커들이 하는 건 아니지만 여러 자동차 회사들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이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어떤 회사가 어떤 방식으로 운용하고 있나?

텔레매틱스라는 게 뭔가요? 한마디로 이동통신 서비스죠. 자동차 자체가 스마트폰이고, 또 스마트폰과 자동차가 연결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당연히 이 서비스를 하기 위해선 메이커별 자체 텔레매틱스 지원 센터가 운영이 되어야 합니다. 이 무선 서비스는 스마트폰으로 시동을 걸거나 냉낭방 장치를 미리 켤 수도 있고요. 또 GPS를 이용한 위치정보 시스템, 도난경보나 방지 시스템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맛집도 물어보면 알려주기도 합니다.

 

당연히 인터넷 접속이 가능해서 내비게이션 화면으로 인터넷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현대차가 블루링크라는 텔레매틱스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죠. 저는 이용해보질 못해서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컨텐츠 구성으로 봐서는 꽤 좋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텔레매틱스 서비스를 가장 먼저 실시한 브랜드는 미국 GM입니다. 1996년에 온스타(OnStar)라는 이름의 서비스를 실시했고, 최근엔 오펠 자회사에서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모델들에 이를 무료로! 장착을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 텔레매틱스 기능 안에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응급안전시스템인데요. 바로 e-Call과 같은 원리의 기능이 그것입니다. GM의 온스타의 경우 에어백이 작동을 하면 LTE모뎀으로 비상전화가 자체 센터로 연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콜센터에서 급하면 차량의 문을 원격으로 열 수 있게 하죠. 이건 스마트폰으로 문을 열고 닫는 것과 같은 개념이 아닐까 싶네요.

 

GM의 뒤를 이어 볼보가 2001년에 '온콜(OnCall)'이란 이름의 안전기능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차가 도난 당하면 위치 추적을 할 수 있고 아예 핀번호가 없으면 시동이 안 걸리게 해놓았죠. 주로 차량 보안과 안전에 관련된 기능으로 옵션 가격이 제법 비싼 걸로 알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푸조시트로엥 그룹도 적극 활용하고 있죠. 푸조는 '커넥트 SOS', 시트로엥은 '시트로엥이머전시콜'이름으로 각각 비상전화시스템이 적용이 되고 있는데요. 사고났을 때만이 아니라 차에 다른 문제가 있을 때에도 전화를 걸어 문제 해결을 요청할 수 있다고 하네요.

 

 

BMW 1시리즈에 적용된 커넥티드 드라이브

 

독일 회사들 중에는 BMW와 벤츠가 적극적이죠. BMW는 '커넥티드 드라이브"라는 텔레매틱스 시스템 안에 이 비상콜 기능을 포함했고 메르세데스 벤츠는 2012년 여름부터 '커멘드온라인'이라는 이름의 텔레매틱스 기능 안에 비상전화장치가 포함돼 있습니다. 물론 모두 옵션이라는 게 부담이죠. 폴크스바겐은 시도를 했다가 현재는 이 기능이 옵션 목록에서 빠진 상태인데요. 아우디부터 아마 본격적으로 적용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외에도 포드가 SYNC라는 이름의 텔레매틱스 기능을, 기아는 UVO라고 해서 현대 블루링크와 같은 텔레매틱스 기능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포드의 경우, 자체 센터가 아니라 사고가 나면 바로 응급센터로 연결할 수 있게끔 한 것이, 유럽연합이 실시하려는 e-Call 시스템에 가까운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제조사들이 적용한 이런 이동통신시스템에는 장착비용과 월 이용료 등의 부담되는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응급전화시스템만큼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모든 신차에 별도로 적용하려는 것이 EU의 계획인 것이죠. 운전자들 입장에선 비싼 텔레매틱스 기능을 옵션으로 선택해야지만 적용받을 수 있던 비상전화장치를 훨씬 저렴한 비용에 이용할 수 있어 좋고, 국가는 사회적 비용손실을 줄일 수 있어 좋습니다.

 

 

한국도 당장 도입합시다!

앞으로 이 e-Call 시스템은 유로충돌테스트의 기본항목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하니까, 제조사들 입장에선 빼도박도 못하게 됐네요. 이미 유럽연합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IT 기술을 이용한 안전시스템 개발을 본격적으로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들 중 하나인 e-Call 시스템의 적용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죠. 안전에 있어서는 타협이 없다는 건 미국의 스몰오버랩 충돌 테스트나, 유럽의 e-Call 시스템 등을 보면 알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현재 현대나 기아와 같은 메이커들이 텔레매틱스 시스템 안에 응급전화기능을 포함시켜 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옵션으로 선택을 해야지만 이를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죠. 유럽처럼 우리도 정부가 제도를 통해 이를 강제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제조사 입장에선 어떨지 몰라도 소비자와 국가 차원에선 안전과 사회적 비용손실 절감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효율적으로 줄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제도가 이번 세월호와 같은 어이없는 사고에도 적용이 될 수 있겠단 생각입니다. 굳이 조난신고를 하지 않아도, 배에 어떤 물리적 충격이 가해졌을 때 이를 바로 해경센터에서 감지하고 출동할 수 있도록 말이죠. 이미 이런 기능이 있는데 우리가 모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동차 뿐 아니라 기차나 버스, 택시 등, 여러 교통수단에도 '자동응급전화기능'을 적용하는 것을 정부가 적극 검토했음 하는 마음입니다.

 

정말이지 사회의 안전망, 비상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저한 교육, 그리고 이를 잘 지키는지 철저한 감시와 훈련, 이를 위한 제도의 보완 등, 안전에 관해서 우리나라도 이제 어떤 타협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세월호와 같은 말도 안되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정말 언제까지 우리는 이런 들을을 속절없이 당하고만 살아야 하는 걸까요? 제발, 제발 이제는 그만 겪었음 합니다. 남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이 아니겠어요?

 

세월호 침몰로 인해 사망한 분들의 명복을 빌고, 실종자와 사망자 가족 모두에게 감히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희망을 버리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