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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우리에겐 왜 아이코닉 자동차가 없는 걸까?

 

'00의 아이콘' 이런 표현 가끔 들어보셨을 겁니다. 무언가의 상징, 어떤 표성을 갖는다는 의미를 표현할 때 쓰는데요. 자동차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대의 요구에 따라, 또는 시대를 앞서가서, 그리고 자동차 제조사의 철학이 오롯하게 반영이 되어 만들어진 차들 중에 이런 '00의 아이콘'이라는 표현을 받는 경우가 많지 않나 싶은데요. 오늘 제목에 있는 아이코닉 자동차란 표현은 다시 옮기면 '상징적인 자동차'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자동차를 역사라는 큰 틀에서 공부하다 보면 이런 시대를 풍미한, 문화의 한 코드가 되어준 차들을 만나게 되고, 그럴 때면 부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런 생각이 많이 들게 됩니다. '왜 우리나라에는 제조사를 상징하는, 우리나라 자동차 문화를 징하는 모델이 안 보이는 걸까?' 하고 말이죠.

 

자동차 역사가 짧아서라고 말을 하기도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역사의 길고 짧음의 문제라기 보다는 자동차를 만드는 시대적 환경, 그러니까 산업의 한 축으로써의 자동차만이 너무 강조돼 이런 상징적 자동차의 부재를 낳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물론 시대별로 메이커별로 나름의 표성을 갖는 자동차들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을 아이콘으로 볼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현대의 아반떼를 보죠. 이 차를 한국 준중형의 아이콘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많이 팔리는 차 톱 10 안에 들 정도인데 이 정도면 현대차를 상징하는 차가 아니냐. 아니 대한민국 대표 준중형이란 상징을 부여해도 되지 않겠냐 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죠. 하지만 많이 팔린 것으로 아이코닉한 차라고 말한다면 토요타의 코롤라는 어떠세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이지만 사람들이 코롤라를 토요타의 상징적인 차로 콤팩트 세단의 상징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무엇무엇의 아이콘이라는 것은 단순히 많이 팔렸다든지 디자인이 독특하다든지 하는 한 가지 요소만으로 규정을 하지 않는다고 전 생각하는 건데요.

 

디자인, 성능, 시대의 흐름, 혹은 시대를 초월한, 자동차 회사의 철학을 읽을 수 있는,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차를 바라보는 운전자들의 열렬한 지지 등이 모두 종합이 되었을 때 '아이콘닉 자동차'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거죠. 결국은 문화적인 관점에서 차가 읽혀야 상징화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얘기를 길게 할 것이 아니라 그냥 몇가지 자동차들을 보여드릴게요.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죠. 플래그십(기함)이라고 해서 자동차 메이커들이 만든 차들 중 가장 상위급에 속하는 것들을 일컫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최상위급 모델들끼리 붙여 놓았을 때, 가장 상징적인 모델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벤츠 S클래스가 아닐까 합니다.

 

아무리 BMW가 잘나가고 있고 좋은 차들이 많이 있어도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최고의 플래그십하면 S클래스가 떠오르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이런 의견은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대체적으로 그렇게 본다는 거겠죠. S클래스는 성공과 명예의 상징, 안전과 편안함, 그리고 최고 수준의 기술이 집약된 자동차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오며 S클래스만의 색깔이 되어주었습니다. 또 볼까요?

 

 

 

S클래스가 플래그십의 상징적인 모델이라면 이번엔 안전의 대명사로 불리는 볼보가 있습니다. 이 경우는 특정 모델이 아이콘화 되었다기 보다는 브랜드 그 자체로 안전의 상징이 된 경우입니다. 볼보 역시 이렇게 구축된 이미지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늘 안전과 관련한 선도적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볼보가 얼마나 더 안전한가는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일단 안전한 차를 타고 싶다고 할 때 '장바구니'에 우선 담게 되는 게 볼보가 됩니다. 바로 그 상징성이 주는 가치 때문이죠. 그렇다고 무조건 이미지만으로 밀고 가느냐? 아닙니다. 실제로 안전과 관련해 늘 한 발 앞선 모습을 기술적으로 구현해 내고 있습니다. 안전을 위한 기술력과 그것을 하나의 문화로 강화시킴으로써 앞으로도 볼보의 이미지는 쉽게 깨지지 않을 거라 봅니다.

 

 

 

 

위에 붉은 색 스포츠카는 페라리 엔초이고 아래 은색 코리를 달고 있는 녀석은 포르쉐 911 (터보S)입니다. 둘 다 스포츠카의 상징과 같은 모델들인데요. 페라리는 붉은색으로 대표되는 스포츠카 브랜드이고, 911은 포르쉐하면 떠올리게 되는 모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는 브랜드 자체(페라리)가 스포츠카의 상징성을 갖고 있고, 또 다른 자동차는 브랜드(포르쉐)의 대표적 모델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 나누지 않아도 두 브랜드 모두 스포츠카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무조건 스포츠카 만들면 다 아이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페라리 역시 끊임없이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이태리 스포츠카의 명예를 이어오고 있고 포르쉐 911 역시 독일 스포츠카의 대명사로 이견이 없는 명품입니다. 기술과 역사, 그리고 그 차를 사랑하는 팬들의 오랜 열정이 믹스가 돼 지금까지 굳건하게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만이 강조되어선 아이콘이라 불릴 수 없다는 거죠.

 

 

 

 

위에 포르쉐 911을 언급했지만 일본에도 날고 기는 스포츠카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스포츠카라면 저 못생긴(?) 닛산의 GT-R이 있습니다. 오로지 911 잡겠다는 일념으로 일본 엔지니어링의 진수를 보여준 이 스포츠카는 어느 새 일본이 자랑하는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브랜드 토요타의 경우는 하이브리드의 아이콘이 된 프리우스를 빼놓을 수 없을 거예요. 차가 어떻게 생겼느냐는, 어떤 성능을 발휘하냐는 관점 보다는 하이브리드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한 실질적인 모델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미권에 계신 분들에겐 포드의 픽업 F시리즈도 빼놓을 수 없는 아이코닉 자동차가 아닐까 해요. 가장 많이 팔린 픽업 시리즈 F는 파생 모델도 많고 그 역사도 제법 길고 그렇습니다. 쉐보레나 일본 메이커들이 픽업을 많이 만들어 경쟁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픽업하면 F시리즈, F시리즈 하면 픽업의 상징이라는 등식이 여전히 유효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고급 SUV의 상징이라는 타이틀을 레인지 로버에게 주는 것에 이견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봅니다. 차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을 꾸게 되는 레인지 로버. 롤스 로이스 역시 명에와 권위라는 것을 가장 잘 상징하는 럭셔리 세단일 것입니다. 많은 차들이 있지만 롤스 로이스 팬텀이라는 이름이면 다 설명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또 지금은 양산되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만 미국의 50년대 아방가르드(전위적) 트렌드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쉐보레의 벨 에어 같은 차도 시대의 아이콘으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70년대 세계적 석유 파동의 영향으로 이런 류의 차들이 모두 사리지게 됩니다만 한 때 자동차 디자인 낭만주의 시대를 이끌었던 추억의 자동차로 여전히 우리 기억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작은 차. 유럽 감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미니카의 아이콘이라고 한다면 역시 피아트500과 미니가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야 피아트500이 작고 비싼 차로 인기가 없는 편이지만 유럽에서 피아트500은 아주 오래 전부터 미니카 시대의 한 축을 맡고 있는 대표적 모델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유럽인들에게 피아트500을 탄다는, 미니를 탄다는 행위는 문화를 영위한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생각됩니다. 빌빌거리는 이태리 자동차 회사이지만 피아트500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FIAT는  그나마 잘 버티고 있지 않나 싶을 정도입니다. 네 그래요! 영국의 미니, 이태리의 피아트500은 가장 확실한 유럽 미니카 아이콘입니다. 

 

 

 

 

 

골프...

'해치백의 교과서'라는 표현으로 모든 게 설명이 되는, 해치백의 아이콘과 같은 모델이죠. 긴 말이 필요 없는 아이코닉 자동차입니다. 비틀로 시작된 폴크스바겐의 국민차 정신이 골프를 통해 잘 이어지고 있지 않나 싶은데요. 골프의 경우 스타일이나 성능 보다는 자동차 회사의 기업 정신이 잘 표현이 된 차라는 시각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꼭 넣고 싶은 차라면 역시,

 

 

 

 

 

불리입니다. 독일 경제 재건의 상징, 독일인들의 레져 생활을 바꾼 상징, 미국에선 평화와 자유를 외치던 히피들의 상징이 되어준 차입니다. 제가 여기서 직접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또한 많은 아이코닉 자동차들이 있습니다. 파가니와 부가티 같은 메이커들은 그 자체로 작품이 되는 자동차를 만들고 있습니다. 패션으로 말하자면 오뛰꾸뛰르 같은 게 아닐까 해요. 아무나 소화할 수 없는 패션, 하지만 그 자체로 예술이고 의미가 되는 그런 패션과 같은 자동차들이죠.

 

이처럼 상징성을 부여받은 차들은 그 상징의 영역이 매우 다양합니다. 하지만 공통점도 바로 보이죠. 역사가 오래 되었다는 것. 분명한 방향성과 철학을 가지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거나 기술적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는 것. 팬들과 함께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고 이어갔다는 점 등이 공통된 부분일 겁니다.

 

자 그러면 다시 이 질문으로 돌아와 보죠. 우리나라엔 과연 아이코닉 자동차 (상징적인 자동차)가 있을까요?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요? 위에 나열한 아이코닉 자동차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모델은 무엇이 있을까요? 몇몇 모델들이 떠오르긴 하지만 그것이 과연 시대나 지역을 초월해 상징성을 부여할 만한 차들일까 고개가 갸웃하게 됩니다.

 

이처럼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조사들의 철학, 방향성의 문제, 그리고 자동차 문화의 부재 때문은 아닐까요?  헌정 음반이라는 게 있죠. 어떤 아티스트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아 발표한 음반. 지난 번 불리 라스트 에디션을 포스팅하면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우리나라 제조사들은 자신들이 만든 자동차에 대한 연민과 애정 그리고 존경의 마음이 있는지 묻고 싶어 집니다.

 

이런 마음의 자세 없이 그저 생산의 효율성, 이익의 극대화라는 것에만 매몰되어 있다면 언제나 늘 남의 뒤만 쫓아가는 영원한 2류, 자동차 문화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한 채 그저 생산량만 가지고 숫자 놀음이나 하는 자동차 생산국가로 머물지도 모릅니다. (요즘 농담처럼 표현 되는 水타페를 설마 상징화 하려는 건 아니겠죠?)

 

다시 말씀 드리지만 이건 자동차 생산 역사의 짧고 긴 것의 문제가 아닙니다. 얼만큼 자동차에 대한 문화적 관점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자동차 메이커가 이런 아이코닉 자동차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없어도 너무 없다는 생각이에요. 차를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보지 않고 그걸 하나의 문화의 유산으로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이 싹틀 때, 비로소 대한민국도 아이코닉 자동차를 갖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저러나 요즘 벤츠가 아주 골치 아픈 일 연속입니다. 독일 법원에서 신형 S클래스에 대한 모든 광고를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네요. 과대광고 때문이라는데, 자세한 내용은 아래 주소 클릭해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이코닉 자동차라고 칭찬을줬더니만;;

=http://weeple.net/weepleInt/news/selectNewsDetail.doareaId=DEUHE01001&menu=WM01A1&artId=234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