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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자동차 접촉사고로 울고 웃었던 하루



오늘은 엊그제 있었던 접촉사고와 관련한 개인적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아내의 사연이라고 해야겠군요.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늘 퇴근이 늦는 아내가 저에게 전화를 해왔습니다. 퇴근하려고 주차장에 왔는데 누군가 차를 긁어놓고 그냥 갔다는 거였어요.

 

차는 이 거랑 같습니다. 직접 찍어 올리려고 했지만 아내가 반대를 해서 그냥 자료 사진으로 대신할게요. (이곳 교민사회가 매주 작고 좁아서...) 어쨌든 왼쪽 뒷바퀴 휀다 (뒷바퀴 커버) 쪽에 뭐가 보여서 차 방향으로 걸어가 자세히 보니 한 15cm 정도 다른 차량의 페인트가 묻어 있었고 그 자리만큼 휀더가 살짝 찌그러져 있었던 겁니다.

 

누군가 주차장에서 차를 빼다가 아마 긁은 모양이에요. 긁었다기 보다는 차가 찌그러진 걸로 봐서는 살짝 박은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차에는 쪽지도 안 남겨 있어서 그냥 사고를 낸 사람이 가버린 거 같다고 아내는 화가 나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동료분이 오스트리아 여행에서 비슷한 사고를 당했는데, 그 땐 사고를 낸 트럭 운전사(오스트리아 사람)가 얘기 도중 (서로 대화가 안 통한 상황) 그냥 트럭을 몰고 가버렸다는군요.

 

황당한 경우죠. 결국 대략 1,300유로, 그러니까 18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나왔는데 자기 분담금 45만 원 정도 내고 나머진 보험으로 처리를 하게 된 모양입니다. 이 분은 찌그러짐 상태가 아내 차 보다는 좀 더 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암튼 묘하게 회사 내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비슷한 일이 벌어져 버렸네요. 뚱한 표정으로  온 아내는 화가 단단히 난 모습이었습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무책임하게 그냥 도망간 가해차량 운전자의 태도가 못 마땅했던 거였죠. 당시 주차장엔 관리원도 없었고, 있다고 해도 층층별로 CCTV가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어떤 차량이 그랬는지 확인을 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아내는 출근하면 주차장 측에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말은 했지만 본인도 큰 기대는 없는 눈치였어요.

 

참고로 이 곳 독일은 우리나라처럼 운전석 앞에 자신 전화번호를 적어 놓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아마 잘은 몰라도 우리나라만의 특이한 문화(?)가 아닌가 싶은데요. 사생활 보호에 민감한 독일에서 전화번호가 그런 식으로 노출된다는 건 이 곳 현실에선 어렵지 않겠나 생각됩니다. 그럼 주차 문제가 생기거나 차에 문제가 있을 때 어떻게 연락을 취하느냐?

 

그냥 경찰에게 맡깁니다. 경찰에게 연락을 하는 게 가장 빨라요. 뭐 빠르다고 해봐야 얼마나 빠르겠습니까만 암튼 직접 처리하는 것 보단 경찰에 연락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사고를 냈으니 연락은 못해도 메모라도 한 줄 있을 줄 알았나 봅니다. 속상해 하는 아내랑 저녁을 먹으면서 그냥 달랬어요. " 뭐 어떡하겠어 이미 지난 일. 크게 망가지지 않아서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그렇게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차 수리를 어떻게 할 건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벨이 울리더군요. 이 시간에 누구지? 보니 경찰 두 명이 와 있더군요. 프랑크푸르트 경찰서에서 연락이 와 찾아 왔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면서 찾아온 이유를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안녕하세요. 프랑크푸르트 한 경찰서에서 차량 사고 접수를 받았다는 연락이 저희 쪽에 왔습니다. 그 쪽 경찰서로 저녁에 한 남자 분이 찾아 와서는 자신의 차량으로 검정색 BMW 1시리즈 차를 받았다고 했다는군요. 그게 오후 3시쯤 일이었는데 바로 경찰서에 못 온 이유는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서였다고 했다네요.

 

찾아온 분은 독일 분이었지만 거주지는 오스트리아라고 했습니다. 늦어서 미안했다고 하면서 보험 처리를 하겠다고 했고, 00님 (아내) 차량 번호를 경찰에게 건네줬다고 합니다. 그 쪽 경찰서에서 주소지 조회를 해 저희에게 연락을 해와 이렇게 찾아 오게 됐습니다."



그냥 가버린 줄 알았던 사람이 경찰서로 찾아가 사고 신고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차주에게 미안하게 됐다는 말을 그 사람이 했다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저나 아내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늦게라도 경찰서를 찾아 사고 신고를 해준 운전자에게 고마운 마음이었죠.

 

사진을 찍고 경찰들이 돌아가자 "찌그러져서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다 풀렸어." 라고 아내가 피식 웃으며 이야기를 하더군요. " 아직은 살 만한 세상 아니겠어? " 제가 농담조의 말을 건네자 아내도 " 그러게..." 라고 응수를 하더군요. 누군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싶네요.

 

제가 물었어요. " 당신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거야?" 아내가 그런 질문이 어딨냐는 듯 쳐다 보며 " 당연히 신고해야지! 내가  그 운전자 보다 못하다는 소리 들어야 쓰겠어?" 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요 당연하죠...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한 사회가 건강히 돌아가는 거, 그건 큰 노력이나 결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작고 당연한 것들이 지켜지는 것에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그날 밤 커피는 참 맛있었습니다.